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공화국(세르비아어:Република Србија / Republika Srbija 레푸블리카 스르비야,영어:Republic of Serbia), 약칭세르비아(세르비아어:Србија / Srbija 스르비야,문화어: 쓰르비아)는동남유럽 중앙의발칸반도와판노니아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내륙국이다. 세르비아의 수도인베오그라드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로,발칸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권 중 하나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르비아는몬테네그로,크로아티아 및슬로베니아를 비롯해 여타 남슬라브 민족들과 함께유고슬라비아로 통합하여 존속하다가, 1991년부터 각 민족국가로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내전을 겪었다. 이후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와 함께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연방을 구성하였으나, 2006년 6월 5일 몬테네그로가 독립하며 두 나라도 분리되었다. 2008년 2월에알바니아인이 다수를 이루는 남부 지역의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했으나, 세르비아는 코소보를유엔 코소보 임시행정부(UNMIK)이 통치하는 자치주로 보고 그 독립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코소보는 현재까지 국가에 따라 승인 여부가 다른 부분적 승인 국가로 남아 있다.
6세기에발칸반도를 침공한 남슬라브족은 여러 개의 작은 왕국을 수립했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소멸되고 만다.780년경부터 830년 사이에는 비셰슬라브(Višeslav), 라도슬라브(Radoslav), 프로시고이(Prosigoj)가 차례대로 세르비아를 지배했는데 유럽에서 경쟁 관계에 있던불가리아 제1제국,비잔티움 제국,프랑크 왕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830년경에는 비잔티움 제국의 지원을 받은 블라스티미르(Vlastimir) 공작이 발칸반도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불가리아 제1제국을 물리쳤다. 이를 계기로 세르비아에는 블라스티미로비치(Vlastimirović) 왕조의 지배를 받은중세 세르비아 공국이 수립되었다.850년에는 무티미르(Mutimir) 공작이동방 정교회를 세르비아의 국교로 정하면서 기독교 세례를 받게 된다. 중세 세르비아 공국은마케도니아,보스니아 등으로 세력을 확장했지만969년 비잔티움 제국에 합병되면서 소멸되고 만다.
1091년에는 현재의노비파자르에 세워진 도시인스타리라스를 수도로 하는세르비아 대공국이 수립되었다.1166년에는스테판 네마냐가 세르비아의 대공으로 즉위한 뒤부터 세르비아의 여러 부족을 통일했다. 스테판 네마냐는 비잔티움 제국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이후에 독립된 세르비아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네마냐 왕조 시대를 열었다.
1817년에는세르비아 공국이 수립되었다. 세르비아 공국은1830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완전한 자치권을 획득했으며 세르비아 공작의 세습도 인정받았다. 공국 수립 당시의 영토는 오스만 제국의 베오그라드 파샤 관구가 있던 곳에 불과했지만 1831년부터 1833년까지 공국의 영토가 동쪽, 남쪽, 서쪽으로 확장되었다.
1867년4월 18일에 오스만 제국이 세르비아 공국에서 군대를 철수하면서 세르비아 공국은 사실상 독립했다.1878년7월 13일에 체결된베를린 조약을 통해 오스만 제국이 세르비아 공국의 독립을 법적으로 승인하면서 세르비아 공국은 국제적인 승인을 받았다.1882년을 기해세르비아 왕국으로 개편되었다.
세르비아 왕국은 민족적으로는슬라브족에 속하고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하였으므로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가 교착되는 등 국내 정세가 복잡하였다.알렉산다르 1세가1903년에 흑수단에 의해 암살된 뒤, 다음 왕인페타르 1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하였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세력확장 정책과 유럽 열강들의 이해 대립이 발칸을 화약고와 같은 상태로 몰아넣었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세르비아는 대통령보다 총리의 실권이 크고 대통령은 상징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으나, 부치치 총리가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의 권한이 지금보다 훨씬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유고 내전의 여파로 얼마 전까지 대안우익 정당인세르비아 급진당이 집권했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반 우익 정당인세르비아 진보당이 집권하게 되었다.
세르비아어가 공용어이다.키릴 문자와로마자 모두 사용되나, 키릴 문자의 사용이 보다 보편적이다.크로아티아어나보스니아어와는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방언적 차이에 불과했으나, 현재 정치적인 대립을 배경으로 급속히 분화하는 중이다.
2006년 10월 28일과 29일에 실시한 국민투표로 확정한 헌법 10조 1항에 "세르비아 공화국에서는 세르비아어와 키릴문자가 공식적으로 사용된다."라고 규정했다.보이보디나 자치주에서는헝가리계 주민 상당수가모어(母語)로헝가리어를 쓰며, 그 밖에 소수 민족 언어도 일부 사용된다.
세르비아는 2006년 9월부쿠레슈티에서 열린프랑코포니 정상회담에 따라 참관국 자격을 획득하였으나, 프랑스어의 사용은 일부 제한적이다.
공산주의 붕괴에 따라1992년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여 경제 발전을 시작했으나,유고슬라비아 전쟁과 그로 인한UN의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었다. 2003년에는 국유 재산의 완전 사유화와 외자유치를 추진했지만, 2004년에는 외국인 투자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무역적자가 커져 그를 메워줄 경제와 산업이 필요하다. 광공업이 발달했지만,헝가리나폴란드에 비해 경제 발전이 한참 뒤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