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봉가(프랑스어:Maison de Bourbon,스페인어:Casa de Borbón)는카페 왕조의 한 계열로루이 9세의 마지막 아들 클레르몽의 백작로베르 드 프랑스(Robert de France)로부터 시작되었다. 부르봉(Bourbon)의 어원은 켈트어로 ‘진흙(Borvo 혹은 Borbo)’을 뜻한다.
부르봉 왕가는루이 9세의 6번째 이자 막내아들인로베르 드 프랑스(Robert de France)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샤로래(프랑스어:Charolais)의 영주 장 드 부르고뉴(프랑스어:Jean de Bourgogne)와 아니에스 드 부르봉(프랑스어:Agnès de Bourbon)의 외동딸 베아트리스(프랑스어:Béatrice)와 결혼을 함으로써 부르봉(프랑스어:Bourbon)의 영주가 되었다.
부르봉 영지는1327년 부르봉가의 루이 1세(프랑스어:Louis Ier de Bourbon)를 위하여 공작령으로 승격되었다. 부르봉가의 루이 2세(프랑스어:Louis II de Bourbon) (1337-1410)는1371년 안 도베르뉴(프랑스어:Anne d'Auvergne)와 결혼을 하였다. 이 결혼으로 영지를 확장시켰다.
부르봉 왕조는 프랑스에서1589년부터 1791년까지 그리고 1814년부터1830년까지 지속되었다.에스파냐에서는 1701년부터 통치하고 있는데,1874년부터1875년까지,1931년부터1975년까지는 공화정으로 인하여 다른 나라로 도피하였다. 그 뒤후안 카를로스 1세가입헌 군주제에스파냐의왕으로 즉위하였다. 이외에도 부르봉 왕가는 나바르, 프랑스, 스페인, 양시칠리아, 룩셈부르크, 안도라, 루카, 파르마와 같이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스렸고, 여러 분파로 나뉘었다.
페르난도 6세(Fernando VI) (1746년 ~ 1759년)펠리페 5세의 넷째 아들. 이탈리아 출신 가수인 카를로 브로스키(1705~1782) 에게 국정을 맡김
카를로스 3세(Carlos III) (1759년 ~ 1788년)페르난도 6세의 이복동생. 시칠리아,나폴리의 왕.미국독립전쟁에서 식민지군을 지원하고 총신인 아란다 백작에게 국사를 맡김
카를로스 4세(Carlos IV) (1788년 ~ 1808년)카를로스3세의 둘째아들. 왕비의 애인인 미누엘 고도이에게 국사를맡기고 취미인 사냥을즐김.1808년 페르난도7세에 의해 쫓겨났다
페르난도 7세(Fernando VII) (1808년, 1813년 ~ 1833년)카를로스4세의 장남.1808년 백성들의 반란을 이용해 고도이,카를로스4세와 왕비를 몰아내고 즉위.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위협으로 왕위에서 내려왔다.
이사벨 2세(Isabel II) (1833년 ~ 1868년)페르난도7세의 딸.1700년대부터 따라온 살리카법에 의해서는 즉위할 수 없었으나,아버지인 페르난도7세가 이사벨2세가 태어나기 전에 살리카법을 없애버려서 즉위할 수 있게 됐다.이사벨2세가 즉위하자,페르난도7세의 동생인 카를로스는 스스로를 카를로스5세라 칭하였다.
아마데오 1세 (1869~1875) (이탈리아 북부 사부아왕가) 1868년 프림장군이 명예혁명으로 이사벨2세를 몰아내자,이탈리아통일 주역중 1명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차남 아마데오를 왕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프림장군이 암살되고 공화주의자들의 거센반발로 1875년 스스로 물러났다.
알폰소 12세(Alfonso XII) (1875년 ~ 1885년)이사벨2세의 아들이다.알폰소12세가 즉위하자 에스파냐의 경제가 좋아져 조용한 시기였으나 1885년 결핵으로 28세에 사망한다.
알폰소 13세(Alfonso XIII) (1886년 ~ 1931년)알폰소12세의 아들.태어나자마자 왕이 됐다. 1931년 스페인 공화국 출범으로 파리 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