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출판사와 서점들은 페이퍼백을 선호하지 않았다. 양장본이 더 멋지다는 디자인적인 측면과 단단하여 소장하기 좋다는 점 이외에도 페이퍼백보다 평균 10배 정도 비싸다는 점 때문에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이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양장본 제본에 들어가는목면이 군용위장망으로 쓰여 소비가 제한되고, 서점 뿐만 아니라 약국이나 소매점에서 페이퍼백을 팔아 수익을 올리던포켓북스 출판사의 영업 전략이 들어맞으면서 같은 종이로 더 많은 책을 만들 수 있는데다가 양장본을 선호하던 사람들도 전시 물자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페이퍼백을 인정하게 되었다. 1939년 20만 권의 판매량을 밑돌았던 페이퍼백은 1943년에 이르면서 4000만 권 넘게 판매되는 등 주된 제본 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1]
페이퍼백의 대대적인 보급은 영내 도서인진중문고를 미군 내에 보급하는 기부운동에서도 도움을 받았는데,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25년 동안 평화로운 상태에서 나치 독일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갑작스레 많은 수의 병사를 훈련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훈련과 엄격한 영내 생활에 지친 병사들에게 즐거움과 오락을 제공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42-47 한정된 자원으로 음악과 운동은 약간의 오락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미군 병사들은 자유 시간에 혼자서 편지를 쓰거나, 독서를 하거나, 영화나 라디오를 시청하는 등 독립적인 활동을 원했다.[2]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진중도서 1천만 권을 모으는 걸 목표한 미국의승리 도서 캠페인(Victory Book Campaign)이 진행되었고 1942년 목표를 달성했다.[3] 하지만 이렇게 모인 양장본은 훈련소, 해군 함정의 도서관, 야전 병원이나 병영의 독서회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보병의 경우 무거운 양장본을 넣고 다니며 전투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4] 게다가 1943년 들어 미진해진 승리 도서 캠페인은 군의 예산을 들여 책을 구매하게끔 전쟁부를 압박했고 많은 도서를 구비하기 위해 가격이 싼 페이퍼백으로 제본된 책들을 대량 구매한 것은 미국 내 출판 시장에서 페이퍼백이 주된 제본 방식 중 하나로 자리잡는 데 기여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