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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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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어:习近平
중국조선어:습근평
2025년의 시진핑
2025년의 시진핑
중국공산당제7대 중앙위원회 총서기
임기2012년 11월 15일~
전임:후진타오(제6대)

임기2013년 3월 14일~
부주석리위안차오(2013년~2018년)
왕치산(2018년~)
총리리커창(2013~2023)
리창(2023~)
전임:후진타오(제6대)

임기2012년 11월 15일~
전임:후진타오(제7대)

임기2008년 3월 15일~2013년 3월 14일
주석후진타오
전임:쩡칭훙(제8대)
후임:리위안차오(제10대)

신상정보
본명习近平
로마자 표기Xi Jinping
출생일1953년 6월 15일(1953-06-15)(72세)
출생지중화인민공화국베이징시
국적중화인민공화국
학력칭화 대학화학공학 학사
칭화대학 인문사회학원 법학 박사
정당중국공산당
부모아버지시중쉰, 어머니 치신
배우자커링링(이혼)
펑리위안
자녀1녀: 시밍쩌
종교무종교(무신론)
서명
시진핑
‘시진핑’의 중국어 간체자 및 중국어 정체자
정체자 習近平
간체자 习近平
발음기호
표준중국어
병음이 소리의 정보Xí Jìnpíng
웨이드식Hsi2 Chin4-pʻing2
IPAɕǐ tɕîn.pʰǐŋ
주음부호ㄒㄧˊ ㄐㄧㄣˋ ㄆㄧㄥˊ
중국조선말
조선글습근평
한자習近平

시진핑[주해 1] 또는습근평[주해 2](1953년6월 15일~)은중화인민공화국최고지도자로,공산당 총서기,중앙군사위원회 주석,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 등의 직책을 맡고 있으며, 제18·19기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다.

제17기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장으로 2007년 17기 1중 전회에서 권력 서열 6위에 올랐으며, 2008년 3월부터부주석이 되었다.

2012년 11월후진타오 주석으로부터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함께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승계하였다. 2013년 3월 14일에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에 선출되었으며, 2018년 3월 연임에 성공, 2022년 10월에는마오쩌둥 이래 최초로 3연임이 확정되었다.

생애

1953년 6월 15일베이징시에서 태어났으며시중쉰과 아내 치신(齊心)의 2남 2녀가 있으며[1], 혼외자식으로 시진핑이 다른 형제들을 제저하였다.[2]

농민 운동가 출신으로덩샤오핑에 의해서 시장적 개혁주의자로 발탁되었던 아버지 시중쉰은중화소비에트공화국의 서북부 변방 지역에서 비교적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했던 중국공산당의 서북 지역의 혁명가이자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공신이었다. 중국공산당 정부의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하였지만, 1962년에는 소설 류즈단 필화 사건으로마오쩌둥 정권에서 탄압을 받으면서베이징에서 산시 성으로 강제로 좌천되었다. 시진핑은중화인민공화국문화대혁명 시기를 넘어화궈펑 집권기까지 갖은 고초를 겪는 부친으로 인해 농촌 지방을 돌아다니며 자랐다.중국공산당에 따르면 시진핑은 7년 동안 산시 성에서 힘겹게 살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시진핑은 소싯적부터 리더십이 있었는지 좌천되었던 곳에서 산시 성의 노동자들을 지도하여 최고의 생산량을 올렸다.

시진핑은중국공산당 입당에 10번 실패한 경력이 있는[3]태자당 계열의 정치인이다.

1978년 11기 3중 전회에서시중쉰중국공산당광둥성 제2서기로중국공산당의 정치 무대에 복귀하였고 후에광둥성 제1서기가 되었으며덩샤오핑의 사상 해방과 경제 개혁 실시에 큰 역할을 하였다.

시진핑은 1979년에칭화 대학 화학공학과를 나왔고 학부 졸업 후, 국무원겅뱌오 부총리의 비서로 정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2001년에는칭화 대학 인문사회학원에서 중국공산당의 1980~1990년대 중국 농촌 경제 개혁 분야의 성과를 연구한 《중국 농촌의 시장화 연구》라는 논문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관료 생활

허베이성정딩현위원회 서기,푸젠성샤먼시 부시장,푸저우시 당위원회 서기 등푸젠성에서의 공직 생활을 거쳐,[4] 2000년에푸젠성 당위원회 서기, 2002년부터 2007년까지저장성 당위원회 서기, 2007년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를 지냈다. 특히푸젠성 당위원회 서기,저장성 당위원회 서기 재직시 경제발전에 공을 많이 세우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였다.

정치 활동

2008년,미국 대통령조지 W. 부시와 함께
2012년미국 국무부에서 연설하는 시진핑. 뒤에 보이는 이들은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조 바이든 부통령

1973년에 10번에 실패 끝에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이후, 2007년에는 정치국 상무위원, 2008년에는 국가 부주석이 되었다. 현재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공산당 중앙 서기처 서기, 중앙 당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국가주석직

2012년 10월 제18차 공산당 전국 대표대회(당대회)를 계기로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모두 거머쥐게 되었다. 이듬해 3월 14일에 공식적으로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중국이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해 30여년 개혁개방으로 고도 경제 성장을 해온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해 반부패 사정이 불가피하다는 명분을 들어 무엇보다 뇌물 수수와 청탁 문화가 중국 미래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면서 부정부패 척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때 나온 단어가 '파리'와 '호랑이'인데, 거물 부정부패 혐의자를 호랑이로, 지역의 당정 관료를 파리로 칭한 것이다.

시진핑의 취임 즈음에는 '보시라이 사건', '링지화 사건' 등 최상층부에서 터진 부정부패 사건들이 있었고, 시진핑은 당 총서기에 취임한 이후로 "호랑이(고위관료)든 파리(하급관료)든 모두 때려 잡겠다"며 철저한 부정부패 척결을 선언했다. 이것으로 시진핑은 우선 상정된 당내 부패 정치인을 처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의 이 같은 작업은 반부패 사정 목적 이외에도 정적 제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특히 강도 높은 반부패 사정 작업이 10년 넘게 지속됐는데도 부정부패 혐의자가 더 늘어난 데 의구심을 표시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왕치산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이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태자당 출신이면서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의 후원을 받던보시라이, 리커창과 리위안차오의 측근이었던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비서실장 출신의링지화가 중형에, 상하이방 출신의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 서기, 군 최고지도부였던 궈보슝과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원자바오가 한때 추천했던 차기 후보쑨정차이 전 충칭시 당서기 겸 정치국 위원 등이 잇따라 숙청됐다. 이로 인해 상하이방과 공청단 등 기존 계파가 급속히 퇴조하고 당내 부정부패에 연관된후춘화 등도 시진핑과 후진타오의 눈밖에 나면서 차기 주석이나 총리 후보 구도에서 멀어졌다.리커창의 권력 약화는 시진핑의 측근이 다수를 점하는 시자쥔(习家军, 시진핑 측근들)의 세력의 강화로 연결되었다. 과도적인 정치적 과정을 거쳐서 포스트 시진핑 중공 권력의 차기 주석과 차기 총리 후보는 현재 중국공산당 중앙위원급의 지도자들 중에서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졌다. 중앙기율검사위의 발표 내용을 보면 사실상 시진핑 집권 첫해인 2013년 고위 관료 21명을 시작으로 2014년(41명), 2015년(37명), 2016년(29명), 2017년(32명), 2018년(28명), 2019년(22명), 2020년(20명), 2021년(25명), 2022년(34명)까지 한해에 최소 20명 이상이 처벌을 받았다.

집권 1기(2012∼2017년)에 사정 대상자가 많았고, 시진핑이 당의 암묵적 계율인 '2기 초과 연임 금지' 규정을 깨고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3기 연임을 강행한 2022년에 상대적으로 고위 관료 처벌이 많았던 점이 눈에 띈다. 부정부패 혐의로 조사받는 고위 관료가 늘어난 건 사정당국이 은퇴한 고위 관료 17명을 조사 대상에 넣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통상 중국에선 부정부패 고위 공직자의 경우 퇴진하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아 왔으나, 이런 암묵적 관례를 깨고 사정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시진핑의 반부패 사정을 두고, 9인 또는 7인의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들이 권력을 분점한 집단지도체제를 '1인 체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에 저항하거나 반발하는 세력을 처단하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시진핑의 이런 시도는 집권 초기부터 태자당-상하이방-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라는 중국 내 삼각 권력 구도 속에서 난관에 봉착했고, 그 과정에서 시진핑은 반부패 사정을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썼다는 분석이 제기된다.공산당 혁명 원로의 자제가 주축인 태자당 소속 시진핑은 집권 이후 장쩌민 계열의 상하이방, 후진타오·리커창 중심의 공청단과 힘겨루기를 해왔다.

중앙기율검사위 이외에 공안과 검찰, 법원 권력까지 쥔 시진핑은 집권 초기 저우융캉을 비롯해 범 상하이방 인사들을 대거 부패 혐의로 낙마시켰다. 중국 정계에서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막후 영향력을 바탕으로 '지분'을 행사해온 상하이방은 결국 작년 11월 30일 장쩌민 사망과 함께 사실상 몰락했다.

공청단 역시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2012년 퇴임 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진핑을 견제할 힘을 상실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당시 상무부총리로서,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 서기와 함께 후 전 주석의 뒤를 이어갈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리커창은 시진핑의 견제로 실권을 잃은 총리로 전전하다 임기를 마친 뒤 지난달 27일 사망했고, 이를 계기로 공청단도 설 자리를 상실한 듯하다.

시진핑의 부인은 중국공산당의 국민 가수였던펑리위안이다. 많은 고생 후 성장한 국가 주석 시진핑의 능력과 더불어, 당 원로이자 개혁개방의 설계자 중 하나이었던 개혁가 출신의 아버지 시중쉰의 공적 때문에도장쩌민후진타오 등에게서 모두 정치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시진핑은 2013년 국가 주석에 선출되었다. 2010년 10월 18일 제 17기 5 중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이 지위를 손에 넣은 것으로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로 사실상 확정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5] 2012년 11월 15일 중국공산당 제18기 1 중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됐다. 그리고 2013년 3월 14일 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과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되었으며 자신의 취임 연설과 다름없는 전인대 폐막 연설을 통해서 중화민족의 부흥[6]을 제창하고 중국공산당이 지도하는 민족 진흥, 국가 부강, 인민 행복의중국몽[7]을 말하였다. 2017년 4월 8일 미중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했다고 말해 한국에서 공분을 샀다.[8][9][10] 시진핑은 2017년에 열린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시진핑 사상)을 처음 거론했고 중국공산당도 당헌 개정 과정에서 시진핑 사상을 지도적 사상에 추가시켰다.

시진핑이 강조한 2020년을 샤오캉 사회, 즉 의식주 걱정 없이 안락하고 풍요로운 사회가 되는 완성의 해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2020년 5월 28 전인대 폐막기자회견에 리커창 총리가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 명은 월수입이 1천 위안(약 17만 원)에 불과하다"며 시 주석이 제창한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이 미흡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당시 그의 발언은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에 막혀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차단됐지만, 유튜브나 트위터 등 해외 SNS를 통해 널리 확산되었다.


장기 집권 시도 및 재선 성공

2018년 3월 11일에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 헌법에서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해 시 주석의 종신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전인대는 2964표 가운데 찬성 2958표, 반대 2표, 기권 3표, 무효 1표로 9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개헌 전 중국 지도자의 임기는 10년으로 제한됐으나, 개헌 후에는 원칙적으로 '종신집권'도 가능할 수 있게 된다.[11][12]

2018년 3월,중국공산당전국대표인민회의에서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10년간의 장기집권의 길을 열게 되었다.

코로나19 대응

 이 부분의 본문은코로나19 대유행입니다.

2019년 11월,우한에서 처음으로코로나19가 발병했다. 시진핑은 곧바로 영도소조를 세웠다. 시 주석은 수장을리커창 총리에게 맡겼다. 그러나 이후 코로나19 대유행이 심해지면서대한민국,중화민국,일본,미국,영국,인도 등 전세계에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후 시 주석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발표했다.

3연임

2022년 10월 16일에 열린중국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에서 시진핑은 다시 압도적으로 3연임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로써 시진핑은 종신집권에 길을 사실상 열게 되었다.

개인 생활 및 취미

축구

시진핑은 열렬한 축구 팬으로 잘 알려져 있다.[13] 허베이성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는 바둑 기사인 친구녜웨이핑에게 자주 축구 경기 티켓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4] 2012년 중국 부주석 자격으로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당시, 시진핑은크로크 파크에서 축구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13]

2011년, 그는 중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월드컵을 유치하며, 궁극적으로 우승하는 3단계 비전을 제시했다.[15]

2015년에는 축구를 국가 교육과정에 포함하고, 2025년까지 전국에 5만 개의 축구 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50개 항목의 축구 진흥 계획을 승인했다.[16] 그러나CNN에 따르면, 잘못된 재정 운영과 고위층의 부패 의혹, 그리고중국 대륙의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해 중국 축구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15]

2023년, 시진핑은 자국 대표팀의 실력에 대해 “그다지 자신이 없다”고 언급했다.[17]

외교

2014년 방한해,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 판다인 러바오와 아이바오를대한민국에게 기증했다. 이후 시진핑은문재인,윤석열과도 정상회담을 했다.

2015년에 역사적으로 양안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하지만중화민국 독립파인차이잉원 집권 이후양안관계는 관계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시진핑은 일반적으로 반미 성향으로,미국-중국 무역전쟁이 일어나면서 미중관계는 더더욱 악화 중이다.

시진핑은 방일 성향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해산물 수입 관련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자 시진핑은 러시아를 지지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우호적이며, 시진핑은 집권 기간 동안김정은을 여러번 초청했다.

인도와는 집권 동안 갈등을 겪고있고, 2021년 인도 정부는틱톡을 차단했다.

정책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

 이 부분의 본문은2022년 동계 올림픽입니다.

2015년IOC 총회에서베이징시가 2022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비판

시진핑은 1인 독재와코로나19 대유행,홍콩 민주화 운동 등으로 전세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시진핑을 가장 불신하는 국가로 꼽혔다.

1인 독재

보시라이 숙청을 시작으로 시진핑은 점차 자신의 정착을 제거해가면서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저우용캉 전 상무위원마저 국가 반역 시도 혐의로 처벌 수순에 오르면서 시진핑의 독재를 막을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 부분의 본문은코로나19 대유행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일어나자 세계 각국에서는 시진핑을 비판하면서반중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

 이 부분의 본문은2019-2020년 홍콩 시위입니다.

시진핑은 사실상일국양제를 어기고 시위에 간섭했다. 결국 2020년 사실상일국양제는 붕괴되면서 시위는 끝났다.

중국몽

중국공산당의 시진핑 주석은 2012년 11월에중화인민공화국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추대되면서부터 '중국몽'이라는 정치 지도 개념을 언급하였다.

중국공산당은 이에 따라 1949년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이후로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중화인민공화국 내에서 '중국몽'을 구현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부터는 '공동 부유'의 정치적 과제를 제기하면서 이를 실천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중국몽'의 국제적인 전략으로 '일대일로'와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추진해 왔으며, 이를 위해 관련 국가들에게 자원과 자본을 제공하기도 했다.

실각설

 시진핑 실각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25년 6월, 시사인 등 국내 주요 언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실각 가능성을 보도하며, 그가 실질적인 권력을 상실하고 당과 군 내부에서 사실상 축출되었다는 분석을 제기했다. 특히 시사인은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의 비밀 확대회의에서 시진핑의 퇴진 여부가 주요 안건으로 논의되었으며, 이미 그가 꼭두각시로 전락한 상태라는 중화권 전문가들의 평가를 인용했다. 보도에 따르면, 군부 내 시진핑 측근들의 연이은 낙마와 자살, 실종은 반시진핑파인 장유샤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중심으로 한 권력 재편의 일환으로 해석되며, 시 주석의 장악력이 급격히 약화된 정황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후진타오, 원자바오 등 공산당 원로와 공청단 세력의 정치적 복귀와 맞물리며, 공산당 내부 권력 구도의 전면적인 변화가 임박했다는 신호로 읽히고 있다. 시진핑의 군권 상실과 측근 세력의 와해, 인사권 이동, 그리고 당내 퇴진 논의는 그의 정치적 몰락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국내외 보도들의 공통된 진단이다.[18][19]

주해

  1. 중국어간체자:习近平,정체자:習近平,병음:Xí Jìnpíng시진핑[*],중국어 발음: [ɕǐ tɕîn.pʰǐŋ] (듣기)
  2. 한국 한자:習近平

각주

참조: 박근형 《후진타오 이야기》 명진출판, 288쪽-290쪽.

  1. 시진핑은 2남 2녀 중 셋째(첫째 아들)이다.
  2. 조선일보 최유식, 시진핑, 아버지의 부하의 딸과 이혼한 이유, 밝혀졌다.
  3. 홍제성 기자 (2010년 10월 20일).시진핑 "공산당 가입 10번 퇴짜". 연합뉴스. 2010년 10월 22일에 확인함. 
  4. 고쿠분 료세(国分良成).중국(中国) (일본어).현대용어의 기초지식(現代用語の基礎知識). 지유고쿠민샤(自有国民社). 499쪽.ISBN 978-4-426-10128-2. 
  5.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2014년 8월 12일에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10월 19일에 확인함. 
  6. 장쩌민(2002), 후진타오(2011)
  7. 중국이 추구할 이상향을 말한다. 2012년 11월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추대되면서부터'중국몽'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8. 트럼프 "시진핑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 말하더라". TV조선. 2017.04.19.
  9. 트럼프, 시진핑 만난 후 인터뷰서 "한국이 중국 일부였다더라". 연합뉴스. 2017.04.19.
  10. 트럼프 “시진핑이 그러는데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더라”. 경향신문. 2017.04.19.
  11. de la Merced, Michael J., and Russell Goldman,"How Davos Brings the Global Elite Together",New York Times, 14 January 2017. Retrieved 15 January 2017
  12. 시진핑 ‘1인 체제’ 시나리오 중국 개헌안 99% 찬성으로 통과. 
  13. 12Xi shows off his football skill (영어).China Daily. 2023년 10월 10일. 
  14. What saddens President Xi Jinping? (영어).China Daily. 2014년 10월 11일. 
  15. 12Andrew McNicol; Andrew Raine (2023년 4월 7일).Xi Jinping wanted China to be a global soccer power. What went wrong? (영어).CNN. 2024년 7월 12일에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6. Tariq Panja (2023년 3월 29일).China's Soccer Experiment Was a Flop. Now It May Be Over. (영어).The New York Times. 
  17. Xi says 'not so sure' of Chinese football team's abilities (영어).채널 뉴스아시아. 2023년 11월 19일. 2023년 12월 14일에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8. 남문희.중국발 천하대란, 시진핑의 몰락 시작됐나.시사IN. 2025년 7월 15일에 확인함.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출판일= (도움말)
  19. Jeon, Young-ki. "시진핑 실각설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시사저널, 11 July 2025,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586/0000107103?sid=104. Accessed 15 July 2025.

같이 보기

외부 링크

제6대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전임
후진타오
2012년 11월 15일~
마오쩌둥 ·화궈펑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전임
후진타오
제7대 중국공산당 총서기
2012년 11월 15일~
전임
후진타오
제7대중화인민공화국 주석
2013년 3월 14일~
전임
쩡칭훙
제9대중화인민공화국 부주석
2008년 3월 15일~2013년 3월 14일
후임
리위안차오
전임
후진타오
제4대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2013년 3월 15일~
전임
후진타오
제8대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2012년 11월 15일~
전임
쩡칭훙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2007년~2012년
전임
쩡칭훙
제19대중국공산당 중앙당교장
2007년~2012년
전임
한정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
2007년
후임
위정성
전임
장더장
저장성 당위원회 서기
2002년~2007년
후임
자오훙주
전임
허궈창
저장성 성장
2002년~2003년
후임
뤼쭈산
전임
허궈창
푸젠성 성장
1999년~2002년
후임
루잔궁
중화인민공화국 국기
중화인민공화국 국기
중화인민공화국 국장
중앙인민정부 부주석
1949년 ~ 1954년
주더 ·류사오치 ·쑹칭링 ·리지선 ·장란 ·가오강(1954년 8월 17일자살)
(1949년~1954년, 6인 공동 체제)
중화인민공화국 부주석
1954년 이후
중국공산당 제20기중앙정치국(2022-2027년)
상무위원(서열 순)
중국 공산당의 로고
정치국원(가나다 순)
상무위원(서열 순)
중국 공산당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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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위원장
총서기
이념
조직
당대회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국공산당의 당기
중국공산당의 당기
중국공산당 주석
중앙위원회 총서기
제6기
1중전회
3중전회
4중전회
1931년 1월
1931년 6월
1931년 9월
5중전회
1934년 1월
1935년 1월
1937년 12월
6중전회
7중전회
제7기
제8기
1중전회
11중전회
제9기
제10기
1중전회
2중전회
1975년 1월
1976년 10월
3중전회
제11기
1중전회
6중전회
제12기
1중전회
7중전회
제13기
1중전회
4중전회
제14기
제15기
제16기
제17기
제18기
제19기
제20기
중화인민공화국의 현직 최고 지도자
  • 2025년 11월 28일 갱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20기)
총서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정치국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부주석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14기)
위원장
부위원장
국가주석
(국가 원수)
국가주석
국가부주석
국무원
(제14기)
총리
부총리
국무위원
전국정협
(제14기)
주석
부주석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부주석
최고인민법원
법원장
최고인민검찰원
검찰원장
현재G20의 지도자
1 중화민국(대만)은하나의 중국 원칙,양안 관계를 고려하여 APEC에서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한다. 또한 APEC 정상 간의 회담에서는중화민국의 총통이 아닌APEC 중화 타이베이 대표가 참석한다.
BRICS 정부 수반
국제
국가
학술
인물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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