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노동은선사시대 이래 계속되어 온 것이나 임금을 받고 노동을 제공하는임금 노동자계급의 출현은산업화 이후의 일이다. 노동자는기업가와 더불어 산업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는산업혁명 초기부터 기업가에 비해 매우 불리한 사회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이후자본가와국가에 대하여 집단적인조직체를 통하여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고자 하였다.[1]
시드니 웹(Sidney Webb)에 의하면 노동조합의 정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노동 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 단체"이다. 노동조합은노동운동의 조직적인 기초가 되며, 직업·기업·산업별로 조직된다.[2]
시드니 웹의 정의에서 암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거의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계급분화에 의한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질서에 도전하기 보다는 이를 인정하면서 협상을 통해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고자 한다. 그러나마르크스주의 등에서는 노동조합이자본가와 대립하는 노동자 진영의 주요 조직으로 파악한다.[3]
산업혁명 이후 기계에 밀려 직조공과 같은 숙련 기술자들이 사라진 대신 비숙련 노동자들이 노동인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19세기 영국을 비롯한 산업화 국가의 노동자들은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근로하였으나 이들은 아무런 정치적 발언권이 없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게 되었다. 초기 노동조합 활동은 자본가와 국가의 탄압을 받았으며 법률적으로 엄금되었다. 최초의 노동조합은 17세기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결성한 우애조합, 공제조합 등이었다. 영국 의회는 1799년 단결금지법을 제정하여 노동조합의 결성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이들 조직은 비밀 결사의 형태를 띠었다. 초기 노동조합의 주요 활동은 일정한 조합비를 걷었다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급하는 일종의 상호부조였다.[4]
미국에서는 19세기 여러 단위 노동조합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자본가들은 최악의 경우 노동조합 간부를 청부살인하는 등 악랄하고 극심한 탄압을 하였으나 노동운동의 발전을 막지는 못하였다. 1869년 결성된노동자 기사단은 후일세계산업노동자로 개칭하였으며 이 단체의마더 존스와 같은 노동운동가들은 미국 노동운동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5]
1886년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는 8만명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미시건 거리에서 파업집회를 가졌다.19세기 미국 노동자들은 10-12시간의 장시간 노동, 저임금, 임금삭감으로 노동인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석유사업 및 탄광사업가인 록펠러가 고용주인 슈일킬 탄광의노동자들이 자신들의생존권과 관련된 문제인 임금삭감에 항의하다가 주동자들이교수형으로 처형되는 일도 있었다.[6] 즉,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파업은 노동자들이 노동인권을 존중받기 위한 단결이었다. 이 날노동자들은평화적인시위를 하였으나 경찰은 이들을 폭도로 몰아 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발포가 있었고 다수의 노동자들이 희생되었다. 당시 미국의 보수언론들도 미국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빨갱이 딱지 붙이기 곧공산주의 딱지를 붙이기를 했다.[7] 이후 제2 인터네셔널은 이날을노동절로 기념하게 되었다.한국에서도5월 1일을노동절로 기념하고 있다. 이 사건은 큰 사회적 반향을 가져왔고 결국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인 8시간 노동제가 실현되는 계기가 되었다.[8]
수 많은노동자들의 노력끝에1820년대 영국은 노동조합을 금지하는 법률(단결엄금법,18세기 제정)을 폐지하였고 노동조합 활동이 합법화되었다. 이후유럽과미국 등 산업화된 국가에서 노동조합 운동이 계속되어1890년 무렵에는 서구 열강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동조합이 합법화되었다.1890년5월 1일 첫노동절 기념집회가프랑스파리에서 개최되어 노동조합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었다.[9]
한국에서는일제강점기이던192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친목회, 노동회, 노우회와 같은 지역합동 노동조합이 생겨났다. 또한 인쇄공과 같은 숙련노동자들은 직업별 노동조합을 세웠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성장을 바탕으로1924년 4월조선노동총연맹이 출범하였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노동인권 쟁취를 위한 단결투쟁과 함께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 운동을 벌였다.일제강점기 노동계에서는 부두에서 짐을 배로 실어나르는노동자들이 임금삭감에 항의하여파업투쟁을 하는 등노동자들이 노동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활발하였다. 이러한 투쟁은 노동자들이 단결투쟁만이 노동인권을 쟁취하는 수단임을 깨닫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11]
또한1930년 고무공장 노동자들의 파업투쟁도 있다.고무공장 주주들은 15~20%의 배당이익을 챙기면서도, 노동자 임금 10% 삭감을 결의하여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였다. 당시 노동자들은 130원의 저임금을 받아 3~4명의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사용자들의 임금삭감은 곧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고무노조(위원장 김유창)는단체교섭을 시도하였으나 거절당하자파업투쟁으로써 단결투쟁을 하였다. 평양 고무공장 노동자들은1930년8월 7일 국제고무공장을 시작으로 11개 공장 1천800명의 노동자가 동맹파업투쟁에 들어갔다. 당시 사용자들과경찰은 대체인력 투입, 빨갱이 딱지 붙이기, 활동가 체포, 용역불량배를 통한폭력으로써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방해하고 탄압했으나, 노동자들은 현장복귀 거부와선전전으로써 저항하였다. 또한강주룡이라는노동자는 모든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의미로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하였다.[13]
1970년대노동자 특히 여성노동자들은 자본가들과 이들의 편에 선 관리자들로부터 노동인권을 존중받지 못하였으므로, 여성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탄압 및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의 악선전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단결함으로써 노동운동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인권을 쟁취하여갔다.1980년대 노동자들도 단결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여갔다. 당시 노동자들은 단결함으로써,시간외 수당 또는 초과노동수당을 주지 않는착취근절, 어용노조 폐지(현대중공업),한진중공업노동자들의 불량도시락 거부투쟁(1986년), 임금인상 투쟁(현대중공업)등을 실천하였다. 하지만 노동조합 활동가에 대해 노무관리라는 구실로 회사에서 감시,가압류, 임금에서의 불이익, 회유를 하여,2003년 1월두산중공업의 노동자 배달호 열사가 분신자살을 하는 등 곧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인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자본에 의해 탄압되는 등 노동조합은 해결할 과제가 많이 있다.[14]
20세기에 들어 영국의노동당, 독일의사회민주당과 같은 노동조합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들이 생겨나면서 노동조합의 영향력 역시 증대되었다. 1924년 영국에서는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여램지 맥도널드는 최초의 노동조합 출신영국 총리가 되었다.[15] 또한, 1919년국제노동기구가 설립되어 국제적인 노동 인권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였다.[16]1930년대아돌프 히틀러의나치 독일이사회민주당의 활동과 노동조합의 활동을 전면 엄금 시키는 등 독일에서는 노동조합 운동의 큰 위기가 있기도 하였으나2차대전에서 나치가 패망한 이후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다.[17]
예를 들어 민주노총 금속노조는자동차,기계,조선업,IT,전자,전기같은 금속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만든 산업별 노조이다. 금속노동자들은 정규직, 사내하청 등의비정규직, 한국인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의 구분없이 누구나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으며, 산업별 노조이므로 조합원은 일다니는회사에 어용노조[18]나 유령노조[19]가 있더라도 회사와 단체협약 곧 노동조건과 임금에 대한 약속을 체결할 수 있다.[20]
민주노총 건설노조는건설업에 종사하거나 일하려는 노동자들의 산업별 노조이며, 산업별 노조이므로 조합원들은 단체교섭을 일다니는 회사와 체결함으로써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21]건설노동자는 거의 대부분 일용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라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단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별 노조가 아닌 산업별 노조를 결성하여 활동하는 것이다.
클로즈드 숍 - 노동조합 조합원 자격이 고용의 조건이 되는 조직 형태이다. 조합원 자격을 상실할 경우 고용계약도 해지된다.
유니온 숍 - 채용된 노동자가 일정 기간 이내에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의무적인 형태의 노동조합이다.
에이전시 숍 - 노동조합의 가입에 대한 강제는 없으나 단체 교섭 당사자인 노동조합이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에게서도 조합비를 걷을 수 있는 형태의 노동조합이다.
오픈 숍 - 노동조합의 가입 여부와 조합비의 납부가 온전히 노동자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는 형태의 노동조합이다.
거의 대부분의 노동조합은오픈 숍의 형태로 운영된다.클로즈드 숍의 인정은 각 나라의 법률에 따라 다르다.영국은 산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클로즈드 숍을 인정하는 반면,미국은 1935년뉴딜 정책의 일환으로와그너 법을 제정하여 클로즈드 숍을 인정하였으나 1947년 새롭게 제정된 노사관계법인테프트-하틀리 법에 의해 금지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항운노조연맹이 클로즈드 숍으로 운영되고 있다.[24][25]
전 세계 최대 노동조합 연대 기구로는국제 자유 노동조합 연맹(ICFTU)과세계 노동 연맹(WCL)을 합병하여2006년 11월 결성된국제 노동조합 연맹(ITUC)으로 전 세계 국가별 노동조합 305개, 노동자 1억 7,500만명이 151개국에서 가입하고 있다. 또 다른 노동조합 국제 연대 기구는세계 노동조합 연맹(WFTU)이 조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