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왕국(보크몰:Kongeriket Norge 콩에리케 노르게[*],뉘노르스크:Kongeriket Noreg 콩에리케 노레그[*]), 약칭노르웨이(보크몰:Norge 노르게[*], )는북유럽스칸디나비아 나라이다. 수도는오슬로이며, 공용어는노르웨이어이다. 주력 산업은어업,석유 산업 및서비스업이며 전세계에서민주주의 지수가 가장 높으며취약국가지수에서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청렴 선진국이기도 하다.
노르웨이는 북이라는 뜻의 nor, 길이라는 뜻의 way가 합쳐진 말로,북극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 있다.스칸디나비아반도의 서쪽 부분,얀마옌섬,스발바르 제도, 그리고부베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385,207[6] km2이며 인구는 약 490만 명 정도이다.유럽에서두 번째로인구 밀도가 작은 나라다. 나라의 대부분이 동쪽의스웨덴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노르웨이의 북쪽 지역은 남쪽은핀란드, 동쪽은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쪽의스카게라크 해협의 건너편에는덴마크가 있다.수도는오슬로다.북극해와바렌츠해와 접하고 있는 해안선은피오르로 유명하며, 인구가 많은 도시들이 분포해 있다.
노르웨이는석유,천연 가스,석탄,목재,우라늄, 석회석, 유황, 수은 등이 풍부하며, 지형을 이용한 대량의수력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원 매장량은 엄청나 2011년 기준으로 세계 3위의 천연 가스, 5위의 석유 수출국이기도 하며, 관련 산업이GDP의 2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자원에 힘입은 노르웨이 국부 펀드는 세계에서 제일 크며, 규모는 현재 한화 650조에 달한다. 세계 주식시장의 1%를 보유하고 있다.[7] 무역은 항상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2011년 기준으로 흑자 규모는 한국의 2배에 달한다.[8] 석유가 발견되기 전인 1970년에는 스웨덴의 총 경제 규모의 1/3밖에 되지 않았으나 결국 자원에 힘입어 2009년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2배에 달하는 옛 종주국 스웨덴을 총 경제력마저 추월하였다.[9]
2001년부터2006년, 그리고2009년부터 가장 최근의 통계까지 노르웨이는인간 개발 지수에서 세계 정상을 기록한 대표적 선진국이다.2010년 기준으로 연간 근로시간은 약 1,400시간으로 주당 27시간 정도이며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국민 중 하나다.최저임금은 산업마다 다르나 연간 31만 크로네(약 6,100만 원)정도며, 2010년 기준으로 대졸자 초봉 평균은 42만 크로네다.[10][11]
노르웨이는 남북으로는 약 100 km로 길게 뻗쳐 있으나 동서는 가늘며, 가장 좁은 곳이 몇 m 밖에 안 되는 특이한 모양이다. 국토의 72%는 빙하의침식을 받은 평탄한 꼭대기를 지닌 산지이다.삼림이 24%를 차지하며 경지는 매우 적다. 해발 2,000 m 이상에는만년설이나 빙하가 지금도 남아 있다.
스칸디나비아산맥은 북부·중부에서는스웨덴과의 국경으로 되어 있으나, 남부는 노르웨이 안에 펼쳐져 있으며, 이곳이 가장 높고요아정(2,452 m) 폭도 가장 넓다. 곧요텐헤임(2,452 m),요스테달스브렌(2,083 m) 및도브레페르(2,286 m) 등의 산이 있고빙모(氷帽)와빙하가 있다. 서해안은 거대한파도지형이 나타나는데 인근에 5만 개 이상의 섬이 있고 2,500 km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
노르웨이는 거의 대부분이 상당히 높은 지대여서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선사 시대 이후의 빙하 지형이 남아 있기도 하다. 베르겐의 북쪽에 있는송네 피오르는 안쪽까지의 길이가 200 km나 되며, 100 km까지도 나비가 몇 킬로미터나 된다. 이피오르는 양쪽 육지가 가파른 절벽이다.[13]
기후는한대성 기후이며,12월에는 오후 3시만 되어도 일몰하고 기온은 영하 15℃ 이하이다. 하지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겨울 기온이 떨어지고 강우량이 적다. 눈이 자주 오는 편이며,북극처럼백야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난류인멕시코 만류가 서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흐르므로, 높은 위도에 비하면 온도가 낮지 않고 강우량이 많다. 예를 들면 남부 서해안의베르겐은 겨울의 월평균 기온이 1.3∼1.5℃이며, 여름에는 약 15℃ , 위도에 비하여 비가 많이 오는 편이다. 1년 강우량은 1,900 mm에 이른다. 북쪽일수록 강우량은 적어져 북부에서는 연강우량이 400 mm 이하이다.[14]
Oslo-Blindern (Köppen Dfb) (1961–1990), Norway의 기후
현재의 노르웨이 땅에 사람이 거주한 흔적은스칸디나비아에서 내륙 빙하가 녹기 시작한 선사 시대이다. 1만 년 전 오늘날노르웨이인들의 조상은 순록을 비롯한 동물들을 사냥하며 북쪽으로 전진했다. 인류 활동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외스트폴주의 남동쪽에 위치한 언덕에서 발견되었다.
9세기에서11세기까지 노르웨이의바이킹은 대대적인 해상 원정을 벌였다.노르웨이인의 후손이아이슬란드에 뿌리를 내렸고 한때는 지금의캐나다의 일부까지 이르렀다. 1000년 무렵 바이킹은 그린란드와 미국을 발견하였고,기독교가 노르웨이에 들어갔다. 노르웨이 농민의 작은 집단이 차차 큰 정치적, 군사적 지역으로 모였다. 1164년 최초의 국왕을 맞이했고,10세기 초하랄 1세가 등장하여 국가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였다.1015년올라프 2세 성왕이 노르웨이 전체를 완전히 통일하고기독교로 개종시켰다.
2세기에 걸친 바이킹의 습격은, 994년 왕이었던올라프 1세가기독교를 승인한 이후로 점차 줄어들었다. 13세기, 내전이 끝나고, 노르웨이의 영향력은브리튼 제도와아이슬란드,그린란드까지 뻗어져 나갔다.12세기에 접어들자 왕위를 둘러싼 내부항쟁이 벌어졌다. 1217∼1263년에는아이슬란드와그린란드를 지배하며 노르웨이의 국력은 그 절정에 이르렀다.
15세기부터는 문화적으로도 개화 시대에 접어들었으나 사회적으로는 혼란기에 해당되었다. 스웨덴과 동맹,한자동맹 상인의 활약에 의한 노르웨이의 경제의 쇠퇴, 덴마크와의 400년 이상에 걸친 동맹 등의 시대가 있었다. 더구나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전란의 시대를 걸쳐서 새로운 시대에 들어갔다.
킬 조약에 의해 노르웨이가 덴마크에게 독립한 후인 1814년,노르웨이인들은 노르웨이가 스웨덴에할양되는 것에 반대했고,노르웨이 왕국 (1814년)을 수립하고 새로운 헌법인노르웨이 헌법을 채택했다. 이러한 노르웨이에 대항하여 스웨덴은 노르웨이와 전쟁을 했고, 결국 노르웨이가스웨덴-노르웨이 연합에 들어와 스웨덴의 왕이었던카를 14세를 섬기는 대신, 노르웨이의 독자적인 헌법을 유지시켜 주기로 합의했다. 19세기 내내 일어난 노르웨이의 독립에 대한 움직임은, 결국 1905년 노르웨이의 독립을 일구어 내고,스웨덴-노르웨이 연합의 종결을 이끌어냈다. 1866년에서 1873년에 이르기까지는 제1기의 대규모 이민 시대로서 미국에 약 10만 명, 그리고 1900년∼1910년 제2기의 대규모 이민 시대로서 20만 명이 바다를 건너갔다.
비록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노르웨이는 중립국으로 남았지만, 전쟁 중에 많은 선박들이 파괴되었다.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노르웨이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나치 독일에 의해 5년 동안 점령당했다. 이때 독일에 협조했던나치인비드쿤 크비슬링은 전후에반역죄로총살당했다.[20] 인류학자헤이에르달은 노르웨이가 나치독일의 지배를 받을 때에저항운동을 했다. 기행문 《콘티키》에 따르면 헤이에르달은 자신을 잡으러 온 나치 독일군과권총으로 총격을 벌이면서 몸을 피했다고 한다.
1949년, 노르웨이는 중립을 끝내고NATO의 창립멤버가 되었다. 1960년대 후반 인근 바다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된 뒤로, 노르웨이의 경제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1972년과 1994년,유럽 연합 가입 총선거가 치러졌지만, 두 번 모두 가입이 무산되었다.
전 국토의 겨우 3% 정도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며 산업인구의 11.9%가 제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따라서 식량은 자급자족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어업은 활발하여대구·청어·정어리 등의 어획고는 세계 수위를 다툰다. 이 나라에서 발달한 원양 포경업은 최근에는 쇠퇴해 버렸지만, 북부뢰딩엔에 포경기지가 있다.
1971년부터북해 유전이 개발되어 1975년산유국 대열에 진입하였으며 수력발전과 어류 및 산림·광물자원이 풍부하다. 이 나라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외국 무역을 높이는 방법 이외에는 없으며, 현재 세계에서 제7위의 무역액을 보여주고 있다. 노르웨이의 상선보유는 세계 제4위로서 세계 제9위의 해운 수입을 올리고 있어 이 나라의 수입 초과에 대한 큰 뒷받침이 되고 있다.[22]
노르웨이는 석유가 발견되기 전인 1970년 이전엔 그다지 부유한 나라가 아니었다.스웨덴이 1960~1970년대에는 노르웨이보다 월등히 부유했으나 이제는 역전되어스웨덴 크로나가노르웨이 크로네의 환율에 비해 약 85% 수준이고, 많은 스웨덴 젊은이를 포함한 스웨덴 인들이 노르웨이에 일자리를 찾아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 10만 달러까지 치솟았으나, 2015년부터 저유가시대 때문에 떨어졌다. 2016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은 약 69,700달러이다.
국민 1인당의 수출입액은베네룩스 다음가는 세계의 준정상급에 속하고 있다.[21] 국내 교통은 육상, 해상 양면에 있어서 이 나라 지형이 남북으로 길 뿐 아니라 산과피오르의 장애 때문에 운송에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 철도(태반이 국영임)의 건설은 의욕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역시 수상 교통의 역할이 크며, 이 나라의 대도시는 항구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또 서해안을 따라 북부까지 도시가 있는데, 함메르페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서 무역의 중심이며, 특히 어획물의 거래가 성하다. 스웨덴의 키루나 등지에서 나는 철광석은 나르비크항을 통해 수출된다. 나르비크는 1880년대에 철도가 시설된 당시에는 인구가 겨우 50명이었으나, 100여년 동안에 약 19,000명의 도시가 되었다.[23]
노르웨이 주민은 금발과 파란 눈을 지니며 키가 큰 사람이 많다. 평균 수명은 남자는 73.6세이며, 여자는 80.3세이다. 그리고 랩(Lapp)족은 북부 노르웨이에만 살며 용모, 언어, 문화가 모두 이색적이다. 노르웨이 언어는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언어와 관련이 있다. 지방어에 의해1850년 새로운 말이 하나 만들어졌는데, 그 이전의 한 공용어와 둘이 현재 쓰이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의 생활수준은 매우 높으며 주민의 절대다수는루터교 신자들이다.[20] 노르웨이 인구 수는 2010년 410만 명인데 이보다 많은 수가 미국에 살고 있는데, 미국 내 노르웨이 이민자 인구는 2010년에 470만 명이었다.
노르웨이는종교개혁 전통에 따라루터교 국가였다. 2016년 12월 31일까지는 노르웨이의 국교는루터교였으나, 국교법 개정에 따라 2017년 1월 1일부터 루터교는 국교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한다. 2016년 12월 31일까지는루터교 의식(Ritual)에 따라교회에서 왕의 즉위식부터세례,결혼,장례 등이 다 행해졌다.개신교 국가이지만이슬람,불교,로마 가톨릭 등의종교가 다 보장된다.부활절,성령강림주일과성탄절처럼 기독교교회력에 나오는 절기들은공휴일로 인정된다.
헤비 메탈의 하위 장르인블랙 메탈이 1990년대 노르웨이에서 크게 발전했다. 초기 블랙 메탈을 이끈 밴드로는엠페러,다크스론,고르고로스,메이헴,버줌 등이 있으며 당시 블랙 메탈과 관련된 교회 방화나 살인 사건 등으로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현재인슬레이브드,딤무 보거 등은 블랙 메탈을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킨 밴드로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