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종족 구성에 대한 기존 문서는 한국 고고학계의 거목인 노중국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였으며, 그 논문은 기존의 학설들에 근거하여 종족 구성을 재구성한 논문입니다. 그런데 교차검증이 안되었다는 이유로 문서가 통채로 되돌려 졌는데, 교차 검증이 안된 부분만을 되돌리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상술했듯이 일반적인 통설에 근거한 논문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교차검증이 된 논문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노중국 교수 개인의 견해가 있다면 그부분만 삭제하는것이 맞다고 봅니다.M.W.Kang43 (토론)2025년 9월 22일 (월) 17:34 (KST)답변
일단 각설하고 핵심 문제부터 짚어드리겠습니다. 지금 종족 구성이라고 하셨는데, 백제의 경우 '민족' 구성 집단이 맞겠죠. 표현 자체부터 오류가 있다고 보고요. 둘째, 개인의 논문이 신뢰할 수 있다는 근거로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옮겨서 올리는 것은 위키백과에서 권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일단 노중국 교수가 '권위가 있다'라 할지라도, 그 논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위키백과:저작권'에 어긋나는 것이며, 해당 내용이 사실이 아닌 통설에 의거한 논문을 그대로 가져다는 쓰는 것은위키백과:비주류 이론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키백과의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 정책에 저촉될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이미 노중국 교수님의 논문을 그대로 가져다쓰는 것이 위키백과의 어떤 원칙에 위배되는 지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것에 대해 '교차검증'이 무엇이냐고 정의를 내려달라는 것으로 토론을 이끌어가시면 저로서도 토론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 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9월 23일 (화) 09:40 (KST)답변
제가 궁금한 것은 위키백과의 많은 문장들이 1~2명의 인용, 혹은 전혀 출처 없는 서술도 많습니다. 제가 인용한 "百濟의 姓氏와 貴族家門의 出自"의 경우 KCI 피인용 횟수 :26 나 될 정도로 다수가 받아들이는 학설로 판단되어 서술한 것입니다.
내용을 보아도 사실과 다른 부분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사서나 통설을 인용하여 분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비주류이론도 아니며 독자연구는 더더욱 아닙니다. 어떤 부분에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술했다시피 피인용 횟수 26건이면 상당한 수준입니다. 참고로 KCI 기관별 피인용수 보면 1위 서울대학교가 논문 1개당 인용수가 4.58입니다. 이정도면 주류로 보아야하지 않나요?M.W.Kang43 (토론)2025년 9월 23일 (화) 10:43 (KST)답변
지금 이 논문 자체를 '사실'로 규정하는 것부터가 현재 토론의 핵심 원인이라고 보여집니다. 아무래도 사용자님이 교수님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핵심부터 짚고 가죠. 첫째, 통설이라고 해서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소위 통설이라고 믿었던 고이왕-근초고왕 또는 온조왕 시기 마한 병합설의 경우, 유물 조사와 기록 대조를 통해 최소 5세기에서 최대 6세기까지 마한이 한반도에 존속했다는 것에 힘이 실리고 있죠. 이것만 봐도 학설은 언제든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통설이라고 할지라도요.
둘째, 교차검증에 대해 자꾸 대한민국 사학계로 한정지으시는데, 여기는 '한국어판 위키백과'이지, '한국 위키백과'가 아닙니다. 일본이나 중국 쪽에서 백제 민족 구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있을 수 있고, 서양 쪽에서 백제에 대하여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놓은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차검증이란 이런 모든 걸 꼼꼼이 분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 한국어판의 경우, 그 정도로까지 '충실하게' 검토하시는 분들의 글을 보고 싶으시면위키백과:좋은 글과위키백과:알찬 글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셋째, 인용 수를 가지고 이야기하시는데, 그 논점이라면, 일제 시대 임나일본부설이나 중국의 동북공정도 충분히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거 아닌가요.위키백과:비주류 이론#저명성과 용인 가능성을 보시면 "위키백과는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는 공간도 아니고, 학계라든지 하는, 어떤 특정한 체제의 구성원 일반이 가진 편견을 반박하는 곳도 아니고, 어쨌든 다른 곳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주제를 홍보하는 곳도 아닙니다"라고 명백하게 나와 있습니다. 노중국 교수님의 인용 횟수가 26건이라고 하셨는데, 그 26건의 이용 횟수가 같은 학회 또는 같은 백제사 연구 관련 논문에 인용된 것인지 아닌지는 찾아보면 금방 나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해당 논문을 별도의 문단으로 나누어서 서술하는 것은 위키백과에서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교수님이시라면, 위키백과에서 학설을 무조건 게재하는 것보다는 위키백과의 지침과 정책에 맞는 학설이 무엇인지 검토를 하신 뒤에 학설을 올리는 걸 추천드립니다. 타 사용자들과 협업하시는 것을 우선 권장드리고, 위키백과에는 역사 마니아 분들도 많으니 그 분들께 조언을 구하는 것도 권장드립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9월 23일 (화) 11:20 (KST)답변
자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우선 저는 교수가 아닌 점을 말씀드리고요.
간략하게 한 가지만 더 질문을 드려도될까요?
핵심은 사실 여부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제가 작성한 백제의 종족이 부여계, 예맥계, 한(韓)계, 한(漢)계, 왜계로 구성되어있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가 제가 처음부터 궁금했던 것이었습니다.
백제가 부여계 왕족, 선주민 한족, 예족, 근초고왕 시 진출한 맥족, 낙랑군/대방군/부연의 유민 한족, 왜의 이주민 들은 각종 사서나 논문에서 인정하는 통설입니다. 어느 부분이 사실이 아닌건지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M.W.Kang43 (토론)2025년 9월 23일 (화) 12:10 (KST)답변
통설의 의미가 뭡니까. "세상에 널리 알려지거나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설." 아닌가요. 그것이 어디에서 인정됩니까. 한국 쪽 학계에서 통용되는 거 아닌가요. 일본 쪽이나 중국 쪽 기록은 어떻게 서술되어 있던가요. 거기서도 백제가 "백제가 부여계 왕족, 선주민 한족, 예족, 근초고왕 시 진출한 맥족, 낙랑군/대방군/부연의 유민 한족, 왜의 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구체적으로 서술이 되어 있었나요.
그리고 백제에 대한 연구가 우리랑 비교해서 미비한 다른 나라의 학설에 없다는 이유로 통설이되는건 어불성설 같습니다. 일본 특정시대 특정사건에 대한 일본내 통설이 한국 학계에 언급이 없으면 일본 위키에 작성을 못한다는 말씀인지요?M.W.Kang43 (토론)2025년 9월 23일 (화) 12:19 (KST)답변
"그리고 백제에 대한 연구가 우리랑 비교해서 미비한 다른 나라의 학설에 없다는 이유로 통설이되는건 어불성설 같습니다. 일본 특정시대 특정사건에 대한 일본내 통설이 한국 학계에 언급이 없으면 일본 위키에 작성을 못한다는 말씀인지요?" 이건 또 무슨 논리이신지요.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9월 23일 (화) 12:21 (KST)답변
노중국 교수의 '논문'을 아무런 '교차검증' 및 비판 없이 '사실'로 치부하고 문서를 게재하셨습니다. -> 그렇다면 이러한 견해도 있다 라는 식으로 서술하면 되는건지요?
문 인용은 가능하나, 위키백과 정책상 논문을 '사실처럼' 서술하는 것은 독자 연구 위배 + 논문 내용을 복붙하는 것은 저작권 위배에 해당합니다. -> 저는 '사실처럼'이 아니라 '사실'이며 그 이유로 '사서기록 인용', '고고학적 증명', '다수 학자지지'를 들었습니다. '사실처럼'이 '사실'로 인정받으려면 이것 말고 추가로 필요한 조건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1번은 그대로 가시면 될 것 같고, 2번의 경우에는 지난번이사지왕 토론과 동일한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사실처럼 서술하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요. 왜 해계, 왜계 구성원이 있다,라고 서술하시죠? 왜계, 맥계, 대방계가 구성원이었다고 '추정된다'라고 서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노중국 교수님의 논문이 사실이라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고고학적 결론 아닌가요? 이게 사실이라고 해버리면, 다른 모든 반박 논문들은 비주류가 되는데, 그러면 이건 사용자님이 '노중국 교수의 논문'= '사실'이라고 독자적으로 생각하신 것 아닌가요?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9월 23일 (화) 12:38 (KST)답변
제가 아는한 백제의 종족 구성이 부여, 예, 맥, 한, 한, 왜에 대해 반론은 보지 못했습니다. 사서에도 명시된 구성원들이구요. 단순히 논문을 인용한 이유로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짓는것이 저는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 싶습니다.M.W.Kang43 (토론)2025년 9월 23일 (화) 12:42 (KST)답변
'노중국 교수의 논문'= '사실'이라고 독자적으로 생각하신 것 아닌가요?라고 질문을 하셔서 저는 아닙니다. '사서기록', '고고학'적으로 검증된 통설입니다 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부분에 대해서 부정하시면 세상에 '통설'은 없는건가요? 있다면 '통설'이라고 서술하려면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건가요?M.W.Kang43 (토론)2025년 9월 23일 (화) 12:54 (KST)답변
구체적으로 한 단락(부여계)를 가지고서 논의를 해보는 것이 토론에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우선
백제의 왕족이다.부여로부터 백제로 이어진 계통을 살펴보면, 우선온조 시조설에 의하면북부여(北扶餘) 난을 피하여 온추모(鄒牟)가졸본부여 지역에고구려를 건국하였고졸본부여에서 남하한추모의 아들온조가하남 위례성에 백제를 건국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비류 백제설에 의하면 원래북부여의 왕해부루가 천제의 아들임을 칭하는해모수에게 왕위를 물려주고가섭원으로 가서동부여의 시조가 되었는데해부루의 서손인우태의 아들비류가미추홀에 백제를 건국한 것으로 나온다. 이들 두 세력은 백제의 가장 강력한 왕족으로 군림한다.
온조 시조설에 의하면, 이라고 나와 있잖아요. 해당 문단 역시 학설에 의거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비류 백제설. 이건 비류백제라는 건국 자체가 논란이 분분한 가설인데, 이걸 아무런 의미 없이 수용하신다는 것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사용자님의 자료 수용 방식에 지적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더 이상 백제 토론란이 아닌 사용자 토론란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9월 23일 (화) 13:10 (KST)답변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출처에 따라 "00사서에는 ~게 기록되어있다" 라던지 "000은 ~한 견해를 제시한바 있다" 등의 문장으로 서술하고, 비중 부분은 사서의 기록이나 다수의 주장은 비중을 주고, 1인 의견은 낮추면 되겠지요?M.W.Kang43 (토론)2025년 9월 24일 (수) 08:43 (KST)답변
그러나 위키백과에서는 사서만을 신뢰할수 있는 출처로 보지 않습니다. 위키정책에 부합하는 신뢰할만한 출처에 기반한 글은 작성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의견 부탁드립니다.
대체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 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된 도서,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 그리고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입니다. 통상적으로 사실의 확인, 법적인 문제의 검토, 특정한 일에 대한 증거와 논의를 세밀하게 검토를 한 출처일수록 더욱 신뢰할 수 있습니다.M.W.Kang43 (토론)2025년 9월 24일 (수) 11:11 (KST)답변
학술지의 한계에 관해서는 앞서 설명을 드린 바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다른 언어판들(특히 영어판)의 역사 문서들을 찾아볼 경우 문서들에서는 사료나 역사서에 적힌 기록들을 주로 기록하지 논문에 있는 내용(주장)을 정설인 양 출처로 넣으면서 기록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도 학계에 있는 입장이다보니 소위 '논문만능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YellowTurtle9 (토론)2025년 9월 24일 (수) 11:24 (KST)답변
다른 언어 위키가 기준이 될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위기정책이 기준이 되어야할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논문 만능주의는 문제라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위키 지침에서도 "위키백과는 전 세계의 과학자, 학자, 연구자들이 작성한 확립된 문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라고 밝혔듯이 어쩔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수설과 소수설의 비중을 합리적으로 분배해서 서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M.W.Kang43 (토론)2025년 9월 24일 (수) 11:46 (KST)답변
"위키백과는 전 세계의 과학자, 학자, 연구자들이 작성한 확립된 문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이 새로운 학설들이 제기될 때마다 모두 그 학설들을 기록해야 한다거나 다수설, 소수설을 모두 기록해야 한다거나와 같은 것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다수설과 소수설을 어떻게 나누는지도 위험하다고 보는 게, 단순히 논문의 개수나 인용 횟수, 그 분야의 권위자냐 아니냐만으로 다수와 소수를 구별할 수 없으며 다수설인지, 소수설인지는 그것을 작성하는 작성자의 주관이 크게 작용하기에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학 분야에서 논문의 내용을 소위 정설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 간주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왕족이 부여계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백제민의 구성이 부여, 예, 맥, 한, 한, 왜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YellowTurtle9 (토론)2025년 9월 24일 (수) 12:33 (KST)답변
백제 주민민구성이라는 문단에 부여, 예, 맥 한, 한 왜를 서술하는데 문제는 없을것 같습니다.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부여 : 백제의 선조가 부여라는 기록은 삼국삭, 위서, 주서, 북사, 수서, 신당서 등 여러 사서를 통해 확인됩니다.
예, 맥, 한 : 삼국지를 비롯한 여러 사서에서 한반도 중부, 남부 지역에 삼한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만주~경기북부에 걸쳐 예/맥이 거주했음은 거의 통설임에 귀하께서도 동의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漢) : 수서 백제전에 "사람들은 신라·고구려·왜 등이 섞여 있으며, 중국사람도 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낙랑/대방인의 이주(윤용구, 2007), 북연 유민의 유입(정재윤 2012, 노중국 2007) 등을 소수 견해로 서술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듯 합니다.
왜 : 『일본서기』에는 왜계 출신자로서 백제의 관료로 복무한 자들이 다수 확인되며, 왜인과 한반도에 거주하던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식을 '한자(韓子)'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음을 서술하면 무리는 없을듯 합니다.
옐로터틀 님의 입장에 동의합니다.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에 따르면, 위키백과는 학술을 두고 그것이 맞는지 다투는 공간이 아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간단하게 논문이 얼마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인지, 그리고 그 통설이 지금 학계에서도 유효한지, 무엇보다도 이것이 백제 문서에 별도로 쓰일 정도로 비중이 있는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참고로 수서, 위서, 주서, 삼국사기의 경우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 지에 대한 논의가 2000년대 이후 여러 차례 있었으며, 일본서기는 8세기 이전까지의 기록은 역사 왜곡이 심하다는 것이 2020년대 학계에서 수용하고 있는 설입니다. 통설이나 노중국 교수 및 관련 학계 논문이 아닌, 위키백과의 원칙과 지침에 의거해, 해당 사항이 위키백과 내에 쓰였을 때 독자연구, 중립성 문제로 비칠 수 있는 내용인지 다시 한 번 검토해주시기를 양측 모두에 요청하는 바입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9월 24일 (수) 19:16 (KST)답변
해당 내용이 논문과 같은 2차 사료만이 아닌 1차 사료에도 언급되어 있는 점은 문서에 적힐 수 있는 당위성을 어느 정도 보충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본서기》의 경우 고대 한반도 역사를 참조할 때 신뢰도가 높지는 않은 사료이기 때문에 이 사료는 비판적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낙랑/대방인의 이주(윤용구, 2007), 북연 유민의 유입(정재윤 2012, 노중국 2007) 등"을 언급하는 부분은 "●●는 (□□에 관헤) ~~라고 언급했다." 또는 "☆☆에 대해서는 ~~한 견해가 있다."와 같은 식으로 그것이 확실시된 정설이 아닌 가설이자 개인의 견해임을 명확히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네 저역시도 일본서기 등 신뢰성에 논란이 있는 일부 사료나 소수의 견해는 ~에는 ~라고 기록되어있다. ~는 ~라는 견해를 제시한바 있다. 등의 서술이 맞다고 봅니다. 귀하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며 이에 맞게 문서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성 후에도 추가 의견 주시면 협의하여 개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M.W.Kang43 (토론)2025년 9월 25일 (목) 08:44 (KST)답변
저는 지금 문서 작성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이런 식으로 문서 서술을 이어가겠다고 하는 것은 토론 협업에 위배된다고 보입니다. 위키백과는 소수 학설을 게재하거나, 본인의 사관을 기록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노중국 교수의 논문을 어영부영 기재하려는 시도는, 과거 이사지왕 토론에서도 문제로 지적된 바 있습니다.
이 모든 토론의 전제조건은, 2005년에 서술된 '노중국 교수'의 논문이 통설이다 라는 가제가 참이 되어야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M.W.Kang43 님은 제가 해당 사용자를 차단 요청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 의견은 묵살하고 YellowTurtle9 님의 의견에만 동조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토론에 돌아오라고 해놓고, 이런 식으로 본인 스스로 독자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명백한 협업 정신 위반입니다. 노중국 교수의 논문이, 위키백과 지침에 의거하여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인지 검증해주시고, 이에 대한 검증 절차가 없다면, 이 토론은 위의 편집분쟁을 반복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9월 25일 (목) 09:55 (KST)답변
해당 사용자가 저와의 토론에서 '본인이 아는 한' 노중국 교수의 학설이 통설이라고 '알고 있다'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며, 인용 수가 많다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이사지왕 토론에서도 지적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명백하게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에 인용된 "독단적으로 출처 내용을 분석하거나 정리, 종합하는 행위도 포함"하는 것이기에 상당히 주의를 요구한다고도 몇 차례 걸쳐서 이야기를 했고, 이것을 해당 사용자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이 토론 분쟁의 핵심이었습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9월 25일 (목) 10:06 (KST)답변
직접 논문을 읽어보았습니다. 추측성 문장이 많고 2000년대의 것이라 최신 업데이트도 되지 않았습니다. 원하신다면 링크를 첨부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해당 논문이 2020년대 현재 학계에서 통용되는 설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종족 구성이라는 이 내용이 별도의 문단까지 내어가면서 작성을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아니오'라는 입장입니다. 일단 해당 사용자가 '종족'이라는 표현을 쓴 것 자체가 해당 논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날에는 '민족'이라는 표현을 쓰지, '종족'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습니다. 오크나, 식물군 관련해서 서술한다면 모를까요. 그래서 제가 독자연구를 의심한 것이기도 하고요. 너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면 해당 문제를 아예 서술하지 말아야 하느냐, 그것 역시 '아니오'입니다. 백제 민족 구성이 어땠는지 한 문장 정도로 요약하는 건 가능하겠죠. 다만 지금처럼 노중국 교수님의 사관에 빠져 타 기록들을 일체 배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저는 여전히 중립성과 비중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님 스스로 백제 민족에 대해 다양한 논문을 검토하셔서 초안을 제공해주시면 좋겠습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9월 25일 (목) 10:19 (KST)답변
노중국 교수의 논문과 그 예하 인용된 논문이 아닌 2010년대와 2020년대 논문을 확인하고 서술할 필요가 있습니.
문단이 아닌 한 문장으로 충분히 요약이 가능합니다. 이 문서는 "백제" 문서를 논의하는 곳이지, "백제의 민족 구성"을 논의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M.W.Kang43 님은 '자신이 아는 한'에서 '노중국 교수'의 학설로 통설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런 태도는 비단 백제 문서뿐만 아니라, 향후 토론에서 추가로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위키백과 에디터톤 참여나 타 사용자와의 공동 편집 등을 통해, 학설을 서술하는 방법, 중립성 문제, 논문 인용 등에 대한 지침 등을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서술해야 할 지 충분히 숙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용자님이 계속 통설이라고 주장하는 그 교수의 논문에 대해, 오늘도 저는 한성백제박물관 쟁점백제사 연구에서 노중국 교수의 입장에 정확히 반박되는 논문을 찾았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통설이라 주장하시면서 '노중국 교수'의 논문을 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2005년에 서술된 논문입니다. 모든 논문들의 바이블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하나의 출처를 고집하는 태도는 독자 연구 금지에 따르면, "독단적으로 출처 내용을 분석하거나 정리, 종합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합니다.사용자님 스스로, 노중국 교수의 논문이 반박된 적이 있는지 직접 찾아보는 겁니다. 이걸 왜 제가 찾고 있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런 편집은 여태 사용자님이 편집하신 다른 기여와는 정반대 (이사지왕 제외)의 편집 방식입니다. 다른 수많은 편집 기여를 살펴본 결과, 사용자님은 학술 의견을 개진하실 때 단순히 학설과 논문을 인용하고, ~가 있다,라는 선에서 그 서술을 마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서술 같은 경우에는 노중국 교수의 논문과 정면 배치되는 주장을 싣는 논문들을 일체 배제하는 태도를 보이며, 본인의 서술이 통설에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본인이 아는 한'이라는 명제까지 덧붙이시면서요. 그 논문에 대해 반박을 하면, 그게 사실일 리가 없다고 부정을 하고 계시죠. 노중국 교수님의 논문은 절대불변의 법칙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닙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9월 25일 (목) 13:24 (KST)답변
1번과 3번을 묶어서 답변드렸습니다만 이해가 쉽도록 나누어서 다시 답변드립니다.
1. 노중국 교수의 논문과 그 예하 인용된 논문이 아닌 2010년대와 2020년대 논문을 확인하고 서술할 필요가 있습니다.
-> 상술했다시피 노종국 교수의 견해는 주로 성씨부분이라 그부분은 비중을 축소시켜 서술할 생각입니다.
3. 현재 M.W.Kang43 님은 '자신이 아는 한'에서 '노중국 교수'의 학설로 통설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런 태도는 비단 백제 문서뿐만 아니라, 향후 토론에서 추가로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위키백과 에디터톤 참여나 타 사용자와의 공동 편집 등을 통해, 학설을 서술하는 방법, 중립성 문제, 논문 인용 등에 대한 지침 등을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서술해야 할 지 충분히 숙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본 관련 내용에 집착한다는 것은 귀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저는 예군묘지명, 구당서, 신당서 등의 '일본'이 백제를 지칭하는 단어라는 학자들의 견해를 병기할 뿐입니다. 자의적인 해석보다는 팩트에 기반한 내용을 서술하는 것이 위키백과의 지침에도 부합합니다.M.W.Kang43 (토론)2025년 10월 14일 (화) 14:30 (KST)답변
'일본'이 보낼 백제의 이명이라고 주장하는 학자 권오엽(2025) 추가합니다. 귀하께서 본 서술에 대해서 반박하시려면 예군묘지명, 구당서/신당서 등에 기록된 '일본'이 백제가 아니라는 다른 견해들을 병기하면 위키백과 다중관점에도 부합될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M.W.Kang43 (토론)2025년 10월 14일 (화) 14:34 (KST)답변
백제를 일본어로는 "구다라"라고 하였는데, 그 의미는 불분명하나 '큰 나라'라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위 문장에 대해서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를 받아들여 아래와 같은 수정하여 서술할 것을 제안합니다.
백제를 일본어로는 "구다라"라고 하였는데, 그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존재하지만 '큰 나라'라는 해석이 가장 많은 학자들로부터 지지 받고 있다.[홍윤기, 이병선, 오정민/한용진, 三品彰英, 방연실, 김운희, 일본국어대사전 인용 각주]M.W.Kang43 (토론)2025년 11월 26일 (수) 14:39 (KST)답변
사관 요청을 제대로 안 읽으신 것 같네요.
1. 해당 출처 중 그 어느 것도 통설이라고 한 적이 없고, 일본어표준대사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 서술 → 한국인의 입장에서만 서술한 거짓 서술
지금 이 토론의 핵심은, 사용자님 본인의 주장의 출처의 수정이나 그 출처가 적합하냐가 아니라 제가 이동시키고 삭제하고 되돌린 문서가 문서 훼손으로 치부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저를 사관 요청하신 것 아니십니까.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11월 26일 (수) 14:51 (KST)답변
지금 사용자님이 내건 전제도 잘못되었습니다. 이미 초기 왕위 계승 문제는 한성백제 문단에 그대로 옮겨져 있는 상황입니다. "초기 왕위 계슥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명확한 출처와 함께 서술한 문단 삭제분"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것부터 이미 논제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정 못 믿으시겠다면 한성백제 문서 역사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11월 26일 (수) 14:56 (KST)답변
1. 백제를 일본이 지칭한 '구다라'에 대한 '큰나라' 학설에 대해서 근거 출처 명확한 서술 삭제분 되돌림
분쟁에 대해서 진행하고자 합니다.
의견을 받아들여서 '가장 유력하다'부분은 삭제하고 '여러 견해들이 존재하지만 '큰 나라'라는 해석이 가장 많은 학자들로부터 지지 받고 있다.[홍윤기, 이병선, 오정민/한용진, 三品彰英, 방연실, 김운희, 일본국어대사전 인용 각주]' 로 수정할 것을 제안합니다.M.W.Kang43 (토론)2025년 11월 26일 (수) 15:53 (KST)답변
해당 분쟁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자면,
발제측 서술 : 백제를 일본어로는 "구다라"라고 하였는데, 그 의미는 불분명하나 '큰 나라'라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13][14][15][16][17][18][19]
해당 문서를 반대측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삭제 : 일본 학계에서는 단순한 설 중 하나라고 치부하는 것을, 통설로 서술하시면 허위 사실 유포가 될텐데요?
저기, 이게 지금 편집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입니까? 완전보호 조치 관련 이슈 사항에 대한 토론을 개설하자고 하셨는데, 편집 분쟁을 개인 사항으로 치부하는 건 무슨 경우입니까? 사용자님이 관리자라도 되시는듯이 행동하는데, 전체 토론 과정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편집 분쟁 해결이 장난도 아니고, 편집 분쟁 자체가 보호 조치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었는데, 이건 한 마디도 언급하시지 않겠다는 건, 보호 조치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주제와 무관한 내용이라고 자꾸 치부하시는데, 그 근거를 대시기 바랍니다. 문서 보호 조치는 사용자님의 근거가 빈약해서가 아니라, 사용자님과 저의 편집 분쟁 그 자체가 논란의 원인이었습니다. 아니면 제가 해당 보호 조치를 취한 관리자님께 문제 본질의 핵심이 무엇인지 직접 물어보고 와야, 이 문제의 핵심이 뭔지 본인 스스로 이해하시겠습니까?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11월 26일 (수) 17:03 (KST)답변
귀하께서 삭제한 내용이 위 1, 2, 3번입니다. 저는 존치해야한다는 입장이구요. 그 부분이 본 백제 문서에서 귀하와 저와 생긴 편집 분쟁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백제 문서 역사 부분 11/21일 귀하께서 삭제한 내용을 다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1. 편집 분쟁 자체의 역사를 충분히 논의할 것 → 문서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편집 분쟁의 핵심은 출처의 적절성 문제가 아닌 제가 한 편집 이력에 대해 사용자님이 반발하시면서 발생한 문제입니다.
2. 한꺼번에 처리가 충분히 가능 → 이미 몇 차례나 말씀드렸듯, 왕위계승 문단은 백제 초창기로 직접 쓰셨기 때문에 한성백제 문단에 그대로 이동된 뒤 보존되어 있고, 구다라의 경우 '많은 학자들로부터 지지 받고 있다'라는 논리 역시 이미 일본 국립국어원표준대사전에서 사용자님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기 때문에 간단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걸 따로따로 일일이 살필 이유가 없습니다.
3. M.W.Kang43님의 문서 사유화 시도가 있었는지 다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해당 사용자가 특정 판에 고집하고, 이를 일괄적으로 이동하거나 되돌릴 경우 문서 훼손으로 치부한다는 점에서 해당 사용자가 백제 문서를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주장하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상황입니다. (토론:이사지왕에서의 사례와 유사합니다.)백:문서의 소유권에 따르면 어느 사용자도 문서를 개인의 것으로 소유하는 듯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출처가 달려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명확하다'는 방증은 아니며, 이를 이동하거나 편집을 되돌리는 것을 막을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11월 26일 (수) 17:18 (KST)답변
1. 한성백제 문서로 이동시킨 근거를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합당한 근거가 없을 시 기존 서술 존치를 제안합니다.
한성백제 문서로 이동하는 것에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기존 서술 존치를 제안하는 것 자체가 문서 사유화의 근거입니다. 위키백과에서는 그 누구라도 과감하게 문서를 편집할 수 있습니다. 왕위 계승이 백제 초기에 이루어졌다고 해서 한성백제로 문서를 옮겼는데, 이걸 문서 훼손으로 본 근거부터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일본어에 대해 국내 학자들의 견해만 제시해놓고 이것이 큰 나라라고 서술했지만, 이미 사용자님이 제시한 출처 중 상당수에서 구다라가 '큰 마을'이라고 제시한 서술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를 '큰 나라'로 함부로 바꾸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며, 무엇보다도 일본어 국립표준대사전에서는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라고 서술해놓았습니다. (日本国語大辞典第二版編集委員会・小学館国語辞典編集部編『日本国語大辞典』第二版「百済(くだら)」の項、語誌欄及び語源欄)
마지막으로 사용자님은 지속적으로 '본인의 서술 존치'를 제외한 그 어떤 제안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사용자님의 편집 방식이 문제가 있는데도, 본인의 편집이 되돌려졌다는 이유 하나로 이를 '문서 훼손'으로 규정하고, 심지어 보호 요청을 시도할 때도 '출처가 충분히 갖추어진 본인의 판'으로 보호를 요청하는 행위를 하셨습니다. 이는 사용자님이 본인만의 편집을 고집하시고 이 외의 문서판은 일체 배격하겠다는 행동을 드러내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백:문서의 소유권에 근거하여, 이는 '특정판의 내용을 유지하기 위해, 정당한 다른 편집자의 편집까지 반복적으로 되돌리는 경우'로 판단할 여지가 충분합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11월 26일 (수) 18:24 (KST)답변
누구나 서술 가능하기 때문에 귀하의 편집뿐 아니라 저의 편집도 존중받아야합니다. 따라서 기존 서술에 문제가 없다면 존치해야 합니다. 한성백제 문서에 초기 왕위계승 견해를 서술하고 싶으시다면 양쪽다 서술하면 되지 근거없이 저의 기여분을 삭제하는건 귀하 스스로가 누구나 편집가능하다는 원칙을 침해하는것입니다.
구다라에서 '나라'만 서술한 것을 문제삼으시는건가요? 그렇다면 큰나라/큰마을 등으로 고치 서술하면 되지 문단을 몽땅 삭제하면 어떻게 하나요? 이야말로 귀하의 사유화 아닌가요?
그리고 제 인용문은 일본표준어대사전이 아니라 일본국어대사전이라고 여러차례 말씀드렸는데 자꾸 반복하시니 당혹스럽네요.
1. 사용자님의 편집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문단을 이동한 것을 '문서 훼손'이라고 치부하고, 이를 양쪽에 서술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사용자 관리 요청까지 갔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존중과 존치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용자님의 문단을 존중했기 때문에 한성백제 문서에 해당 문단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본인의 편집이 백제 문서에만 고정되어야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세세한 내용은 충분히 세세한 문서에서 다룰 수 있고, 큰 내용은 큰 문서에서 다룰 수 있는 겁니다. 그걸 굳이 백제 문서에만 서술해야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2. 구다라 서술에서 문제가 된 것은 사용자님이 없는 사실을 지어내서 있는 것처럼 만들어냈고, 무엇보다도 일본국어대사전 제2판 쿠다라 항목에서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라고 서술했음에도 '여러 견해들이 존재하지만 '큰 나라'라는 해석이 가장 많은 학자들로부터 지지 받고 있다.라는 개인의 주장을 실제 학계가 그렇게 처리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논문을 인용하거나 개인의 사견을 일체 배제해야 한다고 거듭 말씀드립니다.
3. 사용자님의 인용문을 가리킨 것이 아닌, 사전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다라는 걸 말씀 드립니다.
2번과 3번 모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세세한 사실은 세세한 문서에서 다루어야 하고, 주민 구성 항목 역시 모두 사용자의 사견이 강하게 들어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지속적으로 '문서 훼손'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려고 하시는데, '백제 문서 편집 분쟁'은 사용자님이 제 기여를 '문서 훼손'으로 보고, 이 문서들을 일괄 되돌리기 한 것이 문제입니다. 합의안도 보시면, 제가 문서 되돌리기한 것을 존치하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2, 3번을 동의할 수 없는 근거를 제시 바랍니다. (출처가 불분명하다던가, 사실과 다르다던가등) 근거를 제시 하지 않고 삭제하는 것은 훼손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즉, 2, 3번 반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시면 기존 서술을 되살리는 것은 물론 귀하께서 문서 훼손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적절한 조치를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지금이라도 합의를 하신다면 귀하와의 분쟁에 대해서는 더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겠습니다.M.W.Kang43 (토론)2025년 11월 27일 (목) 10:40 (KST)답변
지금 협박으로 합의를 이끌어내시려는 건가요?
사용자님의 합의안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문제점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일단 첫 번째, 해당 합의안으로 이동할 경우, 사용자님의 판이 그대로 존치되는 11월 11일 판, 즉 문서 편집 분쟁 상태의 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합의는 편집 분쟁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편집 분쟁이 발생한 요소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합의안을 제시하셔야 상대방도 납득하지 않을까요.
둘째, 사용자님의 이전 요청 기록으로 살펴본다면, 사용자님은 이 합의안을 통해 본인의 편집 판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하고 계신 것으로 파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이 합의안을 선의로 보려고 해도, 이전 문서 보호 요청 기록이나 사관 요청 기록을 살펴보면 사용자님은 본인의 판이 날아간 것에 대해 상당히 불쾌하게 여기고 있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본 핵심은, 과연 제 편집이 '문서 훼손'으로 보고 덮을 수 있냐는 것이죠.
문서 훼손이라고 볼 근거가 현재 " (출처가 불분명하다던가, 사실과 다르다던가등)"이라고 규정하셨는데, 이건백:방해 편집에 근거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백제 초기 왕실 승계' 문단을 백제 초기인 '한성백제' 문서로 옮긴 것이 방해 편집으로 볼 근거가 될까요? 그것도 문단을 있는 그대로 한성백제에 옮겨놨는데 말이죠. 이런 행위는 위키백과에서 자주 있는 이동입니다.
백제 민족 구성의 경우, 이전 토론에서 '주민 구성'으로 했다가 지적을 받으셔서 그걸 '종족 구성'이라고 옮긴다고 수정하겠다고 본인 스스로 이야기하셨던데, 그 수정사항을 안 가져오고 그대로 '주민 구성'으로 가져오셨더라고요. 그런데 '백제 종족은 한계, 왜계, 부여계, 맥계, 한계로 구성되어 있다.'라는 이 내용이 출처 어디에도 안 나와 있었습니다. 주민 구성이라고 봤는데 백제와 그 주민에 관한 내용이 하나도 없었어요. 예를 들면 공주 수촌리라던지 부여 사택씨와 같은 이야기, 마한인이 어떻게 백제 사회에 편입되었는지, 이런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왜계,, 한계, 맥계 이런 식으로 구별을 해놓고, 신라 혁거세가 어떻다, 고구려가 어떻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나와 있어요. 사견이 들어갔다고 판단했고, 사용자 본인이 개인적으로 연구한 내용이라고 보고 삭제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북연인이 고구려로 도망와서 백제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문장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백제의 주민은 북연인이었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사용자님은 출처는 제시하셨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서 본인의 독자 연구/또는 본인이 생각하는 사견까지 집어넣으셨어요. 그건 명백히백:독자 연구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저는 판단했습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11월 27일 (목) 11:29 (KST)답변
현 사안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드립니다.
본 토론은 귀하께서 말씀하신대로 편집분쟁을 해결하기 위함이지요?
그렇다면 편집 분쟁의 대상이 무엇인가요?
-> 백제 초기 왕계 / 백제주민구성 내용의 존치여부입니다.
저의 입장 : 존치 vs 귀하의 입장 : 삭제
저는 존치에 대한 근거로 명확한 출처임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에 귀하께서 삭제를 주장하시려면 그에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셔야합니다.
'주민'을 '종족'으로 바꾸지 않아서라던가, 저의 서술이 개인연구인것 같다던가 이런 사유는 근거가 되지않습니다. 단어를 바꾸는 것은 단어만 바꾸면 되지 삭제까지 할 필요가 없으며, 저의 서술이 개인연구라는 것은 귀하의 사견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정확한 출처를 제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용자님이 이런 식으로 근거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실 것 같아서 사용자님의 서술이 개인 연구라는 근거를 대보겠습니다.
대표적인 예시인 맥계를 살펴볼까요. 삼국지 고구려전에 맥은 거주 지역에 따라 소수맥, 대수맥으로 구별하고 있다. "맥인의 주요 분포지는 고구려 지역이었으며, 춘천, 한강 이북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로 추정된다.", "또한 근초고왕과 근구수왕때 백제의 영역이 서북으로는 황해도 배천까지(치양), 동북으로는 황해도 신계(수곡성)지역까지 진출 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여기 출처에 백제군이 해당 지역을 정복한 이후 '맥계가 백제 주민이 되었다'는 기록이 대체 어디 있는지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옛날 맥인이 거기 살았다고 해서, 백제가 치양과 수곡성까지 진출했던 당시 그 지역에 살던 모든 주민들이 '맥계'라는 근거도 현재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점령 지역에 따라 종족을 구별하면, 웅진-사비기 백제 시대 때 맥계 주민들은 모두 뿅 하고 사라지게 되는 겁니까?
나머지 해계, 예계, 한계, 왜계 모두 '백제 주민이다'라는 기록이 출처 어디에도 없습니다. 본인이 주장하는 것이 출처에 없는데, 어떻게 맥계, 해계, 예계, 한계가 백제인의 '종족'이라고 입증을 하실 수 있을까요?
지금 처음부터 "저는 정확한 출처를 제시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주장을 반복하고 계신데,백:독자 연구에 따르면,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언급하지 않은,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 또는 이론을 소개하는 서술"이나 "신뢰할 수 있는 사실·아이디어·이론·주장을 편집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분석하거나 종합한 자료", 또는 "기존의 용어를 새롭게 정의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가정하여 부여하는 서술'" 모두 독자 연구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정확한 출처를 제시했다고 해서 그 문단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 말씀 드립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11월 27일 (목) 16:59 (KST)답변
네 그런식으로 근거를 제시하여 주시니 토론이 가능해 보입니다.
답변 드리기 전에 우선 확인 정리를 좀 하겠습니다. 제시하신 근거를 보면 백제 주민 구성 문단에 대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렇다면 '구다라', '초기왕위계승' 문단은 합의가 된것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황해도 신계지역까지 진출함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있고, 이를 통해 맥인들이 백제의 주민으로 구성되었음은 백제 연구의 권위자인 노중국 교수의 견해이며 많은 후대 학자들이 인용하였습니다. -> 이부분은 노종국 교수에 의하면~ 이라는 코멘트를 추가하여 모호함을 해소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예계 : 노종국, 문안식, 강종훈 등의 학자가 지지합니다. 한계(중국계) : 수서, 일본서기 등 역사책에 명시되어 있으며, 노중국, 윤용구, 김장석, 장미애, 조윤재, 정재윤 등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견해입니다. 왜계 : 일본서기에 왜 출신 백제 관료들이 다수 확인 되며, 고고학적으로도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는 다수의 전방후원분은 왜계 무덤으로 보는것이 통설입니다. -> 이러한 내용은 모두 본문에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삭제할 이유가 없어보입니다. 어떠한 부분을 신뢰할 수 없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시면 추가 답변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추가적으로, 21일 토론을 권장받았다는 분이 본인 스스로 판단한 문서 훼손을 근거로 협박하기까지 했다는 것은, 명백한 협업 정신 위반임을 알려드립니다. 제가 지금까지도 사용자님과 토론을 이어가는 이유는 이런 협박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도 다시 한 번 강조드립니다. 상대방하고 토론을 하려고 하시는 분이, 왜 관리자 요청을 지속적으로 언급하시며 본인 뜻대로 토론을 이끌어가려고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11월 27일 (목) 17:06 (KST)답변
협박이 아니라 귀하께서 본 백제 문서의 분쟁에 대해서 개념을 못잡고 계시고 자꾸만 주제에 어긋나는 말로 논지를 흐리니 토론이 이어질수가 없지않습니까?
또 다시 논지와 관계없는 말들로 가독성을 해치게 되어 여기서부터 다시 논의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저의 합의안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에대해서 반대하시면 근거를 제시하시기 바라며 다른 합의안을 제시하셔도 되겠습니다.
'구다라'를 해석하는 견해를 '가장 많다', '통설이다' 등의 주관적인 단어는 배제하고 각 학자들의 견해를 출처와 함께 명시한다.
백제 초기 왕계 문단은 한성 백제, 백제 문서 모두 존치한다.
주민 구성 항목 역시 출처에 대한 오류가 없는 한 출처를 명확히 하여 백제 문서에 존치한다. ->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황해도 신계지역까지 진출함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있고, 이를 통해 맥인들이 백제의 주민으로 구성되었음은 백제 연구의 권위자인 노중국 교수의 견해이며 많은 후대 학자들이 인용하였습니다. -> 이부분은 노종국 교수에 의하면~ 이라는 코멘트를 추가하여 모호함을 해소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예계 : 노종국, 문안식, 강종훈 등의 학자가 지지합니다.
한계(중국계) : 수서, 일본서기 등 역사책에 명시되어 있으며, 노중국, 윤용구, 김장석, 장미애, 조윤재, 정재윤 등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견해입니다.
왜계 : 일본서기에 왜 출신 백제 관료들이 다수 확인 되며, 고고학적으로도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는 다수의 전방후원분은 왜계 무덤으로 보는것이 통설입니다.
추후 위 1, 2, 3에 대한 분쟁이 반복 발생 시 문단을 삭제하기 전에 토론을 개설하여 합의 후 문서에 반영한다.
관리자측에서 분쟁에 해새서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라고 가이드를 하였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완전보호를 연장해가겠다고 안내하였습니다. 따라서 제가 제시한 분쟁 이슈 1) 구다라 문단 2) 초기왕위계상 문단 3) 주민구성 문단 에 대해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문서 훼손에 대해서 사과할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문서훼손으로 보여서 관리요청을 하였고 그 부분에 대해서 관리자측에서 문서 훼손 여부를 판단하여 종결지으면 끝날 사안입니다.
11월 21일 위키프로젝트토론:한국사에 제가 참가할 의무가 없는데 해명을 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문서보호요청에서 분쟁 전 버전으로 되돌리는 것에 대해 요청한 것은위키백과:분쟁 해결 토론시작 이전 조항의 "토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문서의 내용은편집 분쟁이 발생하기 이전의 판으로 유지시킨 채 토론을 시작해야 합니다."에 근거하여 요청을 드린 것이고 이에 대한 판단은 관리차 측에서 할것입니다.
위와 같이 답변드리며 이제 본 토론의 논지인 1) 구다라 문단 2) 초기왕위계상 문단 3) 주민구성 문단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와 같이 합의안을 재차 제시하며 동의하지 않으실 경우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주시면 보고 답변드리겠습니다.
'구다라'를 해석하는 견해를 '가장 많다', '통설이다' 등의 주관적인 단어는 배제하고 각 학자들의 견해를 출처와 함께 명시한다.
백제 초기 왕계 문단은 한성 백제, 백제 문서 모두 존치한다.
주민 구성 항목 역시 출처에 대한 오류가 없는 한 출처를 명확히 하여 백제 문서에 존치한다. ->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황해도 신계지역까지 진출함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있고, 이를 통해 맥인들이 백제의 주민으로 구성되었음은 백제 연구의 권위자인 노중국 교수의 견해이며 많은 후대 학자들이 인용하였습니다. -> 이부분은 노종국 교수에 의하면~ 이라는 코멘트를 추가하여 모호함을 해소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예계 : 노종국, 문안식, 강종훈 등의 학자가 지지합니다.
한계(중국계) : 수서, 일본서기 등 역사책에 명시되어 있으며, 노중국, 윤용구, 김장석, 장미애, 조윤재, 정재윤 등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견해입니다.
왜계 : 일본서기에 왜 출신 백제 관료들이 다수 확인 되며, 고고학적으로도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는 다수의 전방후원분은 왜계 무덤으로 보는것이 통설입니다.
추후 위 1, 2, 3에 대한 분쟁이 반복 발생 시 문단을 삭제하기 전에 토론을 개설하여 합의 후 문서에 반영한다.
1. 관리자 측에서 분쟁에 대해 토론을 통해 합의하라고 이야기를 들으신 분이, 분쟁의 최종 해결 방안인 사관 요청을 먼저 하시고 '합의 하자'라고 한다면, 그건 합의가 아닌 협박이 되는 겁니다.
2. 사용자님 스스로 본인의 편집 행위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셨으면서, 그걸 되돌리기 한 것을 '문서 훼손'이라고 한다면 저는 사용자님의 토론 태도에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사용자님은토론:이사지왕에서도 해당 사용자가 출처에 반박을 하자, '문서 훼손'이라고 판단하고 그 사용자에게 '차단 요청'을 넣으셨죠. 저는 사용자님의 '문서 훼손' 기준이 본인의 판을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 사용자들이 본인의 판을 건드리면 진행 중이던 토론도 포기하고 바로 관리 요청으로 가셨어요. 본인의 판이 아무리 소중하더라도, 그걸 바꾸는 것(삭제+이동)을 일체 금지하려고 시도한다면, 그건 충분히백:문서의 소유권에 위반되는 행동입니다. 본인이 사과를 안 하겠다고 이야기하시더라도, 이미 충분히 여러 개의 지침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3. 토론에 본인이 참석을 했고, 그 토론에 제가 질문을 했는데 답을 안 하는 것은백:토론에서 지켜야 할 점 위반입니다. 본인이 참여하기 싫으시면 , 싫다고라도 답변을 남겨야 상대방이 토론을 진행하던 말던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미 M.W.Kang43 님이 여러 지침을 위반했다고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용자가 토론 과정에서 상대를 협박하고, 본인만의 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상대와 합의를 일체 거절하겠다는 토론 태도에서, 이미 사용자의 행동을 '선의'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해당 사용자가 21일부터 28일 현재 토론에서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본인의 판을 고집하고 분쟁 당사자가 편집 분쟁 해결에 참여할 수 없도록 입막음을 시도하려고 한 것으로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본 토론의 논지를 벗어났다니요. 지금 저희 둘의 편집 분쟁이 '문단에 대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혼자서 생각하시고, 이에 따라 21일 먼저 열린 한국사 토론에서 일방적으로 떠난 것은 사용자님이셨습니다. 거기다가 "즉, 2, 3번 반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시면 기존 서술을 되살리는 것은 물론 귀하께서 문서 훼손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적절한 조치를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지금이라도 합의를 하신다면 귀하와의 분쟁에 대해서는 더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협박까지 하셨고요. 무려 10일 동안 토론에 응하지 않고, 자신 있게 그것에 대해 '토론에 참여할 의무가 없다'라고 이야기하시는 걸 보니, 사용자님이 토론을 회피하고, 평소 저와의 토론 및 협업 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현재 토론 상황을 위키백과 공동체에 알린다면, 사용자님의 잘못된 행동을 모두가 공평하게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용자님 본인이 알고 있는 유일한 지침을 바탕으로, 상대의 편집에 대한 고민 없이 분명히 사용자님의 기여 중 일부가 다른 곳에 정상적으로 등재가 되었는데도 본인의 판이 되돌려졌다는 이유로 이를 '문서 훼손'으로 치부하고 분쟁 당사자가 해당 문서에서 활동할 수 없도록 제약을 걸려고 시도하고, 거기에 더해 본인의 판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상대방의 주장을 일축하는 이 모든 행위에 대해 제가 지적하자, 사용자님은 '나는 너를 문서 훼손 행위자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보이고 계십니다. 또한 사용자가 내놓은 합의안에서 본인의 판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일체의 타협도 거부하겠다는,문서를 소유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사항도 충분히 확인했습니다.토론:이사지왕과사용자 관리 요청 제31주의 기록을 보시면, 해당 사용자가 이미 이런 식으로 분쟁을 해결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습니다.
사용자님은 이 모든 것이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사용자님이 편집 분쟁을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 전체에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용자님의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논지가 벗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사용자님의 토론 태도와 분쟁 해결 방식이 과거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 바가 있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될 사항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이에 따라 저는 해당 사용자의 토론 태도와 편집 분쟁 해결 방식 자체가 현 편집 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3자 또는 관리자의 중재안만을 받아들이겠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사용자님이 뭐라고 생각하고, 뭐라고 본인 스스로 판단하던, 모든 판단은 사용자님 개인의 의견이 아닌 위키백과의 지침과 정책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용자님께서 지속적으로 제 의견을 거부하고 계신데, 반대로 제가 이를 사용자님이 어떻게든 편집 분쟁을 12월 5일까지 해결하기 위해 저를 강제로 설득시키려고 시도한다고 판단해도 되겠습니까?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11월 28일 (금) 14:31 (KST)답변
여러번 반복해 말씀드렸지만 본 토론은 문서 편집 관련 분쟁에 대한 토론입니다. 사용자 태도에 관한 부분은 다른 방법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편집 분쟁을 조정하신사: Revi C. 님이 토론의 조정자로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이미 저는사용자:Twotwo2019 님께 조정을 요청을 드린 상황입니다. 마지막까지 본인 태도에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상당히 유감을 표합니다. 지속적으로 합의안만 제시하는 사용자님의 토론 태도에, 저는 제3자 또는 중재자의 합의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는데, 이것까지 무시하시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이 문제는 사용자님이 제시하신 출처에 대한 편집 분쟁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역설합니다. 저는 사용자님의 기여를 정당하게 타 문서로 이동시켰습니다. 그리고 사용자님 스스로, 본인의 문서 편집에 잘못이 있다고 시인하셨으며, 본인의 사견이 들어갔다고 인정까지 하셨습니다. 즉, 출처를 명확하게 제시했기 때문에 이를 되돌리거나 이동시키는 행위가 문서 훼손이라고 하는, 사용자님의 기본적인 전제가 현재 붕괴된 상황에서, 제가 사용자님의 합의안을 수용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저는 사용자님과 저의 편집 태도가 과연 정당했는가가 편집 분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사용자님 본인께서 수용하지 못하시겠다면, 저 역시 사용자님의 현재 토론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용자님이 토론을 개설한 이래, 저의 주장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이를 명심하시고 토론에 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11월 28일 (금) 16:44 (KST)답변
죄송합니다만, 지금 의도적으로 계속 제 답변을 회피하는 경향이 보이는데, 이래서는 조정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계속 본인이 이래라저래라 요구만 하고, 사용자 본인은 실질적으로 전혀 토론 태도가 개선되고 있지 않습니다. 조정 제안을 먼저 하셨으니, 조정자를 찾는 것도 본인이 책임을 지고 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조정에서 만약에 지속적으로 '본인의 판 존치'만 요구할 경우, 사용자님이 합의를 이끌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겠습니다.
어차피 저 역시 '일신상의 이유'로 이 토론에 매달릴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더욱이 사용자님 스스로 제가 토론을 포기하면 관리자에게 가이드라인을 받겠다고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요. 참고로 사도바울 님은 현재 위키백과 편집을 쉬고 계시기에, 그 분은 현재 조정자 역할을 하실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3일 동안 토론을 했는데, 제 의견이 수용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사용자님이 토론을 개설했다고 해서 토론의 흐름이나 방향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합의를 권장받아서 토론을 여셨다면서, 제 의견을 단 한 번도 수용하지 않고 '논지에서 벗어났다', '토론의 주제가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건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역시 조정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다만 귀하께서 제시한 두 조정자는 위키 규정 '관리자는 조정자로 지정할 수 없다'에 위배되니 다른 조정자를 선정하자는 것입니다. (저의 댓글을 읽긴 읽으시는 겁니까? 위에 이렇게 작성했는데 동문서답을 하시네요) 저는 이에 역사 관련 문서 기여도가 높으신사용자:Sadopaul 분을 추천 드린 것입니다.
사도바울 님이 위키백과 휴식을 취하고 있으신데, 계속 그 분을 링크거는 건 무슨 의도인 겁니까? 댓글을 안 읽고 동문서답하는 건 사용자님 같은데요.
12월 1일까지 사용자님과 토론을 중단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도, 계속 답글을 다시는 것은, 저의 의견을 무시하겠다는 건가요?
사용자님이 제 의견을 지속적으로 무시하시고 본인 의견을 강행하시는데, 사용자님 토론 태도에 개선이 없다고 보고 12월 4일까지 사용자님과 일체 토론을 중단하겠습니다. 사용자님은 '조정' 절차에 따라 조정을 밟겠다고 했지만, 위키백과에서 제3자에게 중재는 얼마든지 요청할 수 있는 일입니다. 관리자를 '조정 요청'에 내세울 수는 없지만, '분쟁 중재'의 역할로서 제3자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본인의 판이 존치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합의안 대신, 저를 설득할 수 있는 합의안을 들고 오셨으면 좋겠고요. 무엇보다도 백제 문서에서 본인의 판에 대해 집착이 굉장히 강하신데, 이 토론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더 의미 있는 토론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12월 4일까지 해당 문제점이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Persephone Kore (토론)2025년 11월 30일 (일) 12:45 (KST)답변
귀하께서 토론을 일시 중단하는것과 제가 답글을 다는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중재는 위키에서 더이상 하고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정을 제안한것이고, 조정자는 정책상 관리자는 불가합니다.
중재를 위키에서 안 한다고 해서, 제3자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것이 막혀 있는 게 아닙니다.
계속 답글을 다는 행위 자체가 토론을 이어가는 행위입니다. 제가 사용자님과 토론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몇 번이고 말씀드리는 지 모르겠네요.
사용자님이 지금 하는 모든 행동이위키백과:토론에서 지켜야 할 점의 기본 근간인, '상대방의 행동을 선의로 바라봐야 한다'를 위반하고 있기 때문에 토론에 참여를 안 하는 것입니다. 제가 토론에 참여를 안 한다고 합의 도출이 되는 게 아니라, 제 행동의 모든 걸 설명드렸는데도 사용자님이 '아 몰라, 난 니 말 안 들을 거야' 이 태도로 나오기 때문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다.
저는 귀하에게 토론을 강요한 사실이 없습니다. 귀하께서 답글을 다니 그에대해서 저도 답변을 하는 것 뿐입니다. 토론 참여 여부는 귀하께서 가능 하실 때 하면 되겠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 현 완전보호 상태로 계속 유지할지 토론이 가능할때까지 분쟁 전 상태로 되돌린 후 진행 할지 등은 관리자 측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누차 말씀 드리지만 저는 위키백과에서 권고하는 조정을 정책에 맞게 진행할 의사가 있으며, 중재는 현재로는 중단 상태로 명시되어있기 때문에 적절한 절차라는데 동의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저는 지금 사용자님이 멋대로 '문서 훼손'이라고 판단한 이후에 사용자님이 행하신 토론 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백제에 대한 '일반적인 토론'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토론에 대한 핵심 주제에 대해 자꾸 딴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런 식으로 토론회피를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백제 국호 및 출처로 의견 요청을 다셨는데, 이 역시 토론의 핵심 주제가 아니고, 오히려 본인 뜻대로 토론을 이끌어가려고 하는 시도로 보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지적했던 것은, 사용자님의 사관 요청 및 편집 되돌리기의 주된 근거인 '문서 훼손'이 적합한지 여부였습니다. 해당 사관 요청에서 문서 훼손이 아닌 편집 분쟁으로 판단이 내려진 상황에서, 사용자님이 보여주시는 이런 일방적인 태도는 결국 사용자님의 아집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귀하와 저의 편집 분쟁 주제(구다라 문단, 초기 와위 계승 문단, 주민구성 문단)에 대한 토론은 전혀 진척이 없으며 유일하게 합의된 부분은 조정을 하자는 부분입니다.
이에 대해서 귀하께서 제시하신 조정자는 모두 관리자로 위키 정책상 조정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배제하였습니다. 또한 제가 제시한 조정자 역시 귀하께서 동의 하지 않아서 1/3이상이 동의하지 않은 조정자는 선정 할 수 없다는 정책에 해당됩니다.
이에 본 위키백과 조정자 리스트 중 한 분을 선정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 중 누구라도 좋으니 귀하께서 선정하는 조정자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일째 주제와는 다른 이야기로 합의가 영 진전이 없으니 위키 정책 내에서 귀하에게 조정자 선정의 권한을 모두 위임하는 것으로 제 입장에서는 최대한 양보한 것입니다.
'구다라'를 해석하는 견해를 '가장 많다', '통설이다' 등의 주관적인 단어는 배제하고 각 학자들의 견해를 출처와 함께 명시한다.
백제 초기 왕계 문단은 한성 백제, 백제 문서 모두 존치한다.
주민 구성 항목 역시 출처에 대한 오류가 없는 한 출처를 명확히 하여 백제 문서에 존치한다. ->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황해도 신계지역까지 진출함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있고, 이를 통해 맥인들이 백제의 주민으로 구성되었음은 백제 연구의 권위자인 노중국 교수의 견해이며 많은 후대 학자들이 인용하였습니다. -> 이부분은 노종국 교수에 의하면~ 이라는 코멘트를 추가하여 모호함을 해소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예계 : 노종국, 문안식, 강종훈 등의 학자가 지지합니다.
한계(중국계) : 수서, 일본서기 등 역사책에 명시되어 있으며, 노중국, 윤용구, 김장석, 장미애, 조윤재, 정재윤 등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견해입니다.
왜계 : 일본서기에 왜 출신 백제 관료들이 다수 확인 되며, 고고학적으로도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는 다수의 전방후원분은 왜계 무덤으로 보는것이 통설입니다.
추후 위 1, 2, 3에 대한 분쟁이 반복 발생 시 문단을 삭제하기 전에 토론을 개설하여 합의 후 문서에 반영한다.
위키백과는 단순히 특정 학설이나 가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설을 작성할 순 없습니다.비중에 맞게 작성해야 한데, 각 학설이 학계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그에 대한 메타연구같은 것은 존재합니까? 또한 편집에 대해서도 단순히 근거가 있음을 넘어서 그것이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에 맞는 출처임을 명확히 "토론에서" 제시해 주셔야 합니다.--Vela* (토론 /기여)2025년 11월 27일 (목) 16:38 (KST)답변
구다라='큰나라/큰촌락' 학설은 해당 분야 전문가 홍윤기, 이병선, 오정민/한용진, 三品彰英, 방연실, 김운희, 및 일본국어대사전 어원 항목에 수록되어있습니다. 그밖에 '거타라' 지방으로부터 유래했다 등의 소수설이있습니다.
초기 백제 왕위 계승 학설은 확인 가능한 대부분의 학설을 병기하였으며 각각의 출처를 명시하였습니다.
백제 주민구성에 대한 부분 역시 백제의 왕족은 '부여'출신임은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으면 통설임을 알 수 있을겁니다. 그 왜 예/맥/한 등 통설로 알려진 내용을 여러 견해들을 출처와 함께 상세히 작성한 문서입니다. 삭제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