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는르네상스 시대의성곽[1][2]과 보존 상태가 아주 뛰어난 역사 지구를 통해 '예술의 도시'(Città d'arte)로 알려져 있다. 역사 지구에는 여러 건축물과 기념물들이 있는데 이 중에는 기원이 서기 1세기까지 올라가는안피테아트로 광장과 1300년대의 것으로 추정하는 높이 45-미터-tall (150 ft)의구이니기 탑 등이 있다.[3][4]
로마인들에게 루카는 '루카'(Luca)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최근 연구를 통해, 루카 (Lucca)라는 명칭은 '신성한 숲'([[라틴어: lucus), '베어내는'(라틴어: lucare), '빛나는 공간'(leuk, 원시유럽집단이 사용한 용어) 등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결과가 제시되었다. 이러한 기원은 공간을 밝히기 위해 벌림을 한 숲이 우거진 지대를 나타내거나 숲이 우거진 곳 한 가운데에 있는세르키오섬이라는하중도의 개간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6][7]
루카는 원래리구리아인들의 취락이었으나 나중에에트루리아인들이 차지했으며 역사가리비우스에 따르면 기원전 180년에로마 제국이식민지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루카의 중심가에 로마의 직교식 도시계획이 보존되어 있으며성벽·포룸(광장)·원형극장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56년에 로마의 장군카이사르와폼페이우스,크라수스가 모여삼두 정치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루카 회담을 벌인 장소이기도 하다.기독교가 퍼질 때 일찍이주교관구가 된 것으로 보이며, 476년 이후고트족,동로마 제국,롬바르드족이 차례로 지배한 뒤 6세기에롬바르드 공작령의 수도가 되었다. 루카의백작이 토스카나후작이 된 9, 10세기에 루카는 토스카나 제1의 도시였다.카노사 가문이 후작의 영지를 계승할 때 토스카나의 중심지는피렌체로 바뀌었지만, 루카는 1118년 경제적 자유의 특허를 받았으며, 그 후 바로자치시가 수립된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이웃 도시들이나 야심에 찬 귀족 가문들과 수많은 분쟁을 겪으면서도 루카는 1799년 프랑스에 함락될 때까지 독립을 유지했다(루카 공화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