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1월의 총선거에서는 농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공산당과 소련의 부정선거로 이듬해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12] 1947년 12월 30일에소련군에 의해 최후의 국왕미하이 1세가 폐위되면서군주제도 폐지하고, 1948년공산주의 국가인루마니아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65년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집권하여 1989년까지독재 정치를 실시하였다. 차우셰스쿠는 소련의 내정간섭을 비판하며 소련의 위성국가이기를 거부한다는 자주노선을 내세워 동·서 양(兩)진영의 군사 블록 해체를 호소하는 등 전방위(全方位) 외교를 전개하여 외교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1978년중화인민공화국과 반소노선 구축을 도모하다가 소련과 극한적으로 대립하는 사태로까지 나아갔는데 '파체파 망명사건'으로 정치적인 타격을 입었다.[12]
그러나, 그는 국내적으로는 테러와 독재로 일관하며, 인민을친위대와도청으로 감시하고 억압하는 철권독재를 하였다.[12] 차우셰스쿠는경제 정책에서도 무능하여 농업국인 루마니아를 무리하게공업국가로 바꾸는 과정에서 외채가 110억 달러에 육박하자 수입을 중단하고 수출로 일관하는 극단적 무역정책을 취했다. 그 결과, 인민들이 생필품 부족으로 고통받게 되었고, 원자재와 기계부속품 부족으로 공장들의 운영이 중단되면서 루마니아 경제는 극심한 침체에 빠졌다.
1989년 12월 17일헝가리와의 국경지대인 티미쇼아라에서 민주화를 지도하던 헝가리계 개신교 목사 라슬로 퇴게시 목사를 구속하는 것에 대한 항의 시위가 있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12월 21일부쿠레슈티 시민들도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자, 정부는 무차별적인 사격으로 탄압했다. 그러나, 12월 22일 차우셰스쿠가 세쿠리타테만 편애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군대가 등을 돌려 시민 편에 합세함으로써차우셰스쿠의친위대(세쿠리타테)는 타도당했다. 차우셰스쿠는 헬리콥터로 북한으로의 탈출을 껄끄럽게 여기던 헬기 조종사는 고공 사격을 받는다고 거짓말해서 결국 차우셰스쿠는 차를 세웠는데, 첫 번째 차는 엔진이 타버렸다고 거짓말하고, 두번째 차는 농업박물관으로 차우세스쿠 부부를 데려다주었다. 그곳의 농부는 지켜준다고 거짓말 하고, 방에다가 가두어 경찰에게 밀고한 뒤, 4일동안 감금하고, 인근 초등학교에서 재판을 받은 뒤, 1989년 12월 25일 오후 5시 30분에 초등학교 벽에서 150여 발의 총탄을 맞고 사형당했다. 1990년 1월 1일, 루마니아는 민주화 되었다. 그 뒤에도 수많은 폭동과 시위를 거쳐 1996년 11월, 시민의회 후보인 콘스탄티네스쿠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루마니아는 공산정권이 무너진 지 7년 만에 민주 인사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12] 루마니아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의 사형 집행을 끝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