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釜山廣域市,영어:Busan Metropolitan City)는한반도 남동부에 위치한광역시이다.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영남권의 중심 도시이며, 대한민국 최대의해양 도시로서부산항을 중심으로 해상무역과 물류 산업이 발달하였다.일본과는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시청 소재지는연제구연산동이며,행정구역은 15구 1군이다.
부산의 역사는동래와부산포의 두 지역으로부터 유래하였다.통일신라 시대부터동래군이 설치되었으며,임진왜란 당시에는 첫 전투인부산진 전투와동래성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일본인의 통상교류가 이루어지는왜관이 자리한 고을이자조선 통신사의 출발지였다. 1876년강화도 조약으로인천,원산과 함께 처음으로 개항한 도시였으며,부산항의 정비와 함께 본격적인 항구도시로 발전했다.
6.25 전쟁 당시 임시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공업과 무역시설의 발전과 함께 1963년 정부 직할시를 거쳐 1981년 부산직할시 (현 광역시)로 승격되었다. 21세기 들어2002년 FIFA 월드컵과2002년 아시안 게임, 2005년APEC 정상회담 등의 국제행사를 유치하였으며, 대한민국의 대표 국제영화제인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태종실록》(1431년)에 富山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이며[2] 《경상도지리지》(1425년) ,《세종실록》 〈지리지〉(1454년), 경상도 속찬 지리지(1469년) 따위에 “동래부산포”라 하였고, 1471년 편찬된신숙주의해동제국기에도 “동래지부산포”라 하고, 같은 책 삼포왜관도에도 “동래현 부산포”라는 기록이 있다. 이때 부산포는 “부자 富”를 썼다.1470년(성종 1년) 12월 15일의성종실록에 釜山이 처음 나타나는데, 1474년 4월남제가 그린 부산포지도에는 여전히 富山이라 쓰고 있어 이 시기는 두가지 표기가 같이 쓰였다. 그러나 이후 기록은 부산포(釜山浦)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부산의 지명 변천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동국여지승람(1481년)이 완성된 15세기 말엽부터, 釜山이라는 지명이 일반화 된 것으로 추정된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보면, “釜山은 동평현(오늘날 당감동 지역이 중심지였음)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이같이 일렀는데, 그 밑이 곧 부산포이다. 항거왜호가 있는데 북쪽 현에서 거리가 21리다.”라고 하여 산 모양이 가마꼴과 같아 부산(釜山)이라고 하였다. 그 후 기록들은 이를 그대로 인용하여 釜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동래부지(1740년) 산천조에 “부산은 동평현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이 같이 일렀는데 밑에 부산, 개운포 두 진이 있고, 옛날 항거왜호(恒居倭戶)가 있었다.”라고 하였고, 동래부읍지(1832년)에도 같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보아 동국여지승람 편찬 이전에는 富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오다가 이후 어느 시기에 釜山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1643년(인조 21년)에통신사 종사관으로일본에 건너간신유의해사록에 실려 있는 “등부산시”(登釜山詩)에 “산 모양이 도톰하여 가마와 같고 성문이 바다에 임하여”라고 한 구절이 나온다. 이때부산진성은 오늘날동구 좌천동 북쪽의 증산을 둘러싸고 있는정공단 자리에 성문이 있어 성문 바로 아래가 바다와 접해 있었으므로 이 시문에 나오는 산은 좌천동의 증산(甑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18세기 중엽에변박이 그린 “왜관도”를 보면 이 증산을 점초(点抄)하여 “부산고기”(釜山古基)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동구 수정동에서 산을 넘어 부산진구 가야동으로 통하는 고개를 “가모령”이라고 한다. 이 가모(可牟)·감(枾)은 가마를 즉 “가마”(釜)를 뜻하는 것으로 가모령·감(枾, 嶺)은 한국의 방언을 한자로 차용한 것으로 가마재·가마고개(釜峙), 즉 부산재(고개)를 뜻한다. 그리고 고로(古老)들은 증산을 시루산이라고 하는데 시루(甑)와 가마(釜)는 같은 취기(炊器)로 금속성의 가마가 나오기 전에는 동일한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하여 볼 때 "산이 가마꼴(釜形)과 같다"라고 한 가마꼴의 산은 오늘날 동구 좌천동 뒤에 있는 증산(甑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3]
부산의 영문표기는 Pusan으로 쓰였으나 2000년7월 7일문화관광부의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고시에 따라 Busan으로 바뀌었고, 이후 P와 B가 혼재돼 쓰이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에 2012년 부산시는 도시 브랜드 'Busan'의 홍보에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명칭 변경 협조를 구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Pusan 지명을 쓰는 단체들은 이미 각인돼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표기를 바꾸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4]
부산 지역에는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무리지어 살기 시작했다.삼한시대에는 지금의동래나남구 등지에는 "거칠산국"이,기장,해운대 등지에는 "장산국", "내산국"이 있었고서면이나남포동 등지에는 "가락국" 등의 부족국가가 있었다. 그러다삼국시대신라는 서기1세기 후반인탈해 이사금 때에 기장의 장산국과 거칠산국을 점령하게 된다.
부산포 일대에는가야의 종발성이 세워져신라와가야의 각축장이 되었다.내물마립간 대인 서기 400년경에 가야가 백제, 왜와 연합하여신라를 침공했다가광개토대왕의고구려군에게 대패하여 패망하자 부산 전역이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옛거칠산국은 거칠산군이 되고 종발성은 "큰 시루"라는 뜻의 대증현(大甑縣)이 되었다.남북국 시대인757년경덕왕에 의한 행정개편으로 거칠산군은양주(현재양산시) 소속의 동래군으로 개칭되었다. 대증현은 동평현(東平縣)으로 개명되어 기장현(機張縣)과 함께 동래군의 관할현이 되었다.
조선태조 6년[6]인 1397년 동래군에 진이 설치되었다. 1405년 울주의 속현이었던 동래현이 독립현이 되고 양주의 속현이었던 동평현이 동래의 속현이 되었다. 15세기 전반까지 부산은 ‘부산포’로 불렸다. 동래는 1547년 동래도호부로 승격이 되었다.
1592년 울산 개운포에 있던경상좌수영을 동래부 남촌면(현재 수영동)으로 옮겼다. 그해 4월 발발한임진왜란에서 가장 먼저 일본군을 맞이한 지역으로서부산진 전투와동래성 전투가 벌어졌고, 각각정발과송상현이 지휘를 맡으며 조선군과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벌였으나 압도적인 병력차로 패했다.[7]
1592년 9월 1일에는이순신이부산포 해전(부산 해전)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이듬해 1593년부터는 조선 수군의 봉쇄와 의병의 육상 보급로 차단,조명연합군의 반격으로 일본군이남해안 일대로 후퇴하며왜성을 쌓았는데,[8] 부산 지역에는부산왜성,증산왜성,구포왜성 등이 축성되어 현재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다.[9] 전쟁이 끝난 뒤에는 부산진이조선 통신사의 출항지로 활용되었으며, 일본인의 무역항이자 집단거주지로서왜관이 설치되었는데 1607년에는부산진 서남쪽에 두모포 왜관이, 1678년에는초량왜관이 개설되었다.
1876년조일수호조규에 의해 조선이 강제 개항되었을 때,인천,원산과 함께 개항되었고,왜관은 일본인 거류지가 되었다. 부산은 1877년 1월 《부산구거류지약조》의 체결로 일본이 일본인들의 보호관리 및 통상사무의 관장을 위해 관리관을 파견하면서부터일본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1880년, 일본은영사관을 정식으로 설치하고 일본 거류지를 조성하였다. 일본은 일본인 가구가 200여 호밖에 안 되던 때부터 장기적으로 도로망을 계획하고 가옥 구조를 규제했으며, 1880년대에 일본은 철도 부설을 위한 측량까지 모두 마치고 식민 통치의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부산은 개항 후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일본의 도시처럼 변했고 소수의 일본인들에 의해서 지배되는 도시로 되어갔다.[10]
1895년 6월 23일(음력윤 5월 1일) 동래부(東萊府) 동래군이 되었고, 이듬해 1896년 8월 4일경상남도 동래군으로 개편되었다. 이후부산항이 무역항으로 정비되면서 항구도시로써 발전하게 된다. 1905년에는경부선이 개통함과 함께부산역이 개업했다.
일제강점기 1914년 4월 1일에부산부(釜山府)는 부산부와 동래군으로 분할되었고 동시에 외곽의 기장군이 동래군으로 편입되었다. 1925년 4월 1일에는경상남도청이진주에서 부산 아미동으로 이전되었다. 1936년 동래군서면(현 부산진구 일대)과 사하면 일부가 부산부에 편입되었고, 1942년 동래군 동래읍(현 동래구), 사하면, 남면, 그리고 북면 일부가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50년한국 전쟁이 발발하고서울이 함락되면서, 부산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수도가 되었다. 전쟁을 피해 많은 피란민이 유입되어 인구가 급증했고, 1963년 1월 1일경상남도 관할에서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명칭이 '부산직할시'가 아니라 그냥 '부산시'였고, 단지 정부 직할이기 때문에 앞에 경상남도만 붙지 않았을 뿐이었으며, 1981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부산직할시로 불리게 되었다(1963년 1월 1일 이후, 각 신문사에서는 부산직할시로 표기했는데 무슨 비공식적으로 표기했다고 하는지). 다만 당시의 신문 기사 등을 살펴보면 비공식적으로는 부산직할시라는 명칭도 통용(부산시(장)나 부산직할시(장) 다 표기해야 통용이라는 말이고 언론이나 방송에서 부산직할시(장)으로 표기 및 방송 나갔는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11] 즉 '직할시'이기는 하였으나 '부산직할시'는 아닌 과도기의 명칭으로, 이 시기를 부산직할시로 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근래 들어서는, 경상남도 산하 시절과 정부 직할기를 구별하기 위하여 앞에 '정부 직할'을 괄호 병기하여 '(정부 직할) 부산시'로 표기하는 추세이다.
1978년2월 15일낙동강 서쪽의김해군 대저읍, 명지면이 부산시에 편입되었다. 1981년 4월 4일 지방행정에 관한 임시조치법 개정으로 법령상 공식적으로 '부산직할시'의 명칭을 얻게 되었다.[12] 1989년 1월 1일김해군 녹산면, 가락면이 부산직할시강서구에 편입되었다. 1994년 12월 20일 지방자치법이 재개정됨에 따라 1995년 1월 1일자로 직할시가 광역시로 일괄 개칭되어 부산직할시에서 부산광역시로 개칭되었다.[13] 1995년양산군 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이 부산으로 편입되어기장군이 신설되었다.
2010년대의 부산은 교통 인프라 확충과 도시 개발, 그리고 국제 행사를 통한 도시 브랜드 제고가 주요한 흐름이었는데,2011년부산–김해경전철이 개통되어 부산과 김해를 잇는 광역 교통망이 구축되었으며,2013년에는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착공으로 해양 물류 중심지로서의 위상이 강화되었다.2014년에는동해선 광역전철(부전–일광 구간)이 부분 개통되었고,2016년부터는 서부산권 개발이 본격화되어에코델타시티 및 신항만 배후단지가 조성되었다.2017년에는 해운대 엘시티(LCT) 랜드마크타워가 준공되어 부산의 스카이라인에 상징적 변화를 가져왔다.2018년동해선전철이 울산까지 연장되면서 부산·울산·경남을 연결하는 광역 교통 체계가 확립되었다.
국제 행사의 측면에서는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으며,2014년 ITU 전권회의,2016년세계교육포럼 등 다양한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특히2019년에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되어, 부산이동남아시아와의 교류 중심지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0년대에 들어 부산은 미래지향적 도시 비전과 국제무대 도전이 두드러졌다.2020년에는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하여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주요 행사가 온라인 또는 축소 개최되었다.2021년에는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이 통과됨으로써 동북아 관문 공항 건설이 본격화되었다.2022년에는 2030 세계박람회(EXPO) 유치를 공식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부산은 도시 외교에 적극 나섰다.2023년에는부산항 북항 재개발 1단계 사업이 진행되어 국제비즈니스와 친수공간을 갖춘 신도심 조성이 시작되었다. 그러나2024년11월 부산은2030 세계박람회 유치 경쟁에서사우디아라비아리야드에 패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여전히 해양·문화 중심의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장기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교통 및 도시 인프라 부문에서는강서구 에코델타 스마트시티 조성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는 수자원 관리와 에너지 효율을 기반으로 한 첨단 도시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울산·경남과의 연계 속에서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광역 경제 및 교통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하며대한해협을 사이로일본과 마주하고 있다. 시청을 기준으로 일본과의 직선거리는쓰시마섬까지는 49.5km, 일본 본토의후쿠오카까지는 약 180km이며, 이는서울까지의 직선거리인 325km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가까운 거리이다. 서쪽으로낙동강 하류의선상지인김해평야, 북쪽으로금정산, 동쪽으로는동해, 남쪽으로는남해가 위치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쪽으로경상남도김해시·창원시 진해구, 북쪽으로는양산시, 동북쪽으로는울산광역시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총 면적은 769.82km2이다.
부산의 지형은 크게 동부의 구릉성지대와 서부의 평야지대로 대별할 수 있다. 동부는 대부분 해발 300 ∼ 700m의구릉으로부산항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해안은리아스식 해안으로 해안선이 복잡하며, 해안평야가 발달하지 않아 평탄면이 협소하다. 김해에서 부산으로 편입된김해평야는 낙동강 하구에 발달한삼각주로 오랫동안 낙동강 상류에서 운반되어 퇴적된 평균 60m 이상의 충적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경작지로써의 생산성이 매우 높은충적 평야이다. 지금도 낙동강류와 연안류에 의해 사주(砂州)가 해안선을 따라 발달 중에 있다.
부산이라는 이름 자체도가마솥을 닮은 산이 많아 지어졌을 정도로 도심 안에 산이 많다. 산을 경계로 여러 생활권으로 도시가 분리되어 있다.해운대와서면과남포동을 잇는중앙대로 일대가 도심이 되며,동래,사상,구포,하단 등이 부도심이 된다.
부산은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온대 하우 기후(Cwa)와온난 습윤 기후(Cfa)가 혼재되어 있는 기후를 가지고 있다. 최한월(1월) 평균 기온 3.6°C, 최난월(8월) 평균 기온 26.1°C이다. 연평균 기온은 15.0°C, 연평균 강수량은 1,576.7mm이다.제주도를 제외한한반도 본토에서는 가장 따뜻한 기후라고 할 수 있으며,아시아 대륙 동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동백나무와 같은조엽수림이 잘 자란다.
상대적으로 겨울이 건조하고 여름은 다습하여 수자원 관리가 어려운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낙동강의하상계수는 상당히 크게 나타난다. 한반도 동남쪽에 위치해 있어, 주로 비가 오고 겨울에도 눈이 잘 내리지 않는다.
부산광역시는중생대의 퇴적 분지경상 분지의 남동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경상 누층군의 유천층군과 하양층군의 화산암 및 퇴적암 지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약간의화강암이 있다.화산암으로 구성된경상 누층군 유천층군이 대다수를 차지하며퇴적암 지층인다대포층과이천리층은 각각 다대포와기장군 지역에 소규모로 분포한다.[18]
부산광역시는 산하에 15개구에 1개군이 있다. 그 아래로 253개 동·리, 3개 읍, 2개 면이 있다.[21] 2015년 6월말 주민등록 인구는 1,430,441세대, 3,517,491명이다. 한편 부산광역시는 대도시권 특별관리법에 의거하여창원시,밀양시,김해시,양산시,거제시,울산광역시,경주시하고 함께 '부산 울산권'으로 묶여 있다.
광복 전에는조선총독부가, 광복 직후부터 정부 수립 직전까지는 미 군정청이 임명하는 방식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경상남도 산하 시절에는 관선과 민선이 혼재했으며 직할시 시절과 광역시로 개칭한 1995년 1월 1일부터지방자치제도 전면 실시 직전인6월 30일까지는내무부 장관의 제청을 받은 자가대통령의 승인을 득하여 임명되었다. 1995년7월 1일지방자치제도 전면 실시에 따라 제30대문정수 전 시장부터는 다시 민선으로 선출되고 있다.
부산광역시는1949년8월 부산부에서 부산시로 개칭된 이래,한국전쟁 발발(1950년 6월)과 임시수도 지정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급격한 인구 증가를 경험하였다.1951년에는 844,134명으로, 1952년에는 85만 명에 달하여 일시적으로 서울을 능가하는 최대 도시로 부상하였다. 이후1955년에는 100만 명을 돌파하였으며,1963년직할시 승격 및 행정구역 확장으로 1,360,630명에 이르렀다.1970년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과 도시화 가속화로 1,842,259명에 달했고,1978년김해 일부 지역 편입으로 2,879,570명으로 증가하였다.1980년에는 3,159,766명으로 300만 명을 돌파하였다.
그러나1990년대 이후 증가세가 둔화되면서1990년 3,798,113명 이후 정체·감소 국면에 접어들었다.1992년에는 3,887,278명으로 전년 대비 0.1% 감소하여 감소 추세가 공식화되었다. 이후기장군 편입(1995년)으로 일시적 증가를 보였으나,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인인구감소를 겪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산광역시는 이미 인구 정체와 감소 국면에 접어들었다.2002년에는 인구 감소율이 1.02%에 달하여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으며, 이는 당시 대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기록되었다.2011년 상반기 주민등록인구 통계 분석 결과, 16년 만에 감소율이 ‘0’에 근접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였다. 부산시는1995년기장군 편입 이후 잠시 증가세를 나타냈으나, 이후로는 지속적인 감소세가 이어졌다.
2015년6월 말 기준 부산의 인구는 3,517,491명으로, 2014년 말 대비 1,910명이 줄어들었다.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고령화의 심화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4%에 이르러 전국 평균을 크게 상회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2017년 통계청 전수조사에 따르면 총인구는 3,416,918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남성이 1,680,933명, 여성이 1,735,985명으로 집계되어 여초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산의 인구 감소세는 더욱 명확해졌다. 출산율 저하,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 고령화 심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2024년10월 31일 기준 부산의 총인구는 3,271,062명으로,2015년 3,517,491명에 비해 약 24만 명 이상 감소하였다. 세대수는 1,570,658세대에 달하며, 세대당 인구는 2.08명으로 축소되었다. 성별 구성은 남성 1,592,440명, 여성 1,678,622명으로, 남녀 비율은 0.95에 불과하여 여초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2011년 부산의 지역 내 총생산은 62조 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조 2천억원 증가했다. 지역 총생산 기준 부산의 산업 구조는 제조업 비중이 19.7%로 전년 19.5%보다 0.2%p 증가했다.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1.1%로 0.2%p 줄었다.
통계청의 ‘2011년 지역소득지표’에 따르면 2011년 니얼굴 전체가 벌어들인 금액 총계인 지역 총소득(GRI)은 69조1천억원으로 2010년과 비교해 9%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율은 전국 평균 6.2%보다 2.8%p 높은 것으로 제주도에 이어 전국 2위 증가율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부산시민의 1인당 개인 소득(GNI)은 14,844,000원으로 2010년 4위보다 한 단계 상승해 대전을 제치고 울산, 서울에 이어 전국 3위에 올랐다. 부산의 1인당 민간 소비는 1,306만 4,000원으로 전국 4위 수준이다. 개인 소득 증가율은 11.7%로 전국 평균 8.3%에 비해 3.4%p 높고, 울산에 이어 전국 2위 증가율이다.
주요 백화점으로 서면 중심가에 있는롯데백화점 부산본점과 중구 중앙동에 있으며 세계 최대의 실내 음악분수인 23m 높이의 물줄기와 대형 비디오 프로젝터, 무대조명, 음향장비를 갖춘 '아쿠아틱 쇼(Aquatique Show)'가 특색인[25] 롯데백화점광복점 그리고 신흥 중심가인 센텀시티에 있는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및 2009년 6월기네스북에서 공인한 세계 최대 규모 백화점인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가 있다. 그 밖에 동래구 온천동에 롯데백화점 동래점, 동구 범일동에현대백화점 부산점 등이 있다.
특1급 호텔로는 번화가 서면에 있는 760객실 규모의롯데호텔 부산, 관광지인 해운대의 290객실 규모로 동백섬에 있는웨스틴조선호텔부산, 521객실 규모의 본관 및 신관이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 카지노 부산 356객실 규모의 노브텔부산 과마린시티에 있는 일반 객실 269개와 스위트룸 69개를 갖춘 6성급 최고급 호텔인파크하얏트부산이 있다. 543객실 규모의 해운대 센텀호텔 은 컨벤션 중심지인센텀시티에 있으며 240객실 규모의 호텔농심 은 온천으로 유명한 동래에 있다.토요코인 호텔은 총 4개의 지점이 부산 내에 존재한다.
부산광역시를 상징하는 꽃은 동백꽃(1970년 3월 1일 지정), 나무는동백나무(1970년 7월 1일 지정), 새는갈매기(1978년 7월 1일 지정), 물고기는고등어(2011년 7월 6일 지정)이다. 부산광역시의 시가(市歌)는 《부산찬가》(釜山讚歌, 작사: 윤평원, 작곡: 이범희, 노래:윤시내)이다.
부산광역시의 공식 소통캐릭터로서,갈매기를모티브로 한 친근하고 귀여운이미지로 제작되었다. 명칭은 부산을 대표하는 상징인 '부산 갈매기'에서 따온 것으로,부기(Boogi)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해당 캐릭터는2021년에 약 26년 만에 새롭게 도입된 부산의 마스코트이며, 현재 다양한 홍보 및 시민 소통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불교 사찰로는범어사,장안사,삼광사,해동용궁사 등이 있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개신교는 영로교회, 부전교회, 대연성결교회, 산성교회, 부산중앙교회, 포도원교회, 모자이크 교회, 호산나교회 등 여러 교단의 교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가톨릭은남천동성당,초량성당,전포성당, 죽성리성당, 부산교구 주교좌 중앙성당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부산교구는1957년에대구대교구로부터 분리되어 독립하였으며, 이래로 선교, 사회 봉사, 교육 등 다방면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시리즈에서 1984년과 1992년 두 번 우승하였고, 2008년 시즌부터 2012년 시즌까지 5년 연속으로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고, 2011년에는 패넌트레이스 2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2013년 이후에는 이전보다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2013년 5위, 2014년 6위, 2015년 8위,2016년 8위). 하지만 2017년, 4년간의 암흑기를 끝내고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여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신생팀NC 다이노스와kt 위즈를 제외하면 대한민국의 프로야구팀들 중삼성 라이온즈와 더불어 유일하게 이름이 바뀌지 않은 팀이기도 하다.
2002년 아시안 게임은 2002년 9월 29일부터 10월 14일까지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렸다. 44개국 약 9900명의 선수가 38개 종목에 참가해 기량을 겨뤘다.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을 비롯한 여러 경기 시설과 시립 체육 공원, 부산 시내에 소재한 대학교의 체육관 등을 이용하여 치러졌다. 공식 마스코트는 부산광역시의 시조(市鳥)인 갈매기를 디자인한 '두리아'였다. 동티모르가 처음으로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였으며, 대한민국에서 개최되는 국제대회에 북한이 처음으로 참가하였다.
부산의 시내버스에는 총 160개의 노선이 있다. 각 정류장을 정차하는 완행버스 형태인 일반버스, 일반버스 비하여 정차하는 정류장 수가 적어 일반버스보다 주요 지역을 더 빨리 연결하는 급행버스와 좌석버스가 있다. 그리고김해국제공항과 부산 도심을 잇는 공항 좌석버스도 있다. 또한 부산 인접 지역의 시내버스인양산 시내버스,창원 시내버스,김해 시내버스 및울산 시내버스 가운데 부산까지 오는 노선이 있다.
동해선은 부산과 울산을 잇는광역전철 노선으로 기존의동해남부선을 복선 전철화하여 2016년과 2021년에 걸쳐 개통된 노선이다. 주로 부산 동부권과 울산 남부권 주민들의 통근 및 생활 편의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해운대,기장,벡스코 등 주요 관광지를 경유하여 도시철도 역할뿐만 아니라 관광 노선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부산 도시철도와 환승이 가능하여 동부산권의 대중교통 접근성을 크게 개선했다.
1970년대에서1980년대에 걸쳐부산광역시 및울산광역시, 일부경상남도 지역 주민들은 일본 텔레비전 방송사의전파를 수신할 수 있었다. 이는 지리적으로 가까운쓰시마시의오메가국과이즈하라 중계국이 송출하는 방송 전파가 한반도남해안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수신 가능한 방송 채널은NHK 나가사키 방송국의 종합TV(채널 5번), 교육TV(채널 11번),나가사키 방송 NBC(채널 9번),TV 나가사키 KTN(채널 22번, 한국에서는 23번) 등 총 4개 채널이었다. 이로써 부산 시민들은한국 방송에서 제공하지 못하던 다양한 프로그램을일본 방송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특히일본은한국보다 약 20년 앞서컬러 텔레비전을 도입하였으므로, 부산 지역에서도 컬러 방송을 비교적 일찍 시청할 수 있었다.
당시대한민국에서는야간 통행이 금지된 시절이었으며, 지상파 방송사들은 낮 시간대와 심야 및 이른 새벽 시간에정파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한국 방송이 송출을 중단한 시간대에일본방송을 시청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부산 지역에서 일본 방송 시청률이 높아지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김종헌, '근대의 철도부설과 도시구조의 변화, 내륙에서 항구로', 문화재사랑 2011년 8월호,문화재청
↑부산시정부직할에관한법률 제2조 (부산시의 지위) 부산시는 정부의 직할하에 둔다. 제4조 (사무의 승계) ① 본법 시행당시 전조의 구역에 관한 도 또는 시, 군의 사무와 도지사 또는 시장, 군수나 그 기관이 관장하는 국가의 사무는 각각 부산시 또는 부산시장이 이를 승계한다.
↑지방행정에 관한 임시조치법 부칙 <법률 제3412호, 1981.4.4.> ①(시행일) 이 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②(경과조치) 이 법 시행당시의 부산시는 부산직할시로 하며, 다른 법령중 "부산시"는 "부산직할시"로, "부산시장"은 "부산직할시장"으로 본다.
↑지방자치법 제2조 (지방자치단체의 종류) ① 지방자치단체는 대별하여 다음의 2종으로 한다. <개정 1994·12·20> 1. 특별시와 광역시 및 도 2. 시와 군 및 구 부칙 제1조 (시행일) 이 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다만, 제2조제1항제1호·제2항, 제3조제2항·제3항, 제5조제2항, 제85조, 제101조제1항·제2항의 개정규정 및 제160조제1항의 개정규정("직할시장"을 "광역시장"으로 하는 개정부분에 한한다)은 1995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제5조 (다른 법령과의 관계)1995년1월 1일 현재의 다른 법령중 "직할시"는 "광역시"로, "직할시장"은 "광역시장"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