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성 康允成 | |
|---|---|
| 본명 | 강윤성 |
| 출생 | ? |
| 사망 | 1358년 12월 |
| 성별 | 남성 |
| 국적 | 고려 |
| 경력 | 한림학사, 이부시랑, 판삼사사, 문하찬성사 |
| 직업 | 문신 |
| 배우자 | 증 진산부부인 진주강씨 |
| 상훈 | 증 영돈녕부사 상산부원군, 문정(시호) |
강윤성(康允成, ? -1358년12월)은고려 말기의 문신이다. 본관은곡산으로강지연의 7세손이자조선태조 이성계의 계비신덕왕후 강씨의 친정아버지였다.
무안대군,의안대군의 외할아버지이며,남이의 무옥에 연루되어 처형된영의정강순의 증조부였다. 관직은고려에서 문하찬성사에 이르렀고, 사후조선 건국 후에증영돈녕부사 상산부원군에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정이다.
삼중대광 상산부원군강서(康庶)의 아들이었다. 그의 집안은고려태조왕건의 외가로,강호경과강충으로 이들은고려태조왕건의 외가쪽 선조였다.[1]강호경은 그의 20대조,강충은 그의 19대조가 된다. 강충의 셋째 아들 강보전의 후손으로 그의 8대조 인고려고종 때의 문하시중 신성부원군(信城府院君)강지연(康之淵)의 대에 다시 가문을 일으켰다.
강윤성은고려충혜왕 때문과에 급제,한림학사,이부시랑 등을 거쳐 광정대부 판삼사사 등을 거쳐1343년4월문하찬성사에 이르렀다. 그의 대에 집안을 곡산의 벌열 가문으로 일으켰고,이성계는 그의 부를 배경으로 정략결혼을 하였다.
1357년8월채하중의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동생 판도판서 강윤휘, 사위 신귀, 강찬 등과 함께 형문을 받고 곤장을 맞은 뒤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고문의 후유증으로1359년1월 13일 사망하였다. 일설에는1358년12월에 참형을 당했다는 설도 있다.
사후1392년조선이 건국되면서증보국숭록대부영돈녕부사 경안백 상산부원군에추증되었다. 묘소는덕원군 남면 적전사(赤田社) 와우동 자좌에 있다.
1399년(태조 7) 3월에 묘에 표석을 세웠다.
딸신덕왕후가 후일조선태조가 되는이성계와 결혼하였는데, 강윤성의 동생 강윤충(康允忠)은이성계의 사촌매형이자 백부이자흥의 사위(이자춘의 형)였다. 또한 강윤휘(康允暉)의 아들 상장군 강우(康祐)도태조의 백부이자,이자춘의 형이자흥의 사위로, 그의 집안은이성계 가문과 이중 겹사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