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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셋 코리아] AI 3대 강국 관건은 글로벌 핵심 인재 유치

    [리셋 코리아] AI 3대 강국 관건은 글로벌 핵심 인재 유치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노동분과 위원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걸음걸이는 무겁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는 원화 통화량 및 국가부채 증가와 맞물려 원·달러 환율의 급등과 금융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반면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한국 경제에 희망을 준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한국의 기술력과 정책 의지를 높이 평가하며 주요 대기업과 정부에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 공급을 약속했다. 한국은 미·중에 이어 세계 3위 첨단 GPU 보유국이 되게 됐고,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은 AI 자율생산체계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  「 경직적 입법으로 인재 부족 심화 ‘국가생존특구’ 지정해 육성하고 핵심 인재 보상에 세제혜택 줘야 」    이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 중 하나인 생산성 저하 문제를 반전시킬 수 있다. 예컨대 AI는 한국의 노동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근로자들이 생산 현장에서 핸드폰에 장착된 AI로 모의학습을 하고 현장 문제가 생기면 영상으로 AI와 질문·답변의 형태로 AI 코칭을 받을 수 있다. 추론형 AI가 근로자 특성에 맞게 맞춤형 컨설팅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직업훈련은 AI 현장 맞춤형 시스템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인공지능 전환(AX) 속도가 빠를수록 노동시장 충격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AI는 생산성을 끌어 올리지만, 고용을 줄이기 쉽다. 아마존은 1만4000명 감원을 단행했고, 월마트·네슬레 등 글로벌 기업들도 AI 도입을 이유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AX는 한국에서도 일자리 없는 성장을 가속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대미 투자는 국내 산업공동화를 가속할 수 있다. 우리만의 첨단기술을 지속해서 개발하고, 국내 투자를 전략적으로 관리해 산업공동화 리스크를 줄이는 데에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선택지는 세 가지다. 첫째 성장은 있으나 고용이 없는 ‘AI 유연성’ 경제(아마존형)와, 둘째 성장도 고용도 없는 ‘AI 경직성’ 경제(한국형)는 피해야 한다. 셋째로는 성장과 고용이 함께 가는 ‘AI 유연안정성’(Flexicurity) 경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두 번째 길에 들어서고 있다. 노란봉투법, 주 4.5일제 등의 노동 관련 입법은 노동시장 경직성을 넘어 노동시장을 화석화(fossilization)시켜, AI 주도 성장에 급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AI와 구식 규제, 관행은 상극이다.   AX 시대에 우리도 ‘국가생존 특구’를 지정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서는 글로벌 엣지(Global Edge, 압도적 기술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국내외 핵심 인재들이 자유롭게 협업할 수 있는 기술개발 베이스 캠프, 핵심특허 집중단지, 비자 예외 적용, 교육·노동·산업의 융합 구조개혁 등 혁신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미국의 제조업 부활 프로젝트 ‘마가(MAGA)’가 제조와 인재의 폐쇄형 전략이라면, 한국은 개방형 혁신플랫폼으로 가야 한다. 글로벌 인재 유입체계를 가동하고 해외와 국내 기술자가 공존하는 ‘한국형 기술동맹’, AI 특화 연구소와 국가 연구개발(R&D) 펀드의 정렬, 산학연 클러스터의 정주 지원을 결합해야 한다. 이 특구에서는 기존 규제의 전면 예외가 인정되고 글로벌 엣지를 확보한 제도만이 존재할 뿐이다.   최근 정부가 과학자들이 복수의 기관에서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5년간 국가과학자 100명을 선발해 매년 1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핵심인재에 대한 보상 수준도 개선해야 한다. 노조와의 집단교섭에 의해 영업이윤의 10%를 모든 사원에 골고루 나누어 주는 방식의 대기업 성과공유 인센티브(PS, PI)도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위한 핵심인재 보상에 집중하도록 재구조화해야 한다. 그래야 수재들의 의대 진입을 국내 공학계로 돌리게 할 수 있다. 정부는 기업의 핵심인재 지원을 위한 비용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화답할 수 있다.   관세로 막힌 세상에서 국경을 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 사람을 품을 제도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노동이 이념의 언어에서 AI 기술의 언어로 전환될 때, 한국 경제는 다시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다. 핵심인재 유치, 디지털 전환, 구조개혁의 세 축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국가에서만 미래 세대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노동분과 위원    

    2025.11.24 00:18

  • [리셋 코리아] 국방에도 더 빠르고 똑똑한 AI 체계 구축해야

    [리셋 코리아] 국방에도 더 빠르고 똑똑한 AI 체계 구축해야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전 대통령 사이버특보 21세기 전쟁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전차·전투기·미사일이 전장의 주인공이었다면, 이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알고리즘이다. 인공지능(AI)이 전장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며, 인간보다 빠르게 대응하는 알고리즘 전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새로운 전장에서는 적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결정 우위(Decision Dominance)’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다. 한마디로, 더 똑똑하고 빠른 AI를 갖는 것이 한 국가의 국방력과 전장의 승리를 보장하는 핵심요소가 되고 있다.       ■  「 주요국 이미 AI 군비경쟁에 돌입 해외 기술 도입·국산화 병행하고 보안 체계·인재 확보도 서둘러야 」    주요국들은 이미 발 빠르게 국방 분야에 AI를 도입하는 군비경쟁에 돌입했다. 미국은 전장의 모든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통합·분석해 최적의 대응을 자동으로 결정하는 킬웹(Kill Web) 체계를 구축 중이다. 전장의 두뇌 역할을 하는 국방AI 체계, 손과 발 역할을 하는 자율무기체계, 눈과 신경망 역할을 하는 군집 위성 등 우주 자산이 결합된 킬웹은 탐지-결정-타격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킴으로써 미래 전장의 게임체인저가 되고 있다.   국방AI 군비경쟁은 일단 속도전이다. 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도 신속하게 국방AI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여러 곳에 산재해 있던 기존 국방 데이터센터들을 클라우드 기반 국방AI 데이터센터로 통합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방 전 분야로 국방AI 기술 도입을 신속하게 확대해야 한다.   하드웨어 중심의 기존 획득 제도로는 AI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므로 신속획득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무조건 군 주도, 국내 기술만을 강조하며 시간을 지체해서도 안 된다. 단기적으로는 해외의 검증된 플랫폼을 신속히 도입하고, 중장기 과제로 국내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플랫폼의 핵심 모듈을 점진적으로 국산화하는 단계적 접근 방안을 취해야 한다. 해외 플랫폼 도입 시에는 데이터주권과 지적재산권 보호, 벤더 종속 방지 방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속도전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안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최근 화재로 인해 국가정보자원관리원(NIRS) 전산망이 마비되었던 것처럼, 국방AI 인프라가 공격당한다면 전장의 두뇌, 눈과 신경망, 손과 발이 마비되어 전쟁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패배할 수도 있다. 국방AI 모델 자체의 취약점을 이용한 사이버 공격을 통해 국방AI의 결정과 대응 기능이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부수적 피해가 야기될 수도 있다. 알고리즘 전쟁 시대에는 국방AI모델과 국방AI데이터센터가 적의 최우선 표적이라는 전제하에 이에 대한 사이버 보안체계를 구축하고, 회복탄력성 높은 방어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국방AI 인재양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군이 더 많은 GPU를 더 빨리 확보하는 것이 곧 국방AI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군내에 AI 기술 및 작전에 대한 지식을 고루 갖추고 국방AI를 잘 운용하고 보호할 수 있는 국방AI 전문 인력이 없다면 값비싼 AI 인프라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GPU 기술 발전 속도와 수명을 고려할 때 적시에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는 GPU는 예산 낭비일 뿐이다. 국방AI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민-군 AI 인력 교류 제도를 마련하고, AI 전문병과를 신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방AI 기술이 책임 있는 통제 구조 안에서 운용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적절히 통제되지 않는 국방AI 기술은 국민과 동맹국에게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국방AI 운용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인간의 최종 판단과 개입을 보장하는 안전장치를 갖추고, 독립적인 국방AI검토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경쟁력 있는 국방AI 전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앞서 살펴본 국방AI 모델 개발과 국방AI 통합데이터센터 구축, 신속 획득절차 마련, 해외 플랫폼 도입과 국산화 단계적 구축전략, 국방AI 운용·보안인력 양성, 국방AI 통제방안 마련을 위한 노력이 어느 하나 뒤처지지 않게 함께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속하면서도 균형 잡힌 노력을 통해 우리 국방AI 기술은 K-국방의 대표주자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전 대통령 사이버특보  

    2025.11.17 00:20

  • [리셋 코리아] AI 대전환기, 소버린AI 도전 피하지 말아야

    [리셋 코리아] AI 대전환기, 소버린AI 도전 피하지 말아야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인공지능(AI)에 의한 대전환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문명사에서 ‘전환’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기계를 넘어 ‘디지털 휴먼’이라는 새로운 종(種)이 탄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의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 약속’과 ‘치맥 회동’이 여느 뉴스를 뛰어넘는 주목을 받고,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AI와 국가의 미래를 역설했다. 과학기술의 대전환은 패권 질서의 재편을 예고한다. AI 강국·AI 동맹·AI 주권 중 ‘주권’에 더욱 주목하는 이유다.     ■  「 기적 같은 반도체도 도전의 결과 기술 패권 시대에 주도자 되려면 인재·기술 자체 생태계 있어야 」    비교행정과 정책을 연구하며 줄곧 붙들고 있는 화두는 “우리는 왜 결정적 국면마다 전환의 기회를 놓치고 결국에는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했던가”이다. 신중함과는 다른, 일종의 자기 검열이나 스스로 정해놓은 울타리에 더해 외부가 그어놓은 경계를 최대 선택지라 여기고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소버린 AI를 둘러싼 논쟁 역시 늘 그래왔듯 우리 안에서 낙관론과 비관론, 현실론이 부딪치고 있다. 기업이 신규 시장 진입을 검토할 때 활용하고 있는 경쟁·진입·대체·구매·공급 등 5개 요인 분석을 적용해 보면 비교적 답은 분명해 보인다. 소버린 AI는 매우 회의적인 정책이자 국가전략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분석 프레임의 결과대로 움직이던가.   정보화시대 초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연구진·기업·공무원들의 결기, 한국형 전투기(KF) 독자 개발, 30년 전 독일에서 눈짓 손짓으로 배워왔던 잠수함 운용 기술, 세계 수준의 이지스 정조대왕함을 경제적 타당성과 시장 분석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자동차와 반도체 역사는 말해 무엇할 것인가. 우리는 암묵적으로 이러한 성취를 ‘신화’와 ‘기적’이라 이름 붙여 스스로 놀라워한다. 설령 기적과 신화라 할지라도 그 수준이 세계 최고에 이른다면 명실상부 우리의 실력이고 역량이다.   그 누구도 영국의 산업혁명을, 미국의 강대국 부상을,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중국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기적이나 신화라 부르지 않는다. 내부 갈등과 외부 위협이 극에 달했을 때 그들 국가의 지도자들은 선택과 결단을 거듭했다. 우리 의식 세계를 지배해 왔던 변방·아류·후발의 습속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경쟁, 어쩌면 인간사의 많은 부분이 대체될 수도 있는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 ‘주권’을 갖는다는 것이 배타적 독립과 폐쇄적 완결을 고집하는 것이 아님은 모두가 인지하는 것이고, 문제는 국가 미래를 위한 전략적 자립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제이크 설리번과 프린스턴대 존 아이켄베리 교수는 포린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국력의 원천으로 공통되게 세 가지를 거론했다. 국제사회 게임의 룰을 정하고, 전 세계 인재들이 모여들고, 실패를 용인하고 장려하는 기업가 정신이야말로 여타 경쟁국들이 따를 수 없는 미국의 국력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AI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AI 기본법 제정, AI 인재양성과 교육체계 구축을 목표로 추진하는 소버린 AI 프로젝트는 그 의미가 적지 않다.   현재 구상하고 있는 소버린 AI가 비록 최종 목표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규칙과 표준의 수용자가 아닌 주도적 설계자가 될 수 있고, 인재들이 몰려들고, 실패를 통해 더 넓고 깊은 기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지금 거론되고 있는 ‘가능성’ 논쟁들은 달리 보일 수 있다. 원천 기술 부족, 상업화 가능성, 시장 경쟁력과 같은 실재적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함과 동시에, 보다 중요하게는 우리의 발전 서사를 더 이상 ‘기적’과 ‘신화’의 틀에 가두지 않는 것이다.   소버린 AI 실현을 위해 100조원이 넘는 돈이 투입된다고 하니 현장에 있는 연구자와 기업의 부담 역시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또 다른 기적과 신화를 만들어야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 기술진답게, 글로벌 선도 기업답게 조금은 긴 호흡으로 그러나 치밀하게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개척해 나가길 소망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자문위원    

    2025.11.10 00:20

  • 리셋 코리아란?

    디지털 민주주의를 통해 시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검증합니다.

    리셋 코리아란?자세히 보기
  • [리셋 코리아] 대미 투자 결정 과정에 한국이 직접 참여해야

    [리셋 코리아] 대미 투자 결정 과정에 한국이 직접 참여해야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정도면 선방했다. 한·미 관세 협상이 큰 고비를 넘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우리로선 아쉬움도 있지만 양국이 타협에 이른 건 환영할 만하다. 마지막까지 정부의 노력이 주효했다. 이제 합의 내용을 문서로 정리하는 일과 관련 국내법 개정이 남아 있다. 벌써 미국에서 솔솔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하루빨리 문서에 담아 확정해야 한다.   합의는 반갑지만 2000억 달러(약 285조원) 현금 투자는 큰 숙제다. 매년 200억 달러를 상한으로 나눠 낸다. 짧게 잡아도 10년에 걸친 긴 약속이다.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정부에선 문제없다 하지만 2~3년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국제경제 환경에서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가 계획을 잘 세워 외환시장과 경제 체력에 부담이 최대한 덜 가도록 이끌어 가길 기대한다.     ■  「 투자위원회 참여로 투명성 확보 상업적 합리성·수익성 검증해야 FTA 투자조항 적용, 권익 보호를 」    앞으로 현금 투자 2000억 달러를 어떻게 운용하나? 매년 보내는 우리 돈을 미국이 알아서 쓴다는 원칙엔 합의에 이른 듯하다. 문제가 있다. 자칫 우리는 돈만 내는 처지에 몰리기 쉽다. 다행히 우리 요구로 ‘상업적 합리성’에 터 잡은 결정을 한다지만 이걸론 부족하다. 투자 수익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인데, 애매하고 추상적이다. 그래서 상업적 합리성을 두고 그간 현장에선 다툼도 적지 않았다.   결국 실제 투자 과정에 우리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참여해야 한다. 돈을 어떻게 쓸지 우리가 결정하거나 우리와 상의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아쉽지만 그 부분은 이미 물 건너간 듯 보인다. 미국이 최종 결정을 하더라도 그 과정에 우리 정부 대표가 참여하는 길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투자 심의, 결정, 평가에 미국은 일본과 합의한 방식을 따르려는 듯하다. 7월 22일 미·일 합의는 ‘투자위원회’를 두고 미 상무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위원들은 미국 정부 담당자나 인사들로 구성된다. 대신 투자위원회와 별도로 ‘협의위원회’를 두는데 여기엔 미·일 양국이 지명하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만약 한·미 간에도 이 방식을 가져온다면 일본과 달리 투자위원회에 우리 정부 담당자가 참여하는 길을 꼭 찾아야 한다. 한 명이라도 좋다. 별도로 협의위원회가 있다지만 투자 진행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의견 개진과 정보 공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현금 투자에 관한 한 중요한 건 ‘협의’가 아니라 실제 투자 과정에 우리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는 일이다.   최종 결정은 미국이 내려도 그 과정에 직접 참여해 우리 의견을 개진하고 실제 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계속 모니터링하는 건 필요하다. 앞으로 매년 30조원에 가까운 돈을 근 10년에 걸쳐 외국에 보내는 과정이다. 국책 사업이라면 최대 규모다. 매년 정기적으로 우리 국회가 보고를 요구하지 않을까. 국민이 궁금해하지 않을까. 정부 스스로도 보낸 돈이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야 하지 않나. 이를 위해선 누군가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정확한 상황이 전달돼야 서울에서 올바른 의사 결정이, 그리고 미국과 협의도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다. 나중에 성공한 투자, 실패한 투자에 대한 책임 소재도 가려진다.   이런 장치가 없으면 투자 결과를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통보를 토대로 그 다음해 투자를 다시 이어가기는 어렵지 않을까.   어느덧 우리 기억에서 희미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다시 꺼내 볼 필요가 있다. 관세 부분은 사실상 무력화됐지만 투자 부분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한·미 FTA 투자 조항은 정부 자금 투자에도 적용된다. 차제에 2000억 달러에 대해 한·미 FTA 투자 챕터 적용을 명확히 해야 한다. 여러 보호 장치가 있다. 미국 정부가 직접 운용하는 투자니 여기에 기본적인 보호를 부여하는 것에 미국도 딴 이야기를 하긴 어려울 것이다. 미덥진 않아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양측 합의 내용을 문서로 정리하며 이러한 부분들이 적절히 반영되면 제일 좋을 것이다. 그게 힘들면 향후 투자를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단계에서라도 이런 부분을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5.11.03 00:20

  • [리셋 코리아] 급격한 주가 상승, 혁신 없이 지속 못해

    [리셋 코리아] 급격한 주가 상승, 혁신 없이 지속 못해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올해 한국 증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 종목의 주가가 국제 비교 기준으로 비싸졌다. 주가수익비율(PER)로 보면 주요 조선주 주가는 미국의 7대 핵심 기술주(M7)보다 높다. 주요 방산주 역시 미국 방산 기업보다 높은 수준에 올라섰으며, 이런 업종이 많아졌다. 이러면 주가 기복이 커지기 마련이다.   올해 대비 내년에는 경기 호전이 예상된다. 그러나 주요 국내 연구기관의 내년 예상 성장률은 1.6~1.9%에 불과하다. 1990년 이후 성장률 2% 이하였던 시기의 주가는 대체로 활기를 띠지 못했다. 물론 돈이 많이 풀렸기에 주가가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익 대비 주가가 높은 상황에서 경기 회복이 미진하다면 주가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  「 주요국 통화 중 원화값 가장 약세 반도체 빼면 추세적 경제 쇠락 탓 경제 실상 직시하고 대책 세워야 」    김지윤 기자 경제 상황에 민감한 환율과 자금 추이로 보면 향후 경기가 밝지는 않다. 우선 원화 가치 하락이 미국과 통상 마찰 때문만이 아니란 점을 봐야 한다. 원화는 2022년 4분기부터 다른 국가 화폐보다 절하될 땐 큰 폭으로 절하되고, 절상될 땐 절상 폭이 작았다. 이는 우리 경제의 추세적 쇠락을 뜻한다. 이는 원화 가치의 추락 추이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9월 말 달러인덱스 97.45 당시 원·달러 환율은 1404원(역외기준)이었다. 그런데 달러인덱스가 그때와 비슷한 2020년 1월 23일 원·달러는 1168원, 2022년 3월 3일 원·달러는 1205원이었다. 또 원화 가치 추이는 2021년 4월 이후 브라질 헤알보다, 2023년 1월 이후 필리핀 페소보다, 2024년 7월 이후 일본 엔화보다, 2024년 11월 이후는 러시아 루블보다 낮거나 비슷해졌다. 이처럼 원화 가치는 줄곧 하락했다.   자금도 오랫동안 해외로 유출되었는데, 2012년~2025년 8월 중 우리의 해외 증권 투자는 7917억 달러나 된다. 이 중 4929억 달러를 해외 주식 매입에 썼다. 반면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는 2906억 달러, 이중 국내 주식 취득은 169억 달러에 불과했다. 한편 올해 5~8월 중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수는 예전보다 많은 87억 달러였지만, 동일 기간 중 우리의 해외 주식 매수는 249억 달러였다. 국내 자금의 대거 유출과 미미한 외국 자금 유입이 최근 우리 경제의 실상인 듯싶다.   장기간 원화 가치 하락과 자금 이탈은 우리 경제 체제의 누적된 문제 때문이다. 정책 당국은 그간 필수 구조조정, 첨단 신산업 육성, 노동개혁을 소홀히 했다. 경기가 둔화하면 당국은 저금리를 유도하고, 원화 절하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치부했다. 정치권은 재정을 동원해 선심도 크게 썼다.   이런 흐름 속에 부채는 늘고 경기는 활력을 잃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유럽연합(EU)·대만·일본을 빼면 전 세계적으로 낮다. 원화는 그간 대다수 국가보다 더 절하됐지만, 우리보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낮은 국가는 일본, 일부 유럽국가, 비정상적인 경제 상황에 처한 몇몇 국가에 불과하다. 참으로 우려된다.   또 2020년 대비 올해 8월 현재 수입 물가 상승률은 달러 기준 14.7%이나 원화 기준 35.2%로 환율로 인해 국민이 물가 피해를 크게 입었다. 그간의 무역수지 흑자도 원화절하로 인한 수출 증가보다 수입 둔화·감소 덕이 더 컸다. 이처럼 거시 요인이 부진하니 기업이익 부침이 심했다. 그 결과 주가 기복이 컸다.   이번에 주가가 상승했지만, 주가 형성의 근본인 경기가 여전히 불안하다. 특히 국내 경제에 잠재 쇼크 요인이 곳곳에 있다. 예컨대 프랑스 등 선진국의 엄청난 부채로 인한 세계 경제 경색 우려, 미국과의 험난한 관세 협상 등은 잠재 쇼크 요인이다. 반도체 등 일부를 제외하면 2026년 상장사 이익 추정치도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었다.   이젠 혁신과 기업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경제는 반도체 등 몇몇 산업 덕에 당분간은 그럭저럭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혁신하지 않으면 지난 30년간 5년마다 1%포인트씩 둔화하는 성장률 하락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요컨대 우리 경제 상황은 자칫하면 ‘제로(0) 성장’에 빠질 위험에 놓여있다. 절실한 상황 대처가 필요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2025.10.27 00:24

  • [리셋 코리아]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 의미 살리려면

    [리셋 코리아]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 의미 살리려면

    유연철 전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리셋코리아 기후변화대응 분과장 이재명 정부에서 처음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업무 중 자원산업과 원전 수출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능을 환경부로 이관해, 이를 확대·개편한 것이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새로운 컨트롤타워의 탄생이자, 역대 어느 정부도 시도하지 않았던 길을 걷는 셈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의 의미는 분명하다. 이번 개편은 국정과제인 ‘탄소중립’과 함께 ‘에너지 전환의 가속화’라는 명확한 목표를 담고 있다. 현행과 같은 분산된 조직 체계로는 ‘탄소중립’ 달성을 비롯한 기후대응을 총괄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줄곧 이어져 왔다.     ■  「 무역 질서 ‘탈탄소’로 급속 전환 탄소중립 달성의 계기로 삼되 성장과 일자리 기회도 만들어야 」    탄소중립과 기후 위기 대응, 에너지 정책 기능의 중심을 수행할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난 1일 공식 출범했다. 뉴스1 새 부처는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될 것이다. 기후 대응의 두 축인 ‘감축 정책(기후 변화의 원인을 줄이는 정책)’과 ‘적응 정책(기후변화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에너지 전환과 순환경제까지 결합해 한국형 기후대응 모델(π형)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특히 탄소중립의 핵심축인 ‘에너지 전환’의 속도가 국제 흐름에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있다. 내년 시행을 앞둔 유럽연합(EU) 탄소국경제도(CBAM)를 시작으로 기후공시 의무화가 잇따라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의 규범 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2030년이면 무역 질서가 완전히 ‘탈탄소 규범’으로 전환될 전망이다.   이미 일부 중소기업들은 해외 입찰에서 재생에너지 100%(RE100)와 제품의 전 과정 평가(원료 채취부터 폐기·재활용까지 전 과정에서의 환경영향평가 요구)에 직면하고 있지만, 준비가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에너지 전환이 지연될 경우 국가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새 부처의 출범은 향후 에너지 전환 정책의 일관성과 추진 속도를 담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우려도 적지 않다. 에너지·경제 정책은 산업 성장을 끌어올리는 동력이지만, 환경정책은 안전을 지키는 제동장치다. 성격이 다른 둘을 한 부처에서 다루면 정책 신호가 흐려질 수 있다. 또한 규제 중심 부처로 재편되면 에너지 정책의 산업진흥 기능이 약화할 수 있고, 원전 운영과 수출이 분리되면서 시장 혼란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기후에너지환경부라는 담대한 선택이 성공하려면, 기대되는 순기능은 극대화하고 우려되는 역기능은 최소화해야 한다. 향후 5년 뒤 이번 개편의 성패는 다음 세 가지 거시적 도전에 대한 이행 여부에 달려 있다.   첫째, 기후위기는 생명의 문제다. 폭염·폭우·산불 등 이상기후로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정교한 기후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데이터 확충을 토대로 도시 배수·하천 관리, 산불 조기 대응, 경보 체계 고도화 등을 통해 사후 복구가 아닌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2일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대국민 공개 논의 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둘째, 기후위기는 경제의 문제다. 향후 5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은 줄이면서도 경제 성장은 이어가는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이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이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단순한 기후 대응이 아닌, 국가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 과정에서 창출되는 일자리는 성장 둔화의 우려를 잠재우는 힘이 될 것이다.   셋째, 기후위기는 전 국민이 직면한 문제다. 국민 참여형 대응 체제로 전환이 필요하다. 예상되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제도화해야 하고, 전문 인재 양성과 교육 인프라 구축 또한 긴요하다.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 로드맵도 마련해야 한다. 탈원전·친원전 논쟁을 넘어 ‘탄소중립 비용 최소화’라는 실용적 기준을 제시할 때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다. 기후에너지환경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후위기 대응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점이다. 2030년, 우리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컨트롤타워로 자리 잡아 한국형 기후대응 모델을 구축했다고 평가되기를 소망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은 위험이 아니라 기회다. 그 길을 내고 다듬어 가는 일은 지금,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연철 전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리셋코리아 기후변화대응 분과장    

    2025.10.20 00:26

  • [리셋 코리아] 트럼프 대통령, 한국을 동맹으로 존중해야

    [리셋 코리아] 트럼프 대통령, 한국을 동맹으로 존중해야

    박문수 미래와 가치 회장·(재)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 존경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님께, 어느덧 27년 전인 1998년 사업 파트너로 함께했던 박문수입니다.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한 기업인이 아닌, 절박한 심정을 가진 한국인으로서 이 글을 씁니다.   트럼프 대통령님, 지금 대한민국은 심각한 정치·경제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제2의 ‘IMF 사태’가 눈앞에 다가온 듯한 불안감이 온 나라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상황이 마치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식민지처럼 미국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자괴감이 대한민국 사회를 먹구름처럼 덮고 있습니다.     ■  「 한·미 통상협상 윈윈 관계 맺어야 ‘경제 식민지’처럼 한국 취급 안 돼 한국 살아야 미국 이익에도 부합 」    한·미동맹은 지난 70년 넘게 한국의 안보를 지켜온 핵심축입니다. 피로 맺어진 동맹입니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흘린 피와 희생은 아직도 한반도의 산과 들에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베트남에서 미군과 함께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 동맹 덕분에 한국은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 10위권 경제로 성장했고, 미국은 아시아의 든든한 민주주의 파트너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동맹의 역사에는 늘 양면이 존재했습니다.   1905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묵인하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는 비밀 합의를 했습니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입니다. 그때 한국은 강대국의 거래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작은 바둑알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자유를 외면했고,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천추의 한이 한국인의 가슴에 못처럼 박혀 있습니다.   요즈음, 트럼프 대통령님께서 보여주시는 태도 속에서 그 악몽의 그림자가 되살아나는 것을 봅니다. 한국을 뇌가 없는 ‘봉’으로 삼거나, 혹은 ‘경제 식민지’처럼 취급하는 발언과 정책은,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고 한국 국민에게 깊은 불신과 분노와 상처를 안겨 주고 있습니다. 3500억 달러 현금 투자 요구 등에 대해 험한 말이 한국인 입에서 터져 나오고, ‘광우병 사태’와 같은 극심한 ‘반미 시위’의 불씨마저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님께서는 ‘위대한 미국’과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계십니다. 모든 지도자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맹이란 일방적 강압이 아니라 상호 존중에 기반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신께 현명한 제안을 했습니다. 당신은 피스메이커가 되고 자신은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는 제안입니다. 한국이 ‘위대한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님의 성공을 위한 진정한 파트너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호 이익과 공동의 성공을 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트럼프 대통령님의 속단과 일방적 요구 관철로 이재명 정부가 무너진다면, 한국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집니다. 그 여파는 한국에만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동아시아 전체의 민주주의 진영이 흔들리고, 미국의 아시아 및 세계 전략도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더 나아가 진정으로 당신과 협력하려는 민주적 동맹이 깨지고, 그 자리를 불안정과 혼란이 채우게 될 것입니다. 페이스메이커를 잃은 러너는 기록을 낼 수도, 피스메이커의 자리에 설 수도 없습니다. 대한민국과 이재명 정부의 성공은 트럼프 대통령님의 성공입니다. 둘 중 하나가 무너지면 둘 다 무너집니다.   한국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열쇠는 당신 손에 있습니다.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통상협상이 상호존중의 토대 위에 조속히 타결돼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리더십을 발휘해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진정으로 한국을 존중하고 한국 정부의 진심 어린 평화 노력에 힘을 보태신다면, 그것은 곧 미국을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미국이 서로를 존중하는 파트너로 다시 설 때, 우리는 함께 더 큰 자유와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며, 당신께서도 21세기의 위대한 자유민주주의 지도자, 위대한 세계 평화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 몸이 죽고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도 변함없다는 마음으로 트럼프 대통령님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문수 미래와 가치 회장·(재)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    

    2025.10.13 00:20

  • [리셋 코리아] 검찰청 폐지, 국민에게 조금도 피해 없어야

    [리셋 코리아] 검찰청 폐지, 국민에게 조금도 피해 없어야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정부·여당은 검찰의 수사권 오남용 및 정치검찰을 문제 삼으며 검찰청 폐지를 결정했다. 그동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주장하며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직접 수사권을 6대 범죄로, 다시 2대 범죄로 축소하는 과정에서 이미 검찰청 폐지는 예견된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냐에 있다.     ■  「 수사권 조정 후 수사 지연 만연 사회적 약자일수록 피해 심해져 보완수사권 인정해야 인권 지켜 」    이런 조치들이 과연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한 것이었나? 법조계와 범죄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검찰이 빠진 공백을 경찰이 제대로 메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률 전문성이 부족한 경찰이 사기·횡령 등 복잡한 사건일수록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그로 인해 수사 지연·공백, 심지어 수사 실종의 문제까지 나온다. 이는 피해자가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일 때 더 심하다는 것이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과 2022년 검수완박 시행 이후 발생한 수사 지연은 심각하다. 사기 범죄의 경우 ‘경찰의 6개월 초과 처리 사건’ 비율이 2020년엔 11.8%에 불과했지만, 2023년에는 28.0%로 급증세를 보였다. 이 기간 배임죄는 20.5%에서 50.6%로 급상승했다. 만약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범죄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개혁이라면, 이런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보완장치는 당연히 두었어야 했다.   수사지연 등 문제의 핵심 원인은 경찰의 법률 전문성 부족에 있다. 경찰도 이를 알고 경찰 내에서 법률 전문성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그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하우 전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검찰에서도 초임검사가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역량을 갖추려면 최소 4~5년의 실무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난 26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검찰청 폐지는 1년의 유예기간이 있다. 경찰의 법률 전문성을 길러서 인권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전광석화처럼 검찰청 폐지를 결정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인권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최소한의 시간조차 두지 않고 일단 검찰을 폐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은, 국민의 인권보장보다도 검찰청 폐지를 통해 일방적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적어도 민주국가에서 국민이 최우선이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 더욱이 수사의 지연과 공백을 해소하려 하기는커녕, 중대범죄수사청을 설치해 정부·여당이 모든 수사기관의 수사를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국민의 인권보장 요청에 역행하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정권이 가장 무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인류 역사 속에서 수없이 확인한다. 알렉산더 제국의 멸망도, 로마제국의 쇠망도, 혹은 징기스칸 제국이나 명 제국의 패망도 결국은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신체제도 제도적으로는 누구도 대통령에 도전할 수 없었지만, 모래성처럼 무너지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재명 정부의 검찰청 폐지는 상당한 반대 여론에도 조국 서울대 교수의 법무장관 임명 이후 직면했던 문재인 정부의 ‘조국 사태’ 같은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검찰청 폐지라는 악수를 두는 대신, 차라리 검사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되 보완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보완 수사 요구에 구속력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합리적인 타협을 했더라면 지금 같은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것이 앞으로 이재명 정부의 잠재적 아킬레스건이 될 일도 없을 것이다.   당장은 검찰청 폐지를 아킬레스건으로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의 조국 사태처럼. 그러나 수사의 지연·공백·실종 등 인권보장 및 치안의 사각지대가 점점 더 넓어질수록 검찰청 폐지가 오류였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더욱이 그동안 정치검찰의 문제로 지목된 표적수사, 먼지떨이 수사와 정권에 대한 봐주기 수사가 수사권이 집중된 경찰에서는 더 심각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에서 정책의 정당성은 항상 주권자인 국민의 눈으로 평가된다. 이제라도 검찰청 폐지를 철회하거나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허용하는 등 최소한의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5.09.29 00:20

  • [리셋 코리아] 위기의 공적연금, 재정 전망부터 정확해야

    [리셋 코리아] 위기의 공적연금, 재정 전망부터 정확해야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리셋코리아 연금개혁분과 위원장 기존 연금제도가 유지되면 노인 빈곤율이 2025년 37.4%에서 2050년에는 42.3%로 치솟을 것이라는 지난해 국민연금연구원의 연구가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의 문제점을 들어 영구 비공개 처리한 것이 알려지면서, 최근 논란 끝에 내용이 공개되었다. 이 논란 직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보장 장기재정추계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한 해에만 국민연금은 206조원 수지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총지출이 2025년 50조원에서 2050년 322조원으로 급증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많은 논란 끝에 지난 3월 20일 국민연금법을 개정했음에도 모든 공적연금이 40년 안에 순차적으로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학연금도 저출생 직격탄을 맞아 교직원이 감소하면서 2047년 소진된다. 공무원연금은 206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지 적자가 0.69%로 올해보다 0.36%포인트 더 늘어난다. 올 한 해 적자 보전액 10조원의 두 배가 넘은 액수로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워야 한다. 사용자로서 국가가 부담하는 공무원연금 보험료 9%에 추가되는 액수가 이렇다.     ■  「 4대 공적연금 부채 3300조 넘어 나랏돈 충당으로 국가채무 급증 낙관적 전망 말고 정밀 추계해야 」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지출 급증으로 건강보험 재정은 8년 안에, 노인장기요양보험은 5년 안에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필자는 세계은행·경제협력개발기구(OECD)·유엔·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 요청으로 국내외 공적연금과 건강보험의 재정 전망을 수행했다. 2003년 1차 국민연금 재정계산부터 2023년의 5차 재정계산에 모두 참여했으며, 5차례 모두 재정안정 방안을 담당했다. 이 경험에 비추어보면 지난 3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제3차 장기재정전망(2025~2065)’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173.4%는 꽤 낙관적인 전망이라고 판단된다.   이 전망이 실제보다 장밋빛 전망에 근거하고 있다고 뒷받침할 수 있는 분석 자료는 적지 않다. 우선 2020년 ‘제2차 장기재정전망’(2020∼2060)에서 2060년 국가채무 비율이 GDP 대비 81.1%로 과소 추정되었다는 점을 감사원이 문제 삼았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감사원은 국가채무 비율이 이보다 두 배 이상이라고 봤다. 같은 2020년 기준으로 국회 예산정책처는 2060년 국가채무 비율을 158.7%로 추정하고 2070년엔 185.7%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지난 3월 국민연금법 개정에서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기로 함에 따라 후세대 부담을 더 키운 개악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 하에서의 2065년 국가채무 비율 전망치 173.4%는 지극히 낙관적인 가정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 중 하나가 미적립 부채다. 미적립 부채란 이미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대비 부족한 액수를 의미한다. 연금연구회가 추정한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는 2060조원(GDP 대비 84.8%), 국회 예산정책처의 추정치는 1820조원이다. 이미 지급하기로 약속한 국민연금 액수가 3000조원 이상이다 보니, 적립금이 1200조원 넘을지라도 국민연금을 지급하기에 이만큼이나 부족하다는 뜻이다. 공무원·군인연금의 충당부채는 작년 기준 1312조원으로, 1년 만에 82조7000억원이 늘어났다. 사학연금의 미적립 부채는 176조원(2022년 기준)으로 가입자 1인당 5억원 넘는 빚을 지고 있다. 노인 인구 급증으로 빠르게 늘어날 기초연금을 제외하고도, 아무리 적게 잡아도 4대 공적연금 부채가 이미 3300조원이 넘어간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기존 연금제도 유지 시 20년 뒤의 노인 빈곤율이 42.3%에 달한다는 연구 내용은 우리 사회 구성원을 혼란스럽게 한다. 모든 공적연금이 지속 불가능할 정도로 지출이 급증하는데도 노인 빈곤율은 지금보다 더 높아진다고 전망해서다.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 왜 공존하는지 그 이유와 배경을 따져봐야 할 때다. 국민연금법 개정안 통과 당시 정치권은 연금 구조개혁 논의를 위해 국회에 연금특위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벌써 5개월 넘게 지났음에도 특위 자문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전문가들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연금 구조개혁 논의를 서둘러야 할 때다. 연금은 지속 가능성이 관건이다. 구조개혁의 시간을 허비할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만 커진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리셋코리아 연금개혁분과 위원장  

    2025.09.22 00:22

  • [리셋 코리아] 대통령 국빈 방일과 한·일 신선언 기대

    [리셋 코리아] 대통령 국빈 방일과 한·일 신선언 기대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리셋코리아 한일관계 분과 위원장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한·일 양국은 미래지향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한·일 관계는 새 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순조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 대통령의 방일은 우리 대일외교에 세 가지 과제를 남겼다.   첫째, 한·일 관계의 미래비전을 담은 새로운 공동선언의 채택이다. 이 대통령은 방일에 앞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잇는 새로운 선언을 추진하고 싶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한·일 관계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1998년에 양국 정상은 과거사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정치·안보·경제·문화 교류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위한 행동계획을 제시했었다.     ■  「 한·일 미래비전 담은 새 선언 필요 22년 된 국빈 방일 함께 추진해야 일본 주도 CPTPP 가입 서두르길 」    이재명 정부의 신선언 추진의 배경에는 한·일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공동선언이 빛이 바랬다는 점 외에, 국제질서와 한·일 관계의 구조 변화가 있다. 1998년 당시 한국은 탈냉전과 세계화 속에서 ‘IMF 사태’ 극복을 위해 일본과의 협력이 절실했다. 지금은 미·중 관계 재편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협력이 필요한 때다. 한·일의 국력 차이는 줄어들었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상호인식도 몰라보게 바뀌었다. 신선언은 1998년 선언의 원래 취지를 되살리고, 한·일 관계의 전략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 이 대통령의 국빈 방일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 이후 20년 이상 한국 지도자의 국빈 방일은 없었다. 이는 “앞마당을 함께 쓰는” 국가 간에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양국이 신선언 추진에 합의한다면, 이 대통령의 국빈 방일이 함께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국빈 방일은 일본 국왕 즉, 천황의 초청을 받아 방문하는 행사여서 외국 정상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대단히 제한적이다. 이 대통령의 국빈 방일은 한·일 관계의 정상화를 상징하는 사건이 될 것이다.   셋째, 한국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이다. 미·중 패권경쟁과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은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재인식시켰다. 최근 경제계를 중심으로 한·일 경제공동체 논의가 제기되는 이유다. 미국은 고율 관세를 무기로 동맹국을 압박하고 있고, 중국의 기술력이 한국을 추격하면서 글로벌 무역질서가 우리에게 불리하게 재편되고 있다. 일본은 4조2000억 달러의 경제력을 가진 성숙한 시장으로, 우리와 같이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한국의 CPTPP 가입은 한·일 공동시장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최근 일본은 우리의 CPTPP 가입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동아시아와 태평양 연안국 간에 경제협력기구의 설립을 검토하겠다고 했고, 지난 3일 정부는 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CPTPP는 관세 철폐는 물론 디지털, 지식재산 등 무역 전반에 걸친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일본·호주·영국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CPTPP에 가입하면 사실상의 한·일 FTA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양자 기술, 수소 에너지 등과 같은 첨단 산업 협력은 물론 희토류 등의 공급망 구축, 청년 일자리 창출, 스타트업 지원 등에서 효율적인 공동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다. 관광 등 민간 교류가 활성화되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문제는 일본의 국내정치 변수다. 한국에 우호적인 이시바 총리가 사임을 공식화하면서다. 후임 총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한·일 관계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 정치지형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대로 한·일 협력의 의제와 일정에 대해 조속한 정부 간 협의가 중요하다.   한·일 양국은 지배-피지배, 선진국-개도국의 관계를 지나 국제정치의 주요 행위자로서 지역과 세계질서를 함께 논의하는 파트너 관계로 진입했다. 국교정상화 60주년인 올해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고, 이 대통령 스스로 신정부의 대일외교 방향과 기준을 설정했다. 이재명 정부가 이들 세 과제를 달성할 수 있다면, 역대 정부의 한·일 관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김대중 정부의 외교적 유산에 필적하는 업적이 될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리셋코리아 한일관계 분과 위원장    

    2025.09.15 00:25

  • [리셋 코리아] 한국도 스테이블코인 상용화 대비할 때

    [리셋 코리아] 한국도 스테이블코인 상용화 대비할 때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된 디지털 화폐다. 비트코인처럼 가격 변동이 크지 않아 실제 화폐처럼 쓰일 수 있고, 블록체인 기반이라 국경을 쉽게 넘는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수요는 폭발적이며, 대표적 사례인 테더(USDT)는 발행량이 이미 1000억 달러를 넘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지니어스(GENIUS)법을 통과시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시켰다.   미국은 왜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하였을까.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의 익명성을 이용하여 자금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 금융제재를 피해 러시아 같은 적국에 송금 또한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를 제도권에 편입하려는 데에는 의도가 있다.     ■  「 미국 ‘지니어스법’으로 법제화 블록체인 생태계 발전에 필수적 법정화폐에 연동돼 사용 늘어나 」    김지윤 기자 미국의 실익은 크다. 수백 조 원 규모의 시장을 역외 기업인 테더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살바도르에 등록된 테더는 미국 법망 밖에서 영업하고 있다. 미국은 법제화를 통해 테더를 자국 규제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 지니어스법을 따르지 않으면 3년 내 퇴출당하도록 했다. 일종의 ‘야생동물 길들이기’다.     미국은 또 부채 문제 해소도 기대할 수 있다. 달러는 초과 수요가 존재하고, 자국 통화가 신뢰를 잃은 국가에서는 달러가 공공연히 쓰인다. 이들 국가에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특히 편리하다.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이 미국 국채로 운용되기에, 스테이블코인 수요 증가는 곧 국채 수요 확대를 의미한다.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해외에서 원화를 쓰려는 수요가 미미하다. 과거 해외 거래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시도했지만 수요 부족으로 실패했다. 제도화를 통해 미래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은 있으나 현재로선 수요가 적다.     따라서 미국처럼 국채 수요 확대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생태계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전통 금융의 비효율을 줄여줄 수 있으며 블록체인 산업 성장에 필수적이다. 결제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여전히 1~2% 수준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비자 마스터카드 등 결제 네트워크 회사의 독과점 구조에 경쟁을 불어넣어 수수료를 낮출 수 있다.   미국과 다른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법제화 논의에서 중요한 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시장 과열에 따른 소비자 보호다. 아직 제도화되지도 않았지만 업체들의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승자독식이며 운영비는 적게 들지만 수익은 막대하기 때문이다. 테더가 100여 명 인력으로 연간 10조원 이상 버는 것이 그 예다. 국내는 초기 수요가 적어 과열 경쟁이 금융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적절한 발행자 규제가 필수적이다. 최소 자본금 요건뿐 아니라 은행과 유사하게 최소 자본비율 규정도 필요하다. 스테이블코인 사업은 본질적으로 레버리지에 의존하는 금융기관과 유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자본금 요건에만 치우쳐 있어 자본비율 규제를 통한 보완이 필요하다.     둘째는 수익의 공적 성격이다. 테더가 매년 수조 원을 버는 주된 원천은 화폐 발행에서 나오는 주조차익이다. 주조차익은 국가 통화의 독점적 발권력에 기인하는 공적 성격의 이익이다. 한국은행을 통해 국가에 귀속될 이익이 민간기업에 돌아가는 셈이다. 은행도 예대마진의 형태로 주조차익을 누리지만, 공공성을 전제로 규제를 받는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 어떤 공적 역할을 요구할지 논의가 필요하다.     셋째는 외환거래 문제다. 앞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송금은 더 늘어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본국 송금에, 해외기업은 무역대금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선호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외국환거래법을 피해 나간다. 더 큰 문제는 미국법 적용조차 받지 않는 테더와 같은 역외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법제화를 통해 해외 스테이블코인 규제도 병행해야 한다.     승자독식적 시장구조에서는 과열 경쟁이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발행자에 대한 적정 규제와 공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25.09.08 00:26

  • [리셋 코리아] 정책 실패가 부른 자살 1위, 예방은 국가 책무

    [리셋 코리아] 정책 실패가 부른 자살 1위, 예방은 국가 책무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리셋코리아 불평등해소 분과 위원장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자살은 사회적 재난”이라며 자살예방 문제에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 관심을 표명한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자살예방은 어느 한 부처나 전문가 집단의 몫이 아니다. 보건의료·복지·심리·교육·고용·주거·법률 등 사회 전 부문이 결합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다. 최고 정책결정자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적 해법이 불가능하다.     ■  「 빈곤·고용불안 등 사회적 요인 커 개인 문제로 보면 정책 실패 반복 범정부 협력 체계로 대처 나서야 」    지난 20여 년간 대한민국은 다섯 차례의 국가 차원 자살예방 정책을 추진했지만, 단 한 번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제1차 계획은 2010년까지 자살률을 인구 10만 명당 18명으로 낮추겠다고 했으나 실제는 31.2명에 달했다. 제2차 계획 역시 2013년 목표 20명에 현실은 28.5명, 제3차 계획은 2020년 목표 20명에 결과는 25.7명에 그쳤다. ‘행동’이라는 이름을 붙여 기대를 모았던 국가행동계획은 2022년까지 17명을 목표로 했지만 실제 수치는 25.2명이었다. 다섯 번째 계획이 시작된 2023년에도 자살률은 오히려 27.3명으로 상승하며,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책 설계 자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필자는 2018년 런던에서 열린 OECD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자살예방정책을 발표했던 순간의 복잡한 심정을 또렷이 기억한다. 발표 직후 많은 외국 전문가들이 한국의 훌륭한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한국 특유의 서류상 완성도임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지난 20년은 바로 그 ‘종이 위의 완벽함’이 실행력 부재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시간이었다.   이처럼 목표 달성에 번번이 실패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목표 설정의 비과학성이다. 자살의 원인과 현실, 그리고 변화하는 맥락에 대한 정밀한 분석 없이 단순한 수치만 제시한 것은 공허한 주먹구구식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둘째는 실행의 부실이다. 예산·인력·인프라·데이터 공유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담 확대와 캠페인에 머물렀고, 자살을 부추기는 구조적 위험 요인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 목표는 비현실적이었고, 실행은 무기력했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한 일시적 접근도 큰 문제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정부의 정신건강 예산 증액이다. 당시에는 3000억원 규모의 투입 계획설까지 거론됐고, 정부는 명목상 약 750억원을 증액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장기적 전략 없이 단발적으로 늘린 예산은 오히려 정책의 신뢰성과 지속성을 위협할 수 있기에 필자는 우려를 표했다. 실행 전략과 집행 계획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무엇보다 인프라와 인력 확충 없이 예산만 늘린다고 해서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심각했다. 나아가 사회적 비극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뒤따랐다.   자살예방정책은 단기적 성과 지표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에서 지역사회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연계된 안전망 구축, 장기간에 걸친 인프라 확충, 전문 인력 양성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자살률 감소는 공허한 약속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재작년 필자는 정부에 고용 불안, 주거 취약성, 정신건강 현황 등 자살과 직결된 지표들을 포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한 부처의 소관을 넘어선다”는 거절이었다. 바로 그 지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자살은 결코 한 부처의 과제가 아니며, 범정부적 협력과 전방위적 조정 없이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자살은 개인의 심리적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경제·사회·문화적 맥락이 함께 고려될 때 비로소 근본적 해결이 시작될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의 사회적 지지 수준, 최고의 노인빈곤율, 높은 가계부채율 등 여러 지표에서 위험 신호를 보인다. 여기에 교육과 노동 전반을 지배하는 과도한 경쟁 구조와 취약한 사회안전망까지 겹쳐 있다. 이러한 조건이 함께 개선되지 않는 한 자살률만 낮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국민의 생명권과 행복권을 보장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헌법적 책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리셋코리아 불평등해소 분과 위원장  

    2025.09.01 00:23

  • [리셋 코리아] 이제 서울·수도권에 주택 공급 대책 나와야

    [리셋 코리아] 이제 서울·수도권에 주택 공급 대책 나와야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부동산분과 위원장 새 정부 들어 첫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 직전 상황을 보자. 지난 6월 넷째 주(6월 23일 기준)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서울 주간 아파트 가격 변동률을 살펴보면 강북 지역의 성동구가 한 주간에 0.9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서울에서 주간 단위로 가장 많이 상승했었다. 강남 지역에서도 송파구가 0.88% 상승하면서 서울 지역 대부분이 급등했다. 이에 정부는 급상승하고 있는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서울·수도권 지역에 주택담보대출과 전세금 대출 등을 전면 규제하는 6·27대책을 발표했다.     ■  「 6·27 대책, 가격 안정 효과 발휘 지속적 안정 위해 공급 계획 시급 3기 신도시·도심 정비 서둘러야 」    이번 6·27대책은 발표 다음 날부터 즉시 시행돼 부동산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그 결과 한 달 반이 지난 8월 2주(8월 11일 기준) 한국부동산원 발표 자료를 보면 강북의 성동구가 0.13%로 상승 폭이 대폭 하락하였으며 송파구 역시 0.31%로 상승 폭이 대폭 하락했다. 이번 정부의 6·27대책으로 대부분 서울 아파트 단지에서는 매수 관망세가 확산하면서 거래 또한 감소하는 등 가격 상승세가 대폭 축소됐다. 하지만 여전히 주요 관심 지역의 물건 일부가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으며 일부 신축단지와 역세권 주택단지에서 상승세가 지속하고 있다.   6·27대책은 매매시장에서 수요감소로 이어지고 있어 가격 안정에는 분명히 도움을 주고 있지만 매매 수요가 대기수요로 남으면서 전세 공급량은 늘지 않는 상태인데 전세금 대출 규제가 이사철을 앞두고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어 불안하다. 특히, 전세보증금을 구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은 향후 보증금 상승분만큼 월세로 지불하는 보증부월세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월세나 보증부월세가 증가하게 되면 무주택 세입자들의 내 집 마련은 더 어렵게 될 것이며 월세 지불이 늘어나면 가계 소득에서 지불해야 하는 월세만큼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주거생활까지 힘들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정부의 6·27대책은 서울지역에서 급등하던 아파트 가격을 진정시키는 정도의 대책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왜냐하면 주택공급 정책은 지속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정책인데 공급 정책이 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 가격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공급 정책 말고는 수요의 증감과 유동성 자금의 증감(대출 규제와 완화, 이자 등)인데 이는 변동성이 크고 심리적 요인까지 작용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내놓을 수 없다. 그래서 시장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어 예측 가능한 주택공급 정책이 함께 발표됐어야 했다.   이번 6·27대책의 효과가 얼마나 지속할지 의문이지만 대책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정부는 하루빨리 서울·수도권에 주택공급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어디가 먼저인지, 어디가 더 시급한지 순서는 없지만 당장 시장이 불안한 곳부터 주택공급 대책이 본격화돼야 한다.   공급 대책으로는 아직 본격적으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3기 신도시의 조기 공급이 있다. 그리고 도심지의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사업)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확대다. 역세권 개발이나 도심 복합개발은 너무 많은 공공기여를 요구해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사업이 마무리된 곳이 없다. 공급을 위해서는 적정한 공공기여를 해야 사업이 추진된다. 국·공유지 등 유휴부지의 개발과 더불어 서리풀 지구 등 택지개발예정지구도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   더욱 시급한 것은 단기 주택공급이 가능한 비아파트 부분의 활성화 정책이다. 비아파트인 다세대·연립주택 등은 3~6개월이면 입주가 가능하다. 수요자들이 불안해하는 전세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이 나오면 공급이 분명 늘어날 수 있다. 또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오피스텔은 주택법 적용이 아니고 건축법 적용이다. 그래서 소형 오피스텔은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 주택시장은 정부의 규제정책도 필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요자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것이 힘들다면 이제는 서울 강남지역을 비롯하여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서 경기도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세제 혜택 등을 주고 수요를 분산하는 정책도 고민할 때가 되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부동산분과 위원장

    2025.08.25 00:26

  • [리셋 코리아] 한·미 관세 타결,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리셋 코리아] 한·미 관세 타결,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장 한·미 관세 협상이 유예기간 종료 직전 극적으로 타결됐다. 미국이 부과했던 25%의 상호관세는 일본·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투자와 1000억 달러 에너지 수입 등의 대가로 15%로 일괄 인하되었다. 한국은 사상 유례없는 3500억 달러(약 470조원) 규모의 대미투자 약정이라는 ‘초대형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협상타결에는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라는 구호를 내세워 실효성이 큰 1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방안을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 일본·EU의 협상 결과를 참고해 차별화된 대미 투자 방안을 제시하고, 국내적으로 수용이 어려운 쌀과 소고기 수입 확대를 막아냈다.     ■  「 구체적 후속 방안 수립 지금부터 기술과 인력의 유출 가능성 커져 국내 투자 여건 획기적 개선 시급 」    정부도 ‘최선’의 결과는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불확실성을 줄여 어느 정도 시장접근 안정성을 확보한 ‘차선’의 결과를 얻은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에서 경쟁국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지만, 자동차 관세 우위가 사라지는 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CNBC와의 인터뷰에서 대미 투자는 ‘대출’이 아닌 ‘선물’이라고 발언하는 등 우리 정부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점도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관세율, 투자, 수입 규모 등에 대해 숫자를 중심으로 큰 틀의 합의는 이루어졌지만, 구두 합의에 그쳤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구체적인 조건과 후속 세부 협력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지금부터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기가 될 수 있다.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우리 조선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고, 인공지능(AI)·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원자력발전 등 주요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주도적 위치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협상 타결을 전하면서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투자’이고 ‘투자수익의 90%를 미국이 보유한다(retain)’고 밝힌 점은 투자 이행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을 시사한다. 미국이 원할 때마다 현지 고용, 기술 공개, 공급망 조정 등 추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투자 이행이 부진하면 언제든 ‘관세 인상’ 카드가 재등장할 수도 있다. 해외투자 확대는 제조업 공동화, 국내 고용·기술 유출, 산업생태계 단절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기회 포착’과 ‘리스크 관리’를 병행해야 한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은 단순한 시장이득 교환이 아니라, 국제통상 질서의 본질적 재편에 대응하는 출발점이다. 대미 투자가 ‘숫자 채우기’나 정부의 보여주기 실적으로만 귀결되지 않도록, 경제안보, 산업생태계, 국가 경쟁력 관점에서 실질적 성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대미 투자의 거래조건을 재설계하면서 동시에 국내 투자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대미 거래에 ‘이행 담보 장치’(스냅백, 조건부 상응 조치, 분쟁조정 패스트트랙 등)를 요구해야 한다. 현지화와 재투자 조건, 한국 내 제조·고용 효과, 핵심 원천기술 역내 잔존 등 ‘국가 경제 주권’ 담보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 기업활동 여건을 악화시키면서 대미 투자를 독려하는 것은 한국 제조업의 르네상스가 아니라 몰락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조만간 개최하기로 합의한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이 공고해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 전략 등 안보 분야의 청구서를 들이밀고 추가 투자와 시장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투자, 고용 기여, 전략산업 협력 등에서 한국의 ‘안보 역할’을 데이터에 기반한 ‘직관적이면서 간단한 수치’로 제시하고, 방위산업, 인공지능, 우주·사이버안보 등 미래 안보 분야에서 한·미 간 ‘융합형 분업’ 구조를 선제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임기응변이 아닌 진정한 실용을 위한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늘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았다. 이번에도 그 길을 걸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장    

    2025.08.19 00:24

  • [리셋 코리아] ‘린치핀 기술’ 없으면 기술 주권도 없다

    [리셋 코리아] ‘린치핀 기술’ 없으면 기술 주권도 없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전 대통령 사이버특보 중국의 기술 굴기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상하이 외곽 축구장 225개 규모의 화웨이 R&D 센터, GPT-4에 필적하는 딥시크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중국 제조 2025’가 더는 청사진이 아님을 보여준다. 특히 화웨이의 AI 칩 ‘어센드(Ascend)’ 시리즈의 약진은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가 얼마나 전략적인지를 드러낸다.   더욱 주목할 점은 딥시크가 단순한 민간 기술이 아닌, 사실상 ‘국가 전략자산’으로 지정돼 핵심 개발자의 이직 제한과 여권 통제 등 기밀 수준의 관리 하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AI 기술을 자동차·통신·금융·국방 등 전 분야에 활용해 사회 시스템 전체를 지능화하려는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의 야망은 지상에 머물지 않는다. ‘삼체 컴퓨팅 성좌’는 우주 공간에 수퍼컴퓨터를 설치하려는 시도다. 이는 단순한 기술 추격이 아니라, 기존 질서와는 다른 ‘평행 우주’를 창조하고 자신들만의 규칙으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려는 선언이다.     ■  「 미·중 양쪽에서 압박당하는 한국 ‘전략적 불가결성’ 확보해야 생존 차세대 기술 위한 인재전략 필요 」    일러스트=김지윤 이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서 우리는 미·중 양 진영의 ‘전략적 집게발’에 갇혀 있다. 한쪽에서는 중국의 기술 자립이 반도체·배터리·스마트폰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을 잠식하고 있다. 화웨이는 어센드 칩, 하모니OS(운영시스템), 클라우드를 묶은 ‘레드테크’ 생태계를 통해 자립하고 있고, 한국 기업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삼성 스마트폰의 중국 점유율이 1% 이하로 떨어진 것은 변화의 서막일 뿐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등을 통해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압박한다. 희토류·흑연 등 핵심 광물의 대중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산업의 숨통이 조여지는 형국이다. 요소수 사태에서 보듯, 중국이 공급망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리스크와 미국의 압박 사이에서 우리는 전략적 자율성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낡은 외투는 벗어야 한다. 생존의 길은 단 하나, 누구도 한국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드는 ‘전략적 불가결성’을 확보하는 것, 즉 기술 주권이다.   첫째, 초격차 전략을 전략적 린치핀(linchpin) 전략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단순한 기술 우위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 모두 대체 불가능한 핵심 기술의 독점적 공급자가 돼야 한다. 정부가 선정한 12대 전략기술에 분산 투자하기보다는 AI 반도체의 심장인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전고체 배터리 등 특정 린치핀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양쪽 생태계 모두에 필수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둘째, 시스템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화웨이의 어센드는 개별 성능보다 클러스터 기술과 소프트웨어 최적화로 전체 성능을 극대화했다. 단일 부품의 초격차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메모리 반도체의 우위를 넘어, 이를 연결하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플랫폼 역량을 키워야 한다. 엔비디아의 진짜 힘은 하드웨어가 아닌 ‘쿠다(CUDA)’에 있고, 화웨이는 ‘칸(CANN)’을 키우고 있다. 한국형 AI 반도체나 차세대 통신 기술도 이를 뒷받침할 개방적이면서 강력한 소프트웨어 생태계 없이는 세계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셋째, 6세대 통신(6G), AI 윤리, 양자 암호통신 등 국제 표준이 미정인 신기술 분야에서 ‘규칙 제정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술 주권 전략은 정교한 인재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K테크 패스’ 같은 제도를 통해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인바운드 전략과 함께, 우리의 우수 인재를 중국 등 경쟁국으로 파견하는 아웃바운드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이는 인재들이 칭화대·베이징대·화웨이 등에서 직접 기술을 배우고 경험을 쌓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이들은 중국 기술 생태계를 깊이 이해하고 미래 협력이나 갈등 완화의 ‘기술 브리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지 언어·문화·기술에 정통한 네트워크는 어떤 외교 채널보다 강력한 자산이 된다.   향후 5년은 한국의 운명을 가를 골든타임이다. 중국은 기술 생태계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고, 미국은 기술 블록을 공고히 하고 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양 진영 모두로부터 소외될 것이다. 정파를 뛰어넘는 국가적 합의와 담대한 실행, 기술 주권을 향한 결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전 대통령 사이버특보    

    2025.08.11 00:22

  • [리셋 코리아] 증세 유혹 버리고 세제 구조부터 개선해야

    [리셋 코리아] 증세 유혹 버리고 세제 구조부터 개선해야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지난 6년간 누적된 재정수지 적자가 62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경제 둔화가 이어지며 재정 운용은 불가피하게 확장 기조로 전환됐다. 이로 인해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당할 손쉬운 수단은 증세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조세부담률이 10년 전 수준으로 후퇴한 역대 최악의 상황에서, 새 정부는 첫 세법 개정에서 재정난을 돌파하기 위한 해법으로 증세 기조를 선택한 것이다.   정책 무게중심을 세입 확충으로 기울이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막상 세법 개정의 유력 대상으로 꼽히는 구체적 내용은 실망에 가깝다. 정부 출범 석 달도 못 돼 준비 없이 내놓는 졸속 정책이란 생각마저 든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무위로 끝났기에, 어떠한 형태든 세법개정에서 대안 과세가 나와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결론이 증권거래세를 인상하고 대주주 과세 기준을 확대하는 식의 기존 세제로 복귀라면, 우리나라 조세정책 미래는 참으로 어둡다. 불합리한 과거 세제로의 퇴행에서 얻는 것은 세수 보강이 아니라 시장 왜곡이며, 형평성 대신 표적과세란 비판이 나올 뿐이다. 어렵더라도 금융투자와 관련해서는 보편적인 소득 기반 과세를 확대하는 방향이 자본소득 과세가 취할 길이다.     ■  「 성장 중시라더니 증세 정책 봇물 감면 축소 통한 세원 확보가 먼저 국제기구도 단순 세수 증대 경계 」    새 정부가 엄중한 경제 여건마저 외면하고 손쉬운 증세 유혹에 빠져드는 모습은 법인세율 인상에서도 나타난다. 2년 전 103조원까지 늘어났던 법인세수가 62조원으로 줄어든 것은 기업 실적 변동성 때문이다. 지난해 처음 가시화된 3조원가량의 세율인하 효과가 주범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세율 조정으로 마치 세수 흐름이 바뀌기라도 할 듯 호도하는 것은 집권당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평상시 1%포인트 세율 변화가 경제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집권당이 갖는 일종의 정책적 옵션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부가 출범 두 달여 만에 3년 전에 내린 법인세율부터 다시 올린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국내외 기업과 시장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명확하다. 10~20년을 내다보고 결정하는, 안 그래도 위험성 높은 대규모 투자가 국내에서 활성화되길 기대하기란 어렵다. 정권마다 법인세율이 널을 뛰는데 과감히 투자할 기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성장 중시 정부를 자처해도 임기 내내 따라다닐 것은 반기업 정서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뿐일 수 있다. 법인세 감면 축소를 통한 세원 확대가 먼저라는 정책의 본분을 지금이라도 지켜야 한다.   주주 친화 정책의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추진한다지만, 배당확대 가능성은 작다. 최종적으로 배당확대분만 저율과세될 것이기에, 유인이 크지 못하다. 현금이 많은 기업은 배당성향이 30%에 가까워 추가 확대 효과는 적다. 반면, 기업이익이 부족해 배당을 못 늘린 다수 기업이 약간의 세제 혜택으로 바뀔 것이란 생각은 순진에 가깝다. 만일, 법인세율 인상을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동시 시행하면, 코스피 5000 달성보다는 주가 하락 가능성이 더 크다. 정반대 조세정책 방향에 시장의 반응은 냉소에 가까울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최근 조세정책의 국제적 흐름은 세제의 구조개선을 통해 점진적으로 세입을 늘려가는 것을 최선의 정책으로 꼽는다. 일회적이고 단편적이며 세수 증대만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국제기구(IMF, OECD)들이 한결같이 경계하는 대상이다. 느린 속도지만 조세제도 구조를 조용히 변화시키며 중산층과 부유층, 기업의 세금 부담을 고르게 늘려가는 영국의 증세정책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반면, 부자증세 프레임에 의존해 부유층·기업에서 큰 세수증가를 꾀하겠다는 프랑스의 지난해 대규모 증세정책은 헛된 구호로 그칠 가능성이 점쳐지며,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치부되고 있다. 유럽연합(EU)으로부터 대규모 적자를 단기간에 해결하라는 압박을 받던 루마니아 정부가 낮은 소득세 부담은 젖혀두고 갑자기 부가가치세율을 올린 결과는 세수증가만 겨냥한 일회성 증세의 위험성을 웅변한다. 공무원들마저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헌법재판소가 위헌성을 판단해줘야 할 정도로 정책 수용성을 무시한 결과의 참혹함에서 새 정부 정책수립자들이 교훈을 얻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2025.08.04 00:16

  • [리셋 코리아] 불평등 더 키울 실험적 노동정책 자제해야

    [리셋 코리아] 불평등 더 키울 실험적 노동정책 자제해야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새 정부는 노동자의 권익 강화를 주요 정책 방향으로 설정하고, 노조법 2, 3조 개정(일명 ‘노란봉투법’), 주 4.5일제, 정년 연장 등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가 정의롭고 바람직한 가치로 보이고, 많은 이들에게 ‘당연한 진보’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은 그 명분이나 도입 취지보다 실제로 어떤 구조적 결과를 낳는지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 의도가 선하더라도 그 결과가 또 다른 불평등을 초래한다면 실용적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  「 노조법 개정, 중소기업 부담 가중 4.5일제는 영세기업 궁지로 몰아 의도와 다른 결과 초래할 가능성 」    경제 6단체 및 경제단체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8월 1일 노조법 개정을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법 2, 3조 개정안의 핵심은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완화하고, 교섭 대상을 원청까지 확대하는 데 있다. 겉보기에 이는 하청 및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다수 하청기업의 원청은 중소·중견기업이며, 이들 원청의 재정적 여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또 대다수의 사업장은 노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사 간 체계적인 대화 채널조차 있지도 않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은 13%에 불과하고, 30인 미만 사업장의 조직률은 고작 0.1%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섭 대상을 넓힌다고 해도 실질적인 혜택이 ‘현장’까지 도달하기는 어렵다.     근로시간 단축 역시 정책 추진의 배경에는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명분이 있다. 주 4.5일제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동일한 업무량과 납기를 유지하려면 인력 충원이나 생산성 향상이 병행되어야 한다. 대기업은 기술 투자나 인력 확충이 가능하지만, 영세·중소기업은 인건비 부담과 생산성 저하에 직면하게 된다. 제조업 생산성이 낮은 국내 현실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곧바로 납기 지연과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AI와 로봇 기반의 기술혁신을 근로시간 단축의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이는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바뀐 접근이다. 기술혁신이 선행되어야 단축이 가능한 것이지,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혁신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논의는 정년이 실질적으로 보장된 13%의 정규직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도 많은 민간기업은 정년 도래 이후 숙련자를 계약직으로 재고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법으로 정년을 연장하게 되면 혜택은 이미 안정된 고용 구조에 있는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에 집중된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를 유지한 채 정년이 늘어나면 고임금·저생산성 구조의 고착화가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은 청년 등 신규채용을 줄이고,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비정규직의 비중을 더 높일 수밖에 없다. 정년 연장은 일부의 권익 확대가 아니라, 전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공정성을 함께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정책은 실험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일단 도입하고, 문제는 나중에 보완하자”는 논리를 제시한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한번 도입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특히 구조적 문제가 있는 노동시장의 개혁을 위한 제도 설계에서 현실성이 부족하면 오히려 회복할 수 없는 장기적 부작용만 초래한다. 우리는 지금 AI와 자동화, 보호무역, 기후위기 등 복합적 구조 변화 속에 놓여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정책은 신중하고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실험이 아닌 현장 기반의 전략이어야 한다. 격차는 한국 노동시장의 본질적 구조 문제다. 이를 완화하려면 상징적 법 개정보다 실질적인 구조개선 방안이 필요하다.   정년 연장을 논하기 전에, 일자리를 찾는 대다수를 위한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고,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기보다 불안한 미래를 함께 극복하도록 기업 내 다각적 차원의 대화 채널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정책은 명분보다 결과로 말한다. 현행 법안들이 의도와 달리 또 다른 이중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그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진짜 개혁은, 가장 약한 곳에 닿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

    2025.07.28 00:22

  • [리셋 코리아] 코스피 5000 바란다면 과감한 혁신 해야

    [리셋 코리아] 코스피 5000 바란다면 과감한 혁신 해야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 대선 이후 긍정적 주가 평가가 부쩍 늘었다. 특히 국내보다 해외 쪽 견해가 더 긍정적이다. 모닝스타웰스의 마크 프레스켓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향후 10년간 한국 주식의 연평균 수익률을 11~12%로 예상했다. JP모간도 향후 2년 내 코스피 지수 5000 가능성을 거론했다.   긍정 평가는 상법 개정에서 시작되었다. 실로 상법 개정과 배당 분리과세 추진은 사채(私債) 양성화를 꾀한 자본시장육성법(1973년 1월)이래 가장 획기적 증권 관련 사안이라 하겠다. 물론 이번 제도 개편엔 기업 경영자들로선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대주주의 전횡을 억제해 기업을 튼실하게 만들 것 같다. 또 투자자 보호도 강화된다. 이러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상당히 줄어들 듯하다. 또 개정된 제도는 세계 성장률의 상향 예상(올해 2.8%, 내년 3.0%. IMF)과 맞물려 자산 선택에서 주식 선호를 높일 것 같다. 주가는 통상 경기수준보다 경기방향에서 영향받기 때문이다.     ■  「 독·프·브라질 개혁으로 증시 살려 주가 상승 원동력은 경제 활성화 상법 개정만으론 상승 지속 못해 」    김지윤 기자 새 정부는 이번 주가 상승을 경기 활성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부연하면 주가 상승이 개인 부(富)의 축적·내수 활성화, 기업의 원활한 자본조달·기업의 투자 확대로 이어졌으면 한다. 증권제도는 단기적 주가 등락 폭 관련 사안일 뿐이지 기업 가치의 추세적 상승과는 연관성이 크지 않다. 그래서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 등 여러 부담을 안고 있는 기업을 위해 경기 활성화 관련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슈뢰더 전 총리 재임 시기의 독일, 룰라 첫 대통령 재임 시절의 브라질, 마크롱 집권 초의 프랑스 개혁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독일 성장률은 1990년 통일 이후 2003년까지 대체로 2%를 하회했다. 낮은 성장률, 높은 실업률, 많은 실업수당은 국가 경제를 피폐시켰다. 그래서 당시 독일 총리 슈뢰더는 좌파였지만 2002년 8월부터 하르츠 법안을 네 단계에 걸쳐 시행했다. 특히 하르츠 법안 3, 4단계는 실업급여를 제한하고, 적법하게 알선된 일자리를 거부하면 실업급여를 삭감했다. 비인기정책이어서 슈뢰더는 다음 선거에서 패했다. 그러나 독일 경제는 부흥했고, 정권을 인수한 메르켈도 하르츠 개혁을 유지했다.   파격적 4단계 하르츠 법안이 2005년 1월부터 시행되자 독일 주가는 영국과 프랑스와 차별되었다. 그 결과 2025년 6월 현재 독일 주가는 2005년 1월과 대비할 때 영국과 프랑스보다 각각 378%, 358% 더 상승했다.   2003년 1월 브라질에서 좌파의 룰라 정부가 출범했다. 그는 노동, 사회보장제도, 세제, 농지 등 네 부문의 개혁과 중앙은행 독립을 추진했다.   노동개혁의 경우 임금의 과도한 상승을 자제하도록 하고 복지 관련 비용 등 노동비용을 줄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였다. 노동자의 노조기부금 폐지와 과다한 노동조합 수도 줄였다.   사회보장제도 개혁 목표는 공무원연금의 특혜 폐지, 민간과 공공으로 구분된 연기금의 일원화에 두었다. 또 세제 단순화와 세금 감면으로 생산을 촉진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 중앙은행이 고유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그 결과, 룰라 대통령의 첫 임기종료 전인 2010년 9월 브라질 주가는 취임 당시보다 546%, 달러 기준으로 1215%나 상승했다.   유럽의 병자로 비하되던 프랑스가 2017년 5월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크게 변했다. 마크롱이 노동 개혁에 나섰기 때문이다. 핵심은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해, 기업의 비용과 책임을 줄이는 것이다.   해고가 쉬워지자 기업들은 고용을 늘렸다. 실제로 2016년에 10%였던 실업률이 2022~2024년에는 7.3%로 낮아졌다. 7.3%는 1983년 이후 가장 낮다. 또 고용증가 과정에서 일자리 질이 좋아졌다. 경쟁적으로 채용하니 취업조건이 좋아진 것이다. 이렇게 되자 프랑스 증시도 활달해졌는데, 2019년 5월 이후 프랑스 주가 상승률은 독일보다는 낮지만 영국보다 50%가량 더 올랐다.   오직 개혁만이 경제 활성화와 주가 상승에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새 정부도 과감한 혁신을 추구하고, 진보를 표방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사구시도 참고했으면 한다. 실용적 자본주의의 실천이 기대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     

    2025.07.21 00:24

  • [리셋 코리아] 40조 벤처 투자 수도권 집중 벗어나야

    [리셋 코리아] 40조 벤처 투자 수도권 집중 벗어나야

    김영태 KAIST 기업가정신연구센터 교수 이재명 정부의 1호 공약에 포함된 연간 40조원 규모 벤처투자시장 조성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도전적인 정책이다. 2024년 말 현재 11조9000억원 수준인 벤처 투자를 4배 가까이 늘리는 야심 찬 목표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단순히 투자재원 증액을 넘어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편, 현재 국내 벤처투자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인재와 인프라가 수도권에 몰려있기 때문이지만, 협소한 국내 시장의 한계와 글로벌 진출의 어려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현상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벤처창업 생태계를 소금물 탱크에 비유하면, 스타트업은 소금이고 성장자금은 물이다. 물만 갑자기 늘리면 소금물이 희석되거나 탱크가 넘칠 위험이 있다. 탱크 용적을 전국으로 넓히고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혁신 스타트업을 키워내면서 출구(Exit)도 확대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  「 5개 광역권별로 4조씩 지원해 강점 살리고 해외 연계 꾀하는 자율적 벤처 생태계 구축해야 」    해법은 행정구역이 아닌 500만 명 규모 인구를 기준으로 한 5개 광역권별 특화 벤처창업 생태계 구축이다. 5개 광역경제권별로 축적된 제조 역량에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 생명과학·바이오테크, 에너지·기후대응, 첨단 소재·부품·장비, 우주항공·식품 등 글로벌 수요를 충족하는 클러스터로 육성해야 한다. 이들 생태계는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테스트 베드 역할을 담당하며, 각 권역의 특화 산업과 글로벌 밸류체인을 연결하는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 전 검증과 성장의 발판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도권 벤처투자 규모는 현재 10조원 규모에서 20조원으로 확대하되, 나머지 20조원으로 광역 단위별로 평균 4조원 내외의 벤처투자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형평성 차원의 자원배분이 아니다. 각 권역이 보유한 산업적 강점과 글로벌 밸류체인을 연결하여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혁신 거점을 만드는 전략적 선택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라도 글로벌 진출의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넉넉히 잡아도 투자유치 초기(Series A) 단계에서는 해외 진출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자원과 경험이 가장 부족한 창업 초기에 글로벌 비전을 심어주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새로운 혁신 모델(‘Double-TIPS’)을 제안한다. 과학기술원 등 우수 인재들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스타트업을 창업할 때, 지원금의 20%는 한국에서 기반을 다지는 데 사용하고 80%는 미국 등 해외 현지에서 시장 진출과 네트워크 구축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단순히 해외 벤처캐피털에 모태펀드를 출자하는 방식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뒷받침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각 광역권의 벤처투자 전문기관은 ‘지역 투자’와 ‘글로벌 투자’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권역 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은 물론, 해외 스타트업을 발굴해 해당 권역의 제조업체와 인프라를 테스트 베드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국내외 스타트업은 검증된 테스트 베드를 얻고, 이 과정에서 지역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학·연구기관이 함께 협업하도록 한다. 미국의 지역 제조 네트워크 같은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할 수 있다.     이런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광역 단위의 모태펀드 운용 기구를 별도로 설치하고 벤처펀드 출자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 아울러 창업 특별비자 제도를 활성화해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들이 지역 벤처 현장과 연결되도록 하고, 지역 대학의 기술지주회사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어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벤처창업은 본질적으로 통제가 아닌 자율과 확률의 게임이다. 따라서 정부는 기계공이 아닌 정원사의 관점으로 생태계를 바라봐야 한다. 불합리한 규제를 과감히 개혁하고, 각 권역의 특화산업과 글로벌 밸류체인을 연결하는 혁신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민관이 협력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혁신한 TIPS(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사례처럼, 새로운 협력 모델을 통해 지역 균형발전과 글로벌 경쟁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벤처창업 생태계로 거듭나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태 KAIST 기업가정신연구센터 교수 

    2025.07.14 00:26

  • [리셋 코리아] 미·중 넘어 다중 균형 국가전략 펼쳐야

    [리셋 코리아] 미·중 넘어 다중 균형 국가전략 펼쳐야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그간 국내 정치는 탄핵과 새 정부 출범으로 요동쳤지만, 주요국들은 대전환 시대에 걸맞게 자국의 국가전략을 수정해 나가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4월에 발표한 보고서(‘100일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트럼프 행정부 첫 100일간 전개한 외교정책의 성과와 전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우선 외교정책’, ‘공정한 경제와 무역 관계 구축’ 등 6개 주제로 구성된 보고서는 “미국이 지출하는 모든 달러, 지원 프로그램, 대외 정책은 다음 셋 중 하나의 질문-보다 안전하고, 보다 강하고, 보다 풍요로운 미국을 위한 정책인가-에 답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국 제일주의와 국익 우선주의의 정점이라 할 것이다.     ■  「 미국, 이해관계 좇아 다각적 협력 중국, 중화패권 부활에 전력 쏟아 한국도 중동·남미로 외연 넓혀야 」    김지윤 기자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중국-라틴 아메리카 공동의 미래’ 및 ‘기후·환경 리더스’ 국제행사에서 밝힌 연설 내용은, 중국의 대외 전략이 트럼프 행정부와 뚜렷이 대비됨을 보여준다. 미국이 축소한 해외 원조와 개발 협력을 확대하고, 기후·환경·에너지전환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연대(Solidarity), 개발, 문명화, 평화, 인적 연결 등 5개 프로그램을 축으로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한 협력 관계를 깊이 있게 구축할 것이며, 기후·환경 등 글로벌 공공재에 대해서는 다자주의, 국제협력, ‘정의로운’ 전환을 기조로 해결해 나갈 것을 선언했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제도 영역으로 진입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트럼프 2기 첫 조치로 주목받았던 국제개발처(USAID) 예산의 85%(800억 달러) 삭감과 기존 원조 사업들의 축소를 들어 미국의 리더십과 소프트파워가 약화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러한 시각은 일면 타당하나 미국의 국가 전략과 향후 지향점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원조 예산 삭감 그 자체만으로 미국의 영향력 쇠퇴의 징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보고서에 담긴 국가만도 40여 개국 이상으로 중국·러시아·북한·이란에 대해서는 위협 및 적성국으로 분류해 선제적 억제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파나마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서는 중국 일대일로 사업 철회, 이라크와는 이란 견제를 위해 30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협력 추진,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는 천연광물 공급망 확보 등, 대외 원조와 국제기구 분담금 축소로 발생한 가용 재원을 양자 중심의 선택적 경제·안보협력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당국이 발표하는 공식 문건들만 보면 마치 미국의 민주당 정부가 지향했던 자유주의 기반 다자주의와 해외 원조를 활용한 글로벌 책무성의 실천이라고 보일 만큼 유사성이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행간의 의미를 들여다보면, (중국 중심) 다자주의, (중국 국익) 국제개발 협력, (중국 문화 확산) 문명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국제 정세 속에서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안미경중’과 같은 이분적 접근은 다중 균형 전략이 요구되는 현실에 더는 부합하지 않는다. 이상에 치우친 균형자론 역시 달성 불가한 전략이다. ‘한반도 천동설’(『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김동현 저)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정 담론과 일방의 시각에 치우쳐 우리의 전략적 공간을 스스로 축소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위협에 최적의 대응 태세를 유지하되, 아·태 전략과 인·태 전략에 호응하는 국가전략의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   동남아시아는 물론 남미·동유럽·중동을 아우르는 ‘안보와 평화를 위한 해양 국제협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AI 시대 디지털 전환, 친환경 에너지, 분쟁 지역의 복구와 재건은 모두 한국이 경험과 역량을 축적해온 분야로, 국제사회에서 기대와 요청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개발 협력이 국내 자원을 소진한다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국내 산업과 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는 경제-외교-국방 융합 전략 수단임을 인식해야 한다. 올해는 마침 국제개발 협력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제4차 국제개발 협력 기본계획과 중점협력국 선정이 이루어지는 해이다. 국제사회의 거대한 흐름을 읽어내고, 우리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중장기 대응 전략을 수립할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자문위원    

    2025.07.08 00:24

  • [리셋 코리아] 코리아 피크,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리셋 코리아] 코리아 피크,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윤덕민 전 주일대사·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해방 이후 80년간 대한민국은 기적의 역사였다.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은 식민지배를 했던 일본의 국민소득을 앞지르고 일본과 맞먹는 수출 규모를 가진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인구 절반 이상인 2860만명이 지난해 해외여행에 나섰다. 지난 80년간 한국은 지속해서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이 부(富)의 절정이고 성장은커녕 추락할 것이라는 ‘코리아 피크(Korea Peak)’의 경고가 나온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보다 못 살게 될 희망 없는 나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  「 중국 위협에 직면한 한국 제조업 미국의 중국 견제가 기회 될 수도 북한 억제도 한·미동맹으로 가능 」    일러스트=김지윤 계엄과 스캔들로 점철된 대선 기간,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대외환경에 직면했다. 우리의 번영과 평화를 지켜온 국제사회의 작동 원리가 근본부터 바뀌고 있다. 일본은 현 대외환경을 국난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위기감이 없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위협적인 이웃 강대국의 존재를 잊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한 것은 전후 미국이 만든 자유주의 국제질서다. 세계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하면서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질서를 만든 장본인이 관세 폭탄으로 자유무역의 국제질서를 붕괴시키려 한다.   현 질서의 최대 수혜자인 중국은 대대적인 군비 확장과 함께 중화질서 부활을 노리는 패권 경쟁에 나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패권을 지키기 위한 혈전에 나섰다. 러시아도 제국의 부활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트럼프는 이를 규탄하는 유엔(UN) 결의안조차 찬성하지 않았다. 강대국의 자국 우선주의 앞에 정의와 국제법은 작동하지 않고 약소국은 전전긍긍이다. 우리가 국권을 상실했던 구한말과 같은 약육강식의 강대국 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코리아 피크’ 경고는 제조업과 기술에 있어 경쟁력 상실에도 기인한다. 우리 제조업은 중국의 강력한 위협에 직면했다. 2015년 중국 리커창 총리가 10년 내 세계 선진 공업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중국제조 2025’를 발표했을 때 우리는 반신반의했다. 10개 분야 중 4개 분야에서 세계 1위로 부상했고 사실상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우리 제조업을 추월했다. 중국이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기는커녕 세계시장은 물론 우리 시장에도 과잉생산된 중국 제품이 덤핑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미래를 좌우할 첨단기술은 더 암울하다.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터, 로봇, 배터리 모두 중국에 밀리고 있다. ‘안보는 미국이지만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은 과거의 말이다.   코리아 피크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은 우리에게 위기지만, 첨단기술을 차단하고 공급망을 재편하는 그의 대중 강경 정책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주력산업은 세계시장에서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리고 있었다.   미국의 대중 산업 견제는 우리 기업이 잃고 있는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천금과 같은 시간을 제공한다. 첨단기술에서 초격차를 만들기 위해 초당적인 협력과 함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트럼프가 만든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코리아 피크에서 중화질서의 변방으로 전락할 것이다. 트럼프가 꿈꾸는 미국의 부활은 반도체와 조선, 원자력, 에너지 등에서 동맹국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관세 등 현안을 조속히 매듭지어 한·미 간 불확실성을 없애고 긴밀한 협력체제를 가동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시작된 전쟁은 중동에서 타오르고 미·중 대결하에 대만과 한반도로 비화할 수 있다. 북한은 북·러 군사동맹을 부활하고 실전 경험과 함께 첨단 군사장비를 얻어내고 있다. 핵무장한 북한을 억제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굳건한 한·미동맹 외에 없다. 지정학 격변기에 다시 균형외교와 중재자를 운운한다면 우리는 철저히 외톨이가 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공약대로 포괄적 한·미전략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굳건히 해야 하며,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유럽·호주 등 민주진영과의 연대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민주 진영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가 돼야만, 중국이 우리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다소 껄끄럽더라도 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 참석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덕민 전 주일대사·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2025.06.30 00:26

  • [리셋 코리아] 대법관 증원, 공수처 전철 밟지 말아야

    [리셋 코리아] 대법관 증원, 공수처 전철 밟지 말아야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은 학계·법조계에서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고 제한 강화보다는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원칙적 공감대와 그 시기 및 방법 등 디테일의 문제는 구별해야 한다. 원칙적 정당성만을 앞세우고 디테일을 소홀히 해서 실패한 사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충분하지 않은가. 대법관 증원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해 대법원의 기능 자체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왜곡될 경우의 문제는 공수처 실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법원은 전체 법원의 무게 중심인 최고법원이며, 대법관은 그 핵심 인력이다. 대법관의 자격, 임명 절차와 방식은 재판의 공정성, 그 전제로서 사법부의 독립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확보 등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에는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  「 정당성 앞세워 졸속 증원 나서면 대법원 기능 훼손·왜곡할 가능성 사법부 장악용 코드인사 우려도 」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니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에 문제가 없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삼권분립의 기본 정신을 망각한 것이며, 통제 없는 권력 집중의 위험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시 국무회의가 통제 기능을 못 했다고 비판하면서 여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대법관을 중장기적으로 30명까지 증원하겠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1년에 4명씩, 4년 동안 16명 전원을 이재명 정부에서 모두 임명하겠다는 것은 대법원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이는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크게 훼손하고 삼권분립을 형해화하는 위험한 방식이다. 그 위험성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 있다.   첫째, 현재 14명 정원의 대법관은 해마다 평균 2.3명이 교체되는데, 그때마다 인물난이 적지 않다. 그런데 4년간 4명씩 더해서 평균 6.3명을 임명한다면 인물난은 훨씬 가중될 것이다. 특히 김명수 사법부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를 폐지한 이후 대법관 후보군으로 꼽을 수 있는 법관 인재풀이 많이 줄어든 것도 문제다.   둘째, 30명으로 대법관을 증원할 경우 대법원 전원합의체 운영이 매우 힘들게 된다. 민사부와 형사부를 나눠 2개의 전원합의체를 두자는 말도 있지만, 민사와 형사에 해당하지 않는 분야도 많다. 더욱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만 민사와 형사로 나눈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법원 조직 전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런 사전 준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일단 증원부터 하자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셋째, 이번 정부에서 4명, 그다음 정부에서 각기 4명씩 순차적으로 증원한다면 모를까, 이재명 정부에서 16명 모두를 증원하는 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사법부 코드 인사와 대법원 장악 의도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지난 5월 1일 대법원의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뒤집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자아낸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9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며, 우리 헌법재판소 기능까지 일부 수행하는 최고법원이다. 주(州) 법원과 연방법원에서 충분히 심리한 사건 중 연방대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소수의 사건만을 선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입하기 어려운 제도다.   독일의 대법원은 전문분야별로 5개의 연방대법원, 즉 (민·형사사건 담당의) 연방통상법원,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노동법원, 연방사회법원을 두는 전문법원 시스템으로, 대법관 수도 많을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는 대법관 증원은 굳이 따지자면 베네수엘라식이다. 전문성에 따른 법원 조직의 분화 없이 1개의 대법원에 대법관 30명을 두고 1개의 전원합의체를 운영하는 것은 비효율의 극치다. 오히려 현재보다 재판지연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또한 대법관 코드 인사와 결합한 대법관 증원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베네수엘라의 예가 잘 보여준다.   대법관 증원은 이런 모든 문제를 충분히 숙고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말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5.06.23 00:22

  • [리셋 코리아] 정부 지원, 영세기업·저소득층에 집중을

    [리셋 코리아] 정부 지원, 영세기업·저소득층에 집중을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장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를 제시했다. “유연한 실용정부”와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강조하며, 첫 번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한 것도 이러한 의지를 반영한다. 이는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경기 침체는 과거 동아시아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양상이 다르다. 한국 경제는 외부 충격보다 내부 체력 약화로 인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국내 소비 여력은 크게 줄었고, 주요 산업의 국제 경쟁력도 하락했다. 동시에 분배와 성장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복합적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 중심의 신국제 질서가 또 다른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  「 민생회복 내세운 기본소득 예고 재정 여건상 전면 실시 어려워 상법 등 충분한 사회적 합의 필요 」    김지윤 기자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정부는 민생 회복과 내수 진작을 위한 정책으로 기본소득제도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복지를 통합한 전면적 기본소득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실용적 기본소득 개념은 검토할 만하다. 이는 특히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과 영세 자영업자에게 소득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다. 지역 화폐도 저소득층 중심으로 지급해 소비 진작 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다. 주거 안정 역시 중요한 과제다. 분양 중심의 주택정책에서 벗어나, 정부 주도의 영구임대형 주택 공급을 확대해 저소득층이 투기 우려 없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경기회복과 장기적 성장동력 산업의 육성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고, 네거티브 규제 중심의 환경을 조성해 기업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이 대통령은 유세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을 핵심 성장산업으로 지목하고, 민간투자 100조원을 이끌어내 세계 각국의 AI 인재들이 한국에 몰려들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취임사에서 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 방향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지만, 자금과 기술 경쟁력이 충분한 대기업은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에 맡기면 된다. 중소 영세기업에 대해선 정부 지원을 강화하고, 부채 탕감보다는 대출이자 부담 경감이나 원금상환 연기 등 정책적 지원을 우선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 목표를 실현할 충분한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고금리와 가계 부채 누적으로 국민의 소비 여력은 이미 바닥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주요국 중 가장 높다. 여기에 재정 여건도 녹록지 않다. 올해 재정지출 증가율은 다소 줄었지만,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여전히 77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2019년 54조4000억원이던 재정적자는 이후 급격히 늘어, 지난해에는 104조8000억원까지 확대됐다. 올해 전망치를 포함하면 국가채무(D1)는 1277조원에 달하며, GDP 대비 48.3%로 2017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부는 민생을 살리고 경기를 회복시켜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정 여력도 고려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경기침체로 조세수입 전망도 어두운데 국회는 보다 강력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노란봉투법과 주 4.5일제 정책도 임기 초부터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제도가 당장의 경기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금처럼 경제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새로운 제도의 추진에 앞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밝힌 정부 주도의 강력한 경기 활성화 정책은 재정 여력이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현재 논의 중인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안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상당한 규모의 재정적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국가채무를 더 늘리지 않고도 정책을 실현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제한된 재정과 시장 활력을 조화시켜 민생 회복과 경기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솔로몬의 지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차기 한국경제학회장

    2025.06.16 00:26

  • [리셋 코리아] 새 정부 국민통합 의지, 인사 통해 입증해야

    [리셋 코리아] 새 정부 국민통합 의지, 인사 통해 입증해야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6·3 조기 대선을 통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최근 국무총리 후보자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정책실장, 경제수석, 사회수석 등 고위 정무직 인사를 단행했다. 앞으로 내각 장관에 대한 후속 인선도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재명 정부는 장차관급을 포함한 고위 정무직 인선에서 ‘국민에 대한 충직함’과 ‘성과로 증명된 유능함’을 인사의 핵심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 특히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즉시 업무 가능한 능력’과 ‘현장 전문성’을 중시하는 실사구시적 인재 등용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앞으로 이어질 고위 정무직 인사를 추진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항에 특히 유념해야 한다.     ■  「 새 정부 신속한 인사 불가피해도 인연 중시하면 탕평책 소홀해져 광범위한 인재풀 활용 노력해야 」    첫째, 행정부의 인사통제력 강화 가능성이다. 이재명 정부는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기능을 법무부에서 대통령실로 사실상 이관하게 된다. 어제 민정수석이 임명된 만큼 공직인사 검증이 본격화하게 됐다. 고위 정무직 인사권에 대한 대통령실 중앙집중화는 국정운영에 대한 행정부의 통제력을 높이고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한다. 또한 정책의 결정과 집행 과정의 속도를 신속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러한 검증시스템이 독립적인 외부감시를 담보하지 못한다면 인사가 역량이나 능력보다는 정파성 등 인연을 중시하는 정실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커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증폭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중앙인사위원회 같은 독립 기관의 활용이나 의회 인준 청문회, 그리고 ‘채용과정에 대한 외부 감독’ 과정을 강화하여 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둘째,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고위 정무직 인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인선 속도와 투명성 간의 균형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상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즉시 업무에 투입 가능한 역량’을 갖춘 자원을 신속하게 배치해야 하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의 검증된 인물이나 대통령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신뢰가 형성된 인물에게 의존할 가능성을 높인다.   이는 인선 과정의 투명성을 저해하고, 광범위한 인재풀의 탐색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사를 기획하는 데 한계를 가진다. 이를테면, 신속한 국정 운영과 독립적인 인사 검증이라는 두 가지 가치 간 잠재적인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어, 장기적으로 공정한 인사행정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한다. OECD 국가들의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환 기간을 거치는 인사시스템과 대비되는 점이다.   셋째, 능력 혹은 역량을 중시하는 인사의 지속 가능성 여부이다. 특히 ‘국민에 대한 충직함’의 인사 원칙은 현실적으로 행정부의 특정 정치적 의제나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으로 변질할 수 있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인재풀에 대한 객관적인 성과평가 및 전문성 검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행정의 전문성과 생산성을 지속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끝으로 통합의 실질적인 구현이라는 의제이다. ‘국민통합’이나 ‘반대 혹은 이견 세력의 포용’이라는 목표를 어떻게 인사에 반영할 것인가이다. 지금과 같은 초기 인선의 경우 특정 진영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인사 편중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점차 시정해 나가야 한다. 다양한 시각과 배경을 지닌 인재를 탕평책 차원에서 폭넓게 발탁하여,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국정운영의 폭넓은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최근 대선 후보 시절 유세에서 “좌측이든 우측이든, 빨강이든 파랑이든, 진영이나 이념이 뭐가 중요한가”라며 설파하지 않았던가.   이재명 정부는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실용적이고 성과 지향적인 인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책임성의 확보와 행정의 효율성이라는 공공가치 실현을 통해 국민의 폭넓은 신뢰와 지지를 얻기 위해 인사검증 시스템의 재정비 과정에서 독립적인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 인선 기준과 과정, 결과에 대한 대국민 소통 강화 등을 통해 고위 정무직 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2025.06.09 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