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조 桓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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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추존 국왕 | |
| 이름 | |
| 휘 | 이자춘(李子春) |
| 별호 | 환왕(桓王) |
| 묘호 | 환조(桓祖) |
| 시호 | 연무성환대왕(淵武聖桓大王) |
| 능호 | 정릉(定陵) 함경남도함주군 동천면 경흥리 |
| 신상정보 | |
| 출생일 | 1315년 1월 20일 |
| 출생지 | 고려동북면알동천호소 |
| 사망일 | 1360년 4월 18일 |
| 사망지 | 고려동북면영흥 |
| 부친 | 도조 |
| 모친 | 경순왕후 박씨 |
| 배우자 | 의혜왕후 최씨 |
| 자녀 | 5남 2녀 완풍대군,영성대군,태조,의안대군,정윤,정화공주,▨▨공주 |
환조 이자춘(桓祖 李子春,1315년1월 20일~몰년(1360년5월 3일(음력 4월 18일[1]) 또는1361년6월 3일(음력 4월 30일[2])) 미상)은고려의 무신이며조선의추존국왕이다.
조선을 건국한태조 이성계의 아버지로,본관은전주(全州)이며,고려동북면알동천호소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이춘과 함께원나라의 천호로 부임 하다가, 1356년공민왕이쌍성총관부 탈환 때 고려로 귀순 하였다.대중대부사복경과삭방도만호 겸병마사와,평장사 등을 역임한 그는, 사후에문하시중에 추증되었다.
조선 건국 후 아들 이성계에 의해환왕(桓王)으로 추존 되었다가, 연이어환조연무성환 대왕(桓祖淵武聖桓 大王)으로 추존 되었다.
아버지이춘(李椿)의 사후 형인이자흥(李自興)마저 연이어 사망하자, 어린 조카인이교주(李咬住)를 대신하여원나라의 천호(千戶)를 세습받아 재직하였고, 원나라의 후원에 힘입어 부원세력(附元勢力)인 이복동생의 외척인즉, 조씨(趙氏) 가문과의 대결에서 승리, 습직했으나, 그 후 원나라의 정책에 의하여 타격을 받게 됨에 따라 점차 원나라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이자춘은원나라의다루가치를 지냈다.[3] 그러나고려 공민왕이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부원세력이였던 조씨와 이씨에게 조상의 죄를 씻으라하여 이에 동조, 왕의 신임을 얻었다.
이때 대륙에서 원,명 교체기에 원나라의 세력이 약화된 것을 기회로 반원(反元) 정책을 추진하던고려 공민왕은 동북면의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와 연결되어 있는 친원사대파(親元事大派)인 기씨(奇氏)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이 지역에 유이민을 기반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이자춘을 끌어들일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를 알아차린 이자춘은 자신의 세력 기반을 유지하기 위하여1355년,고려에 투항하여 소부윤(少府尹)의 관직에 제수되었다. 이듬해유인우(柳仁雨)와 더불어 동북면을 협공하게 하여 쉽게 이 지역을 점령하여 원의 간섭기 이래 빼앗겼던 동북 영토를 99년 만에 회수하였다. 이로써 그는 그동안 뿌리 깊게 대립하였던 친원 세력인조소생을 제거하였다.
또한 이때의 전공으로 대중대부사복경(大中大夫司僕卿)이 되어 저택이 하사되었고, 오랫동안 그의 기반이었던동북면을 떠나개경에 머물게 되었다.
이후 개경에 머무른 지 1년 만에 그가 동북면으로 돌아가려 하자 그곳의 토착기반을 이용하여 고려의 조정을 배반할 것임을 들어 그의 동북면 귀환을 대신들이 반대하였으나 공민왕은 그가 아니면 동북면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朔方道萬戶兼兵馬使)로 임명하여 그는 다시 영흥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3년 뒤인1360년에 모든 관직을 사퇴 후 이듬해1361년에 영흥 향리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날짜와 관련하여 《이자춘 신도비명》, 《정릉 신도비명(1393)》, 《동문선》 등은 모두 경자년 4월 갑술일(1360년 4월 18일)에 사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태조실록》 총서와 《고려사》는 신축년 4월 경술일(1361년 4월 30일)에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사후문하시중에 증직,조선 건국 후 아들인 태조에 의해 환왕(桓王)으로추존, 손자인태종 때 다시금환조(桓祖)연무성환대왕(淵武聖桓大王)으로 추존되었다. 능은함경남도함흥시에 위치한정릉(定陵)이며,의혜왕후의화릉(和陵)도 같은 묘역에 위치해 있다.
부모[편집]
왕비[편집]
후궁[편집]
왕자[편집]
왕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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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英)은 임금의 서제(庶弟)이다. 여러 신하들이 모여서 조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