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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게임

Dictator game

왜 우리는 익명이 되면 공정성을 상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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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성(anonymity)
    익명성(anonymity)

    ⓒ FuzzBones/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최후통첩 게임의 변형으로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이 있다. 제안자의 의도를 시험하기 위한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응답자는 제안자의 액수를 거절할 수 없다. 응답자가 선택을 할 수 없는바, 엄밀한 의미에선 게임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제안자가 어떤 분배안을 제시하는지에 따라 이 게임의 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피실험자 A에게 10달러를 주고 B와 마음대로 나눠 가지라고 했다. A가 욕심을 낸다면 B에게 1달러만 주고 자신이 9달러를 챙기겠지만, 이런 일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A와 B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A는 B에게 충분한 몫, 즉 50퍼센트가량을 나누어주었다. 이런 행태를 합리적 선택으로 보는 경제학자들은 그 이유를 '타인 존중 선호(other-regarding preferences)'에서 찾았다. A가 어떤 결과를 통해 얻는 효용이나 만족은 부분적으로 B가 얻는 효용이나 만족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준구는 이 독재자 게임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놀라운 점은 이 게임의 실험에서 독재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그리 인색하게 굴지 않는다는 것이다.……보복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인색하게 굴지 않는 것은 공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좋은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 버넌 스미스(Vernon L. Smith, 1927 ~ )의 실험에선 다른 결과가 나왔다. 최후통첩 게임을 독재자 게임으로 변형시키고, 이어 단계별로 제안자의 익명성을 보장해주고, 관찰자마저 참가자의 신원을 알 수 없는 식으로 게임을 진행한 결과, 제안자는 갈수록 치사해져 최종 단계에선 제안자의 70퍼센트가 상대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스미스는 우리가 최후통첩 게임에서 관찰한 것이 인간의 선천적인 공평 관념이 아니라 호혜성임을 밝혀내고자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맷 리들리(Matt Ridley, 1958 ~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버넌 스미스(Vernon L. Smith)
    버넌 스미스(Vernon L. Smith)

    ⓒ Dstringer71/위키피디아 | CC BY-SA 3.0

    "인간에게 선천적인 공평 관념이 있다면 이처럼 변형된 상황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로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상황이 바뀜에 따라 피실험자들은 철저한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원래의 최후통첩 게임에서 피실험자들은 왜 그렇게 공평했는가? 스미스는 그들이 호혜성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단 한 차례의 게임에서도 그들은 자신이 신뢰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 다른 사람에게 파렴치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개인적인 평판을 지키는 데 관심이 쏠려 있었다는 것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심리학자 아짐 샤리프(Azim F. Shariff)는 독재자 게임 참가자들을 둘로 나누어 절반에게는 신, 영혼, 기적과 같은 종교적 어휘가 섞인 문장으로 종교를 떠올리게 하는 이색적인 실험을 실시했다. 종교를 떠올린 절반은 10달러 중에서 평균 4.22달러를 상대에게 주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1.84달러밖에 주지 않았다. 이 결과에 대해 샤리프는 종교가 인간을 관대하게 만들어 협동심을 불러일으키므로 필요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인 존중 선호는 우리 모두의 희망 사항은 아닐까? 타인 존중 선호가 강한 사람은 협조적이고, 사람을 잘 믿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친화성(agreeableness)' 수치가 높다. 그런데 좋은 사회·인간관계 차원에서는 친화성이 높은 것이 유리하지만, 개인적인 성공의 차원에서는 불리하다. 이와 관련, 대니얼 네틀(Daniel Nettle)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편감으로 어떤 사람이 좋으냐는 질문에 대해, 여성들은 무엇보다도 친절함과 공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도 중시한다. 그러나 '친절함과 공감' 및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 사이에는 충돌이 있다. 친절하고 공감을 잘한다는 것은 친화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친화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이 두 개의 서로 엇갈리는 가치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현실적인 문제다."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이 친화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리 들어가면서 큰일을 이룰 수는 없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무방하겠다. 친화적인 사람은 남들이 반대하거나 비웃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비친화적인 사람은 남들의 생각에 개의치 않으며 이것이 종종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인간성'과 '출세' 사이에 충돌이 있다는 게 어찌 배우자를 고르는 여성만의 문제이랴. 그 누구든 살다 보면 모든 대인관계는 물론 나 자신의 인생 설계에서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익명 상황과 더불어 출세하려는 야망이 클수록 공정성을 상실하거나 공정성에 둔감해진다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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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 ・ 「Dictator game」, 『Wikipedia』.
    • ・ 대니얼 네틀(Daniel Nettle), 김상우 옮김, 『성격의 탄생: 뇌과학, 진화심리학이 들려주는 성격의 모든 것』(와이즈북, 2007/2009), 188~189쪽, 209~210쪽.
    • ・ 이준구, 『36.5℃ 인간의 경제학: 경제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알에이치코리아, 2009), 164쪽.
    • ・ 맷 리들리(Matt Ridley), 신좌섭 옮김, 『이타적 유전자』(사이언스북스, 1996/2001), 198~199쪽.
    • ・ 이인식, 『이인식의 멋진 과학 1』(고즈윈, 2011), 320~321쪽.
    • ・ 맬컴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선대인 옮김, 『다윗과 골리앗: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21세기북스, 2013/2014), 145~147쪽.

    강준만집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펼쳐보기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책>(전 23권), <미국사 산책>(전 17권) 등이 있다.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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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저자강준만|cp명인물과사상사전체항목도서 소개

    ‘왜?’라는 질문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에 대한 이론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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