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그레비(Jules Grévy, 1807년 8월 15일~1891년 9월 9일)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1879년 1월 30일부터 1887년 12월 2일까지프랑스 공화국 제4대 대통령이었다.
공화파 의원이었던 그레비는1851년 프랑스 쿠데타 당시 체포당했다. 그레비는 1871년부터 1873년까지 국회의장이였고, 1876년부터 1879년까지는 하원의장이였다. 이후 그레비는 1879년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다시 1885년에 재선되나, 사위 다니엘 윌슨이 관여한 스캔들로 1887년에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된다.
프랑수아쥐디트폴 그레비는 열성 공화파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그는 알베르 그레비와 폴 그레비의 형제이다. 1848년 8월 29일 파리에서 나르본의 가죽 도매상인의 딸인 코랄리 프레스(Coralie Fraisse)와 결혼했다. 그는 딸 한 명만을 두었는데, 이름은 아리스 (1849-1938)이다. 프랑스의 정치가쥘 페리는 후에 1881년 다니엘 윌슨과 그레비의 딸 아리스의 결혼식에서 입회인이 된다.
쥘 그레비는돌의콜레주 드 라르크에서 훌륭한 학업 성취를 이뤄냈으나 1829년 그 학교가 예수회 학교로 되자 그레비의 아버지는 그를콜레주 드 폴리니로 전학시켰다. 그는파리 대학에서 법학위를 따고 변호사가 된다. 1836년 그는 소송광 (Le Procédurier)이라는 판례 모음집을 출판한다.
그는 대통령 재임기 동안 국회의장 쥘 페리와 함께 강경한 정교분리 정책 등 개혁 정책을 지지하고, 왕당파를 견제하는 등 프랑스 공화국의 기반을 다졌다. 실제 그의 재임기 이후 프랑스는 사실상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공화국 체제가 정착된다.. 다만 반제국주의자였음에도 그의 재임기 프랑스의 제국주의 행보는 유지되어 마냥 그의 뜻대로 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