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군주제에 대한 논의는중세 후기의봉건제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군주는 귀족의 수장에 가까웠다. 중앙집권 체제의 강화와 값비싼 대포 화력에 기반한 군대가 완성되면서, 군주의 힘은 점차 강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전제군주제를 위한 이론이 만들어졌다. 전제주의 세력은 그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왕권신수설과 왕족의 혈통을 옹호하였다.
17세기에는, 전제군주제를 완성하려는영국 군주의 노력이 의회와의 꾸준한 충돌을 빚었으며, 결국 전제 왕권을 잃게 되었다(청교도 혁명,명예 혁명 참고).
프랑스에서는 군주의 권력을 집중하여 의회와 귀족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전제군주제의 대표적인 예가루이 14세이다.계몽운동 시기에 전제군주제는 일부 학자에 의해계몽 전제주의의 형태로 지원을 받았다.프로이센(지금의독일)의프리드리히 1세 또한 계몽 전제주의의 형태로 절대왕정을 성립하였다. 계몽 전제주의는나폴레옹의 몰락으로 힘을 잃게 되었으나,러시아황제(차르)는1917년에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왕권신수설을 계속 신봉했다.
전제군주제에 대한 지지는프랑스 혁명과미국 혁명(미국독립전쟁) 이후로 사실상 끝이 났으며,국민주권론에 기반한 정부에 대한 논의가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