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자본시장은 주주자본주의로의 본격적인 전환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2024년 ‘밸류업’이 화두로 떠오른 이후 한국 증시는 기대와 우려 속에 출렁이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밸류업이 성공하면 증시가 회복되고, 실패하면 부진할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ESG 공시 확대와 맞물려 진행되는 자본시장의 근본적 변화를 간과한 것입니다. 기업 ESG 공시 담당자라면 다음 3가지 근본적 변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투자자가 주도하는 사회적 변화입니다. 가장 적극적인 투자자의 형태는 ‘주주행동주의’입니다. 2023년 SM 사태와 5대 금융지주에 대한 주주제안은 한국의 행동주의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이후 개인투자자의 주주 연대가 크게 확장되면서 주주 권익을 찾기 위한 사회적 운동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입니다. 앞으로도 주주총회마다 주주들은 수익 배분과 기업의 투명한 의사결정을 강하게 요구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부가 주도하는 제도적 변화입니다. 과거에 비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무역수지 적자와 국민연금 고갈 우려를 해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본시장을 통한 외국인 투자 유치로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고, 기업으로부터 주주환원을 유도해 운용 수익률을 높임으로써 달성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이어 주식시장에서도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주가치 증대와 투자자 보호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입니다.
실제 정부는 배당 절차 선진화 제도를 통해 ‘깜깜이 배당’에서 ‘배당 서프라이즈’가 가능한 자본시장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인적 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발행을 금지함으로써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밸류업 프로그램과 밸류업 지수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다양한 제도적 개선 중 하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기업의 내부적 변화입니다. 앞서 말한 사회적·제도적 변화가 아무리 잘 이뤄져도, 의사결정의 주체는 결국 기업입니다. 한국은 지난 50~60년간 산업화를 거치며, 현재 지배구조의 세대교체가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기업의 자본 정책과 성장전략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의 배당 성향이 증가하고, 자사주 소각이 늘어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주주자본주의가 정착되기 위해 사회적·제도적, 그리고 기업 내부의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번 시작되면 멈출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주주행동주의와 주주 연대가 확산되면서 1990년대부터 기업들의 주주환원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일본도 2014년 아베노믹스 정책 시행 이후 ‘세 번째 화살’로 주주환원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추진된 바 있습니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 일치 노력만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김기백 한국투자신탁운용 중소가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