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5년(고려 성종 14년)에 전국을 10개의 도로 나누었을 때 오늘날의 충청북도는 중원도(中原道)[6]로 칭하고충주를 절도사[7] 소재지로 하였고, 1106년(예종 원년)에 중원도, 하남도[8]와 관내도 일부[9]를 묶어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 1171년(명종 원년) 충청도와 양광도로 분리 시 충청도[10]로, 1324년(충숙왕 원년) 충청도와 양광도를 다시 합쳐 양광도(楊廣道)가 됐다가, 1356년(공민왕 5년) 양광도의 명칭이 충청도로 바뀌었다.
1395년(태조 4년)에 고려말 충청도[11] 지역에서 일부분은 지금의 충청도 지역과 경기도 남부 일부, 강원 영월[12] 등을 충청도로 분리를 함과 동시에 충주를관찰사의 행정시로 삼게되었다. 1413년(태종 13년)에는여주,안성,양성,죽산,음죽,이천,용인군을경기도에 넘겨주고,경상도에 속했던옥천,청산,황간,영동,보은의 군과 현을 충청도에 속하게 하였다.1896년8월 4일충청도를 충청북도와충청남도로 분리하면서 충청북도의 수부(首府)는충주에 두었다.[13] 이때부터 오늘날의 충청북도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충청북도는 내륙에 위치하여 농업을 주요 생업으로 하는 지역이었다. 교통이 불편하여 대도시의 성장은 지체되었고, 중소 규모의 농촌 인구가 주를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청주·충주·제천 등 일부 도시가 행정 및 상업의 중심지로서 기능을 강화하면서 제한적인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광복 이후에도 충청북도의 인구는 대체로 농촌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자급적 생활 구조가 지속되었다. 1960년대 국가 산업화 정책이 수도권 및 영남권을 중심으로 전개됨에 따라 충청북도는 인구 유출 지역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청년층이 서울·부산 등 대도시로 이동하면서 농촌 지역의 고령화 현상이 시작되었다.
1970년대 이후 충북도청 소재지인 청주를 중심으로 산업화가 전개되었다. 1973년 청주공업단지가 조성되고, 오창·청원 일대에도 공업단지가 설립되어 전자 및 기계 산업이 유입되었다. 그러나 울산, 포항 등 대규모 중화학공업 도시와 비교할 때 인구 증가의 폭은 제한적이었으며, 농촌 지역의 인구 유출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1990년대 이후 청주와 오창 지역에 반도체, 정보기술, 바이오 관련 산업이 유치되면서 인구가 점차 증가하였다. 충북선 철도, 중부고속도로, 경부고속철도의 개통으로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개선됨에 따라 청주, 오송, 진천, 음성 지역이 새로운 성장 거점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단양, 보은, 옥천, 영동 등 농촌 및 산간 지역은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었다.
2010년대 이후 충청북도의 전체 인구는 약 160만 명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청주시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여 85만 명 이상으로 도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도시로 성장하였다. 또한 진천·음성 혁신도시와 오송 바이오밸리 개발로 젊은 층의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 제천·단양·보은·옥천·영동 등 주변 지역은 고령화율이 높고 인구 유출이 지속되어 지역 간 인구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인구는 1,555,952명이고 남녀 성비는 1.02로 남자가 조금 더 많다. 시군별로는음성군 (1.10)이 가장 높고,진천군 (1.08),증평군 (1.06),괴산군 (1.02),제천시 (1.02),단양군 (1.02),충주시 (1.01),옥천군 (1.01),보은군 (1.00),영동군 (0.99),청주시 (0.99)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