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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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1차 석유 파동(1973년) •영국병으로 인한 경제 침체(1970년대) •제2차 석유 파동(1978년) •영국의 대처리즘 정책(1979년)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실시(1981년) •검은 토요일(1983년) •검은 월요일(1987년) •소련의 붕괴(1991년) •아시아 금융 위기(199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7년) •2008년 세계 금융 위기(2008년) •그리스 국가 부채 위기(2009년) •유럽 국가 부채 위기(2010년) •월 가를 점거하라(2011년) •노란 조끼 운동(2018년) |
관련 문헌 •미제스,《자유주의》(1927년) •하이에크,《노예의 길》(1943년) •미제스,《관료제》(1944년) •하이에크,《개인주의와 경제 질서》(1948년) •미제스,《인간행동론》(1949년) •미제스,《화폐와 신용의 이론》(1953년) •미제스,《자본주의 정신과 반자본주의 심리》(1956년) •프리드먼,《소비 함수 이론》(1957년) •하이에크,《자유의 구조》(1960년) •뷰캐넌,《재정 이론과 정치경제》(1960년) •프리드먼,《통화 안정을 위한 프로그램》(1960년) •미제스,《경제과학의 궁극적 기초》(1962년) •뷰캐넌,《동의의 산술》(1962년) •프리드먼,《자본주의와 자유》(1962년) •프리드먼,《통화 정책의 역할》(1968년) •미제스,《오스트리아 학파의 경기변동 이론》(1969년) •뷰캐넌,《지출과 선택》(1969년) •프리드먼,《통화 이론의 반혁명》(1970년) •프리드먼,《인플레이션과 실업》(1977년) •하이에크,《법, 입법 그리고 자유》(1979년) •프리드먼,《선택할 자유》(1980년) •뷰캐넌,《자유, 시장 그리고 국가》(1985년) •하이에크,《치명적 자만》(1988년) •프리드먼,《경제의 자유, 인간의 자유, 정치의 자유》(1992년) •그린스펀,《격동의 시대: 신세계에서의 모험》(2007년) •그린스펀,《미국 자본주의의 역사》(2018년) |
주요 인물 |

대처주의(Thatcherism,대처리즘)는영국 경제의 재생을 꾀한마거릿 대처 수상의 사회 경제 정책의 총칭이다.1979년 영국 선거에서보수당의 승리로 집권한 대처 수상은노동당 정부가 고수해 왔던 각종국유화와 복지정책 등을 포기하고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중시하는통화주의(monetarism)에 입각한 강력한 경제개혁을 추진했는데, 이러한 대처의 정책을 '대처주의'라 하며, 영국식신자유주의,보수주의,반공주의를 옹호한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가렛 대처가 총리로 취임하기 전 영국은 근로자들의 잦은 파업과 과도한 복지로 인한 재정 악화, 근로의욕 저하등 소위영국병이라고 불리는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에 신음했다.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경제 전부문에 걸친 경제개혁이 필요했다.
대처주의의 골자는 재정지출 삭감,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와 경쟁 촉진 등으로 압축된다.
우파 진영에서는 공기업 민영화로 대표되는 대처주의는 영국병을 치유하고 영국을 다시 번영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재정수입 증대, 노조 약화, 경영 효율성 향상, 자본시장 발전 등에 기여했다. 대처 이후1997년 집권한 노동당 정부가 10년동안 연 3%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영국의 경제성장 신화를 이룩한 원천은 사실상 대처주의의 성과라고도 말한다.[1] 국영 기업이 많았던 이유로는, 식민지들에 설치된 국영 기업들의 다수 존재, 식민지들로부터의 자원 유입과 가공업 발달, 국제 교역을 통제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 필요 등이었으며, 이로 인한 결과는, 방만한 경영 팽창과 도덕적 해이, 식민지 독립 운동의 식민 모국 위협, 서유럽 인접국들간의 통상과 외환결제 상의 마찰 등이었다
좌파 진영에서는 대처가 시장 원리만을 강조함으로써 사회복지를 후퇴시켰고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갈등을 심화시켰으며 영국을 돈만 아는 무자비한 사회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제조업보다 금융업에 초점을 맞추고 누구든 영국에 투자만 하면 환영한다는 노선을 취하면서제조업의 쇠퇴를 불러왔다. 대처 정부는 제조업의 빈 자리를 서비스업이 메울 것이라고 했지만 제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구제받지 못했다.
절대적 빈곤율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가구의 비율을 말함
영국에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대처세대' 또는 '대처의 아이들'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들은 대처수상 집권하에서 기초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10대들로 정치에 대한 무관심, 흡연과알코올 의존, 비합리적 경향 등을 특징으로 하는데, 그 이면에는 고실업으로 인한 자신들의 불확실한 미래와 급격히 증가한 부모의 이혼과 가족해체 등의 원인이 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