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남부 해안 지방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라스 터퍼리 머콘는(암하라어:ራስ ተፈሪ መኮንን→터퍼리 머콘는공작)이다. 혈연으로는아두와 전투에서 이름을 떨친 영웅 메넬리크 2세의 사촌 아들에 해당한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젊은 나이 각지의 주지사를 역임했다.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 말년에 이르러도 중요한 사항 모두를 암기하고, 메모의 종류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내정에서는 헌법 개정, 군사 현대화 등의 개혁이 시도되었지만 여전히 황제 독재를 계속하는 구체제를 유지했으며, 부유층은 부패를 일삼았기 때문에 경제적 발전을 이루지 못했고 국민의 생활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1960년대의 국민 일인당 연간 소득은 평균 70달러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하는 등 다양한 모순을 만들고 있었다.1960년에는 왕세자 아스화를 옹립한 육군 근위 부대의 쿠데타 미수 사건이 발생한다.
그 중에서도, 1970년부터 심각한기근과수에즈 운하 폐쇄에 의한 유가 상승에서 오는인플레이션의 악화는 국민생활을 악화시켰다. 일부 지배층은 농작물을 쌓아만 두고 있었고, 아사자가 농촌 지역에서 증가하는 등 에티오피아 사회는 극심한 혼란이 있었지만, 황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근을 은폐하는 등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1973년 이후 파업과 시위가 빈번히 발발했고,에리트레아에서는 내전이 발생해 사태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게다가 황제가 궁전에서 사육하고 있는 애완 사자에게 고기를 주고 있는 사진이 대중에 공개되면서 심각한 식량난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1973년 9월에는 황제의 손자인 이스칸데르 테스터 해군 부총독이 총구를 들이대고 퇴위를 강요하는 사건이 일어나 황제의 권위는 정부 내부에서도 급격히 떨어졌다.
1974년에멩기스투 육군 소령은 하일레 셀라시에를 폐위시켰다. 하일레 셀라시에는1975년8월 27일, 급작스럽게 사망했는데 공식 발표에는 전립선 수술 중에 발생한 합병증으로 죽었다고 하지만 일부 왕정 지지파들 사이에서는 독살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유해는1992년 그가 살았던 궁전 안에서 발굴되어,2000년에아디스아바바의 성 삼위일체 대성당 내 묘지에 묻혔다. 일설에는 수백명의 자녀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Nathaniel, Ras (2004) 50th Anniversary of His Imperial Majesty Haile Selassie I. Trafford Publishing .ISBN1412037026 . p. 30.
↑Iyob, Ruth. The Eritrean Struggle for Independence : Domination, Resistance, Nationalism, 1941-1993. African studies series, 82. Cambridge : 캠브리지 대학 출판부, 1995. p. 108
↑Pateman, Roy. Eritrea : even the stones are burning. Lawrenceville, NJ [ua] : Red Sea Press, 1998. pp. 96-97
↑Lata, Leenco. The Ethiopian State at the Crossroads : Decolonisation and Democratisation or Disintegration? Lawrenceville, NJ [ua] : Red Sea, 1999. pp. 9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