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 출신의 아라왁과 타이노 토착민들이 기원전 4,000년과 1,000년 사이 자메이카에 정착을 했다.[5]콜럼버스가 2차 탐험 항해 중인1494년 4월에 자메이카를 탐험한 후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6] 그 당시 현재 구 항구로서 알려진 가장 인구가 많이 형성된 자메이카의 남 해안과 함께, 추장이 다스리는 200여개 이상의 마을이 있었다.[5]콜럼버스는 1503년 6월에 쿠바 해안에서 폭풍을 만나 탐사선이 좌초된 후 자메이카 섬에서 고립된 채 생활을 하기도 했다.[7][8]
1700년대에는사탕수수가 주요 생산물이 되었고, 서반구에서 가장 중요한 노예 매매의 중심지가 되었다.1783년에 영국은 탈출 노예들과 화평을 맺었으며, 100년 후인 1834년에 영국 의회는 노예제를 폐지하면서 자메이카의 모든 노예들도 해방시켰다. 해방 노예들은 독립적인 농부들이 되었다.1865년에는 농장 지주들과 고용인 사이의 갈등으로 반란이 일어나자, 영국 정부가 자메이카를 왕실의 식민지로 삼았다.
1930년대말 대공황 결과 영국 직할식민지 체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져 폭동이 일어나고 노동조합이 결성된 후 자치에 대한 요구가 거세어졌다. 이후 영국연방 내의 식민지로서 1944년 의회를 설치하고 새로운 헌법도 제정하였는데, 양원제의 입법부, 내각제의 행정부, 성인의 보통참정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53년에는 내각정부(內閣政府) 제도를 수립하였으며, 1959년에는 완전한 내정자치권을 획득하여 자치정부를 구성하였으며, 1962년에는 영국 연방 내의 독립국이 되었다.[9]
자메이카는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나라로카리브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고 영어를 쓰는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자메이카는 블루 산맥의 본산지이며 좁은 평원으로 둘려싸여 있다. 모든 주요 도시와 마을이 해안에 있다. 주요 도시로는 킹스턴, 포트모어, 만데빌, 오초 리오스, 포트 안토니오 등이 있다.
자메이카의 총인구수는 2015년 기준으로 2,793,335명이다. 인구 증가율은 0.38%(2010년~2015년)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인구밀도는 257.9km2이며 세계 평균인 56.5명/km2와 비교해보면 매우 높다. 자메이카 전체 인구의 54.8%(2015년 기준)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중위연령은 평균 29.1세로 높은 편이다. 노인인구비율이 9.14%로 고령화사회에 속한다.[13]
자메이카는 세계적인 육상 강국으로우사인 볼트가 대표적인 육상 스타로 손꼽히는 가운데 그 외에도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다른 나라로 이주한 육상 선수들도 많으며하계 올림픽이나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등의 세계 대회에서 3위 이상의 성적을 꾸준히 거두고 있다.
반대로 축구의 경우1998년 FIFA 월드컵 이후에는 월드컵 본선과는 인연이 없지만 그래도일본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2-1로 꺾으며 월드컵 본선 첫 승을 챙겼고CONCACAF 골드컵 본선에는 무려 15번 참가하여 이 중 2번의 대회에서 준우승(2015,2017)을 차지하는 등 국제 대회에서 두각을 계속해서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