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제국이 서기 7세기에 거대도시인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를 잃고, 에게 해 연안의 주요 대도시들이었던
에페소스,
스미르니,
아테네 등이 쇠락하면서 테살로니키가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사실 같은 7세기에 동방에서 페르시아 및 이슬람 세력과 사투를 벌일 때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졌던 발칸 반도는 다소 방치되었고, 그리하여 아바르 및 슬라브족의 침략에 해안지역 몇 곳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침탈되었다. 테살로니키도 이 때 동로마가 가까스로 지켰던 곳 중 하나였는데, 610년대에 이르면 시가지 자체가 성내로 쪼그라들고 주변의 슬라브인 정착지들에 둘러싸여, John V. A. Fine이라는 관련 사학자에 의하면
'사실상 슬라브의 바다에 떠 있는 로마의 섬과 같았다'고 할 정도였다.
[5] 영어 위키백과
Battle of Thessalonica에 따르면 이 시기에만 테살로니카 및 그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공성전이 5번이나 된다. 586년 혹은 597년, 604년,
615년,
617년,
676-678년. 특히 맨 뒤의 676-678은 시간대를 잘 보면 알 수 있지만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과 동시에 일어났는데, 중앙정부가 당연히 수도 콘스탄티노플 방어에 몰두해 있는 틈을 타 슬라브인들이 기회를 포착했다고 한다.
[6] 즉 제국의 제1·제2의 도시가 동시에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 이전 604, 615, 617년도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틈타 아바르인 및 슬라브인이 배후를 노렸던 것이다.
중세 초기 인구는 대략 수만 명, 중기와 말기에는 대략 10만~15만 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904년에는, 원래 동로마 출신의 전향자였으며 아바스에서는
트리폴리를 연고로 하여 그 지명이 붙었고 반쯤은
사략 해적의 수장이었던
트리폴리의 레오가
일시적으로 점령 및 약탈했었던 적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동시대에 같은 부류의 인물로서 활동했던(동로마 출신 전향자, 911년 키프로스 일시 점령 및 약탈)
타르수스의 다미아노스도 참고하면 좋다.
중세 테살로니키는 그리스-발칸 반도 지역의 육로와 에게해로 통하는 해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바로 다음가는 크고 중요한 도시였고, 제국 공동 수도라는 별칭도 생겼다. 다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크기와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에 그리스어로 그 도시(Η πολή, 이 폴리)라고만 하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가리키는 것이었고, 다른 도시들은 전부 마을(η χώρα, 이 호라)로 불렸으며 테살로니키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안나 콤니니는 그의 저서
알렉시아스에서 테살리아(θεσσάλια)의 마을(χώρα)이라는 표현을 썼다.
1080년대
알렉시오스 1세 시대 초기에
노르만족이
디라키온을 함락시키고 테살로니키에서 100여km 정도 떨어진
라리사까지 진출했으나 결국 테살로니카까지는 진입하지 못했다.
[7] 하지만 100년 지나고 나서 1180년대에는 달랐다. 영어 위키백과
Sack of Thessalonica (1185)에 의하면, 시장을 맡고 있던 다비도스 콤니노스가 방어를 소홀히 했고, 심지어 공성 준비를 하는 시칠리아(노르만)군이 공성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성 안에서 급습하는 것도 엄금했다.
[8] 또한 외부에서의 구원군도 제대로 조율이 안 되어서 동쪽 성벽에 균열이 나 손쉽게 함락당했다.
[9] 이후 수습 과정에서 발견된 시신만 7천여 구라고 할 정도로 대참극이 벌어졌다.
[10] 몇 년 전 1182년 안드로니코스 1세의
라틴인 학살에 대한 보복 성격도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시칠리아 왕국의 노르만족 또한 카톨릭을 받아들인 지 백 년이 넘어서 저 '라틴인'의 범주에 당연히 포함되었다)
[11], 어디 변방 도시도 아니고 제국 제2의 도시가 이렇게 어이없게 털리고 주민들도 많이 죽은 이 사건으로, 안 그래도 폭군이면서 동시에 암군이라 제위 유지가 위태위태하던
안드로니코스 1세는 직격탄을 맞아 반란으로 험한 꼴을 당하며 죽었다.
[12]1204년
4차 십자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얼마 되지 않아 테살로니키도 함락되었으며, 십자군 봉건 국가
라틴 제국의 봉신 영지인
테살로니카 왕국이 되었다. 그러나 건국된지 20년 만인 1224년,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이 테살로니카 왕국을 멸하며 도시를 점령함으로써 라틴 지배가 끝나고
테살로니카 제국이 되었다. 1242년에는
니케아 제국령이 되었다. 이후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하고 동로마 제국을 부활시키면서 다시 제국 제2의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부활한 제국의 국력이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위협에 시달리게 되었다. 1342년에는
열심당원(Zealots of Thessalonica)이라고 자칭한 도시 하층민들의 반란으로 공화정부가 수립되어 8년 동안 독립을 유지하다가 패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는
요안니스 5세와
요안니스 6세 간의
팔레올로고스 내전 과정에서 6세가 임명한 시장을 몰아내고 5세의 편을 들며 일어났으며, 여기에
4차 십자군 이후 콘스탄티노플의 절대적인 제국 내 권위가 일단 한 번 무너지자 테살로니카 내부에서 생긴 독자의식(언제까지 콘스탄티노플에 치여만 살 거냐)이 합쳐졌다고도 한다.
[13] 그래서 요안니스 5세와 6세의 내전이 1347년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테살로니카는 콘스탄티노플의 명령을 무시하고 1350년까지 독자행보를 했었다.
[14] 1389년에는
오스만 술탄국의 포위를 견디지 못하고 항복했고, 이후 동로마와 오스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1423년
베네치아 공화국에 양도되었다. 베네치아의 힘으로 그나마 좀 더 버텨 보려는 심산이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1430년
무라드 2세의 군대에 의해 최종적으로 정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