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무인도로 남아 있었던 이 섬은17세기에 이르러 프랑스인들이 정착해식민지화하면서 사람이 살게 되었다. 섬 특유의 열대기후로설탕 등의플랜테이션 산업이 발달하였으며 그 영향으로 동아프리카 노예들이나 말레이인, 베트남인, 중국인, 인도인 등의 이주민 노동자들도 정착하게 되었다. 오늘날 레위니옹 인구의 대다수는 혼혈인으로서 주 언어 역시레위니옹 크레올이지만프랑스어의 경우 단독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1946년부터프랑스의 레지옹으로 승격되어 프랑스 본토의 레지옹과 동일한 지위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유럽연합과유로존의최외곽 지역으로도 취급되고 있으며,[3]해외 프랑스의 또다른 속령인마요트와 함께남반구의 유이한 유로존 지역으로 남아 있다. 한편 프랑스는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하여 레위니옹에 대규모 군병력을 주둔 운영하고 있다.
17세기 중반부터프랑스 동인도 회사가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선박들의 중간 기착지를 세우면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을 수입해 커피·설탕 농장에서 일을 시켰으며,1848년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인도·중국·아프리카에서 계약노동자들을 데리고 왔다.1869년에수에즈 운하가 개통하여 중계항으로서의 역할은 쇠퇴하였다.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1946년에 프랑스 해외주가 되었다.1973년에마다가스카르에서 프랑스 군대 병력이 철수해 들어오면서인도양 주둔 프랑스군 본부가 들어섰다.2003년에 프랑스의해외 레지옹이 되었다.
프랑스는1963년부터1982년까지 당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레위니옹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본토 지방의 인구 감소분을 메운다는 발상으로 해외영토 이민개발국(BUMIDOM) 주도 아래 레위니옹 어린이 총 1,615명을 프랑스 시골로 이주시켜 중산층 가정의 하인으로 쓰거나 농장에서 일을 시키는 국가 범죄를 저질렀다.[4]
이 섬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것은17세기 중반에 프랑스 이주민들이 정착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동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사와 농장에서 일을 시켰으며, 노예제 폐지 후에는인도,중국,아프리카에서 계약노동자들을 수입했다.
혼혈인크리올이 전체 인구의 64%를 차지하고,인도인이 28%로 두번째로 많으며, 그 밖에 소수의유럽인과중국인 등이 있다. 주민 다수를 점하는크리올과 경제적으로 윤택한유럽인,인도인 사이의 빈부격차가 크다.
가장 인구가 많은 광역권은생드니 (Saint-Denis)이며 2020년 기준 인구는 315,080명에 달한다. 섬 북부의 6개 코뮌 (생드니,생트마리,라포세시옹,생트쉬잔,생탕드레,브라스파농)을 아우르고 있다.[5] 나머지 두 광역권은생피에르르탕퐁 (Saint-Pierre-Le Tampon),생폴 (Saint-Paul) 순이다.[6]
공용어는프랑스어지만레위니옹 크리올이 주로 쓰인다. 크레올은 일상적인 언어로서 흔히 사용되며, 행정업무나 교육 등의 분야에서는 프랑스어가 공식적으로 쓰인다.[7] 중국계 이민자들에 의해중국어 (표준중국어,하카어,광둥어)도 가끔 사용되며, 코모로계 이민자들이코모로어를,마다가스카르나마요트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말라가시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타밀어,구자라트어,힌두어 등 인도 이민자들의 언어와 무슬림들이 사용하는아랍어도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광둥어, 아랍어, 타밀어를 보조언어로 쓰기도 한다.[8]
레위니옹의 경제는 전적으로 설탕 산업에 의지하고 있는데,설탕은 이 섬 전체 수출액의 약 75%를 차지하며,럼주와 당밀 같은 설탕부산물이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경작지에서는사탕수수를 재배하지만, 바닐라, 콩, 그 밖의 과일, 채소 등도 일부 경작한다. 압축시설을 갖추고 있는 12개 정도의 대규모 농장에서 사탕수수를 대량 재배하며, 이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협동조합 형태로 관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