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예교위(司隷校尉)는 고대 중국의 관직이다.
전한,후한,조위,서진 시대에 황제의 친족을 포함한 조정 대신들을 감찰하는 것을 목적으로,무제가정화 4년(기원전 89년)에 처음 만들었다. 초기 직무는무고를 단속하는 것이었다.
장안과낙양을 둘러싼하남군·하내군·하동군·홍농군·경조윤·우부풍·좌풍익을 통괄했다. 사예교위의 일은자사와 비슷하지만, 자사가 지방 관리를 단속하는 데 비해 사예교위는 중앙 관리를 단속하기에 자사보다 격이 높았다. 이때 사예교위는어사중승·상서령과 함께 "삼독좌"(三獨座)라고 불렀다.
원연 4년(기원전 9년) 폐지되었다가, 후한이 세워진 뒤 부활하였다. 후한에서는자사에 더해 주목을 설치, 지방 행정과 군사를 통괄하게 되어 주목이태수의 상위에 올랐고, 사예교위의 역할도 감찰관에서 제도 주변의 수비와 행정을 담당하는 중앙장관으로 변해 영향력이 증가하였다. 그러다건안 18년(기원후 213년) 기존의 주 구분을 폐하고 상고시절구주제를 부활시켜 사예교위부도 폐지되었다.
후한이 멸망, 위나라가 성립하자 사예교위가 부활했고 서진도 이를 계승했지만,동진은 화북 지방을 상실했기에 사예교위직이 소멸했고 이후로 부활하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