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11월 혁명 또는11월 혁명(독일어:Novemberrevolution)은 독일에서1918년11월 7일에 발생한혁명이다. 이 혁명으로독일 제국 제정이 붕괴하고 의회민주주의적인공화국이 탄생했다.[1] 혁명의 원인은 4년 넘게 길어지는 전쟁(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극도의 부담이었는데, 이전의독일 제국의 패배에 대한 만연된 충격, 그리고 사회적인 긴장상태와 권력 엘리트들에 의한 전민주주의적 구조가 이러한 부담을 촉발시켰다.
직접적인 기폭제는1918년 여름무렵이었다. 이 무렵, 독일의 패전이 거의 확실해졌고, 10월초에는막스 폰 바덴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성립되어 휴전교섭을 진행했다. 이런상황에서 10월 말에 해군지도부가 실패할 것이 분명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에 수병들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구하기로 결정하고11월 3일킬 항구에서 처음 봉기를 일으켰다. 수병들에 이어 노동자들도 호응해 봉기에 가담하면서 '노동자·병사 평의회'가 구성되었고, 이 기구가11월 4일킬의 실권을 장악했다.(킬 군항의 반란) 혁명은 독일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어 곳곳에서 병사와 수병, 노동자들이 만든 급진적인 '노동자·병사 평의회'가 기존의 지방 정부를 대체했다.[1]11월 7일바이에른 지역에서는사회주의 공화국 수립이 선포됐다.[2]
베를린에서도 혁명의 열기에 휩싸였는데, 이때사회민주당(SPD)은 무장봉기에 반대했다. 결국11월 9일 황제빌헬름 2세가네덜란드로 망명하면서 제정이 무너졌고, 이와 함께막스 폰 바덴 총리가 사임하면서 사회민주당의 지도자인프리드리히 에베르트에게 임시정부 수립을 위촉했다. 에베르트는 사민당 뿐만 아닌 독립사민당에도 내각구성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독립사민당이 에베르트의 제안을 수락함으로써11월 9일 당일 공화국이 선포되었다.[1]
혁명으로 제정이 붕괴되고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정부의 수립은 난관에 부딪혔다. 의회주의자였던 에베르트는 제헌의회의 조속한 소집을 추진했는데, 여기서카를 리프크네히트와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끄는스파르타쿠스단이 에베르트의의회주의노선에 반대하면서 반정부투쟁을 전개하였다.스파르타쿠스단은 독립사민당에서 떨어져 나와1919년1월 1일,독일 공산당(KPD)를 창설하였다. 이어 스파르타쿠스단은 베를린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와 사민당(SPD)지도부는 내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기존의 제정시절 관료들의 권력을 박탈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새로운 민주주의적인 관계 안에서 이용하려 했었다. 그래서 사민당(SPD)지도부는 독일 국방사령부와 연합하여 혁명의 과격화를 저지하고자 했다. 이때 사민당의구스타프 노스케가 이끄는 의용군(자유군단)에 의해스파르타쿠스단의 대중시위,봉기는 가혹하게 탄압되고 스파르타쿠스단의 2명의 지도자카를 리프크네히트와로자 룩셈부르크가 체포되어 살해되었다. 이로써 과격 혁명노선은 약화되어1919년8월 11일에 혁명은 새로운바이마르 헌법의 채택과 함께 형식적인 종결을 맞게 되었다.[1][3]
Homepage from Kiel Interview with one of the leaders of the mutiny in Kiel: Lothar Popp; CV of Lothar Popp; interviews with other contemporary witnesses; evaluations; time-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