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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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가 매스컴에 범람하다 보니, 기분변화가 있을 때마다 흔히 듣게 되는 말이 “너 조울증 아니야?”입니다. 우울증도 초기에는 어느 시간에는 호전됐다가, 특정 시간에는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럴 때 당사자는 정상기분과 우울기분의 간극을 크게 느끼기 때문에 조울증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기분변화가 비교적 역동적인 청소년기 아이들을 보고 우리 애가 조울증인 것 같다고 문의하는 부모들도 많은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개는 정상이며, 조울증보다는 우울증에서의 기분변화인 경우가 흔합니다.

조울증의 원인은 정확하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로는 생물학적ㆍ유전적ㆍ심리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납니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불균형이 생물학적인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도파민이 조증에서 증가되어 있고, 글루타메이트(Glutamate)도 조증에서 왼쪽전전두엽피질(Left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에서 증가됩니다. 대략적으로 인구의 1퍼센트 정도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 12퍼센트 정도까지 증가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 잘 나타나며, 특히 환절기인 봄에 조증이 잘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울증에서 조증은 우울증과 반대개념 같지만, 정신분석적으로는 우울증과 비슷합니다. 즉 우울한 기분에 대한 부정과 반동형성이라는 방어기제의 결과물이죠. 부정이라는 것은 내가 우울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은 말 그대로 자신의 욕구와는 반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난 너무 우울해’가 부정되어 ‘난 우울하지 않아’가 되고, 그것이 반동형성까지 되어 ‘난 너무 행복해’로 변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조울증이라고 말하려면, 일정 기간 이상의 우울함 뒤에 조증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양상이 일생 동안 반복되어 옆에서 보기엔 꼭 주기적으로 ‘잠수 타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일반인들이 흔히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한다고 말한다면, 조울증이 아니라 그냥 우울증인데 스트레스에 따라 기분이 좋았다 안 좋았다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조증이란 보통의 기분 좋음보다는 아주 심한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조울증에는 기분이 가라앉는 우울증과는 반대로 기분이 들뜨거나 자신감이 과도하게 넘치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거나 쾌락행동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조증 증세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분이 심하게 우울하다가 과도하게 좋아지는 양상을 띤다고 해서 조울증을 양극성장애^각주1) 라고도 부릅니다. 조증 증세는 ‘심하게 과장된 자신감, 수면욕 감소, 필요 이상 많아진 말수, 사고의 비약, 주의산만함, 목표 지향적 활동의 증가, 쾌락행위에의 지나친 몰두’ 중 3가지 이상의 증상이 1주 이상 지속될 때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증상이 있을 때 본인 자신은 주관적인 판단이 어려우므로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의 판단이 더 정확할 때가 많습니다. 조금 기분 좋은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바뀐 것처럼 말이 많아지고 잠을 3~4시간 이상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 모르고 계속 이것저것 일을 하기도 합니다. 돈도 물 쓰듯이 쓰고, 당장 필요 없는 물건들도 막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기분 좋은 정도로 보이지만, 그것이 너무 심해져 다른 사람들과 쉽게 싸우기도 하는 등 사회생활에 많은 문제를 초래하고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가 된다면, 조울증을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심한 조증일 경우, 눈에 띄는 편이라 발견하기가 크게 어렵지 않은데요. 심하지 않은 경우를 경조증이라고 합니다. 사실 경조증이 있는 사람들 중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에너지가 커져 오히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술가, 연예인, 일 중독자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경조증인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도 월스트리트의 성공한 금융맨들이나 CEO, 밤샘촬영이 잦아서 초인적인 체력을 요구하는 방송인들,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세일즈맨이나 정치인 중 상당수가 경조증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성공적인 인물들은 높은 지능과 직업적 재능이 뒷받침되는 극소수의 이야기이고, 실제로 경조증일 때는 집중력이 떨어져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또한 치료 후 경조증이나 조증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나면, 그때를 에너지도 넘치고 뭐든 잘 풀리고 재미있었다며 오히려 그리워하는 경향(Missing High)이 있습니다. 살짝 들떴던 시기의 기분을 원래 자신의 기분인 것으로 착각해, 정상기분을 우울한 것이라고 잘못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분이 자꾸 가라앉는다고 불평하며 약을 먹지 않고, 그때처럼 열심히 살아야 한다면서 또다시 의욕을 불태우고, 과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원래 성격처럼 보이기도 해서 병을 진단받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흔히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조울증 환자의 우울한 시기인데요. 조증 상태에 있다가 우울증 상태로 변하게 되면, 기분이 떨어지는 폭이 일반 우울증보다 훨씬 커서 환자 본인도 많이 힘들어하고 더 기분이 처지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일반 우울증이 4층에서 1층으로 떨어지는 것이라면, 조울증에서의 우울증세는 7층에서 1층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정신과 질환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을 때가 조울증환자의 우울증 시기이므로, 조울증이 있을 때는 환자나 보호자 모두 치료에 각별히 신경써야 합니다.

조울증이나 우울증은 증상이 좋아지면 100퍼센트 기능 회복이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즉 병이 있기 전에 하던 일이 100가지라고 하면, 100가지를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조울증이 5년 안에 90퍼센트 이상 재발한다는 것입니다. 병의 재발로 인해 학업이나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고,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도 악화되어 나중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조울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재발을 막는 것입니다. 조울증의 재발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꾸준한 약물치료입니다. 조증 증상이 회복된 이후에도 증상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약물유지치료가 필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