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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기바리사이는 신약 시대에 팔레스티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유다교 분파였다. 당시 유다교 분파로는 바리사이 외에도 사두가이, 에세네파, 열혈당 등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바리사이들이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었다. 바리사이라는 말은 어원으로 보면 ‘분리된 사람, 구분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들은 율법을 준수하는 데 있어서 일반 대중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를 간직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며, 율법을 통해 거룩함에 이를 수 있다는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 점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자기들은 율법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존재들이라 하여 자기들을 스스로 바리사이라고 칭하지 않았을까 하는 어원에 관한 가정적인 추측이 있어 왔다. 바리사이에 관해 알 수 있는 자료들로는 신약 성경과 유다교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셉의 저서들과 랍비문학 작품들이 있다.
바리사이가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사상의 기원을 바빌론 유배 이후 에즈라의 영향을 받아 율법이 유다이즘의 주요 요소가 되었던 종교개혁 시대각주1)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 직접적으로는 유다 마카베오 시대에 종교의 자유를 위해 싸운 하시딤(Hassidim)들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견해이다.
하시딤 공동체는 기원전 2세기경 생겨났는데, 당시는 유다인들이 헬레니즘으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그 결과로 많은 유다인들이 이방인들과 별 다름 없는 방식으로 살던 시기였다. 하시딤들은 시리아의 임금 안티오코스 4세가 유다교를 조직적으로 박해하던 와중에도 유다교 율법에 충실했고 율법을 엄격하게 지킬 것을 강조했다.각주2) 아마도 바리사이를 비롯하여 후에 자신들만의 거룩한 공동체를 형성코자 했던 에세네파는 종교 박해에 대항하던 이 하시딤들로부터 나온 것 같다.
바리사이들은 헤로데 임금이 통치할 당시 대중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었고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헤로데는 그들에 대해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마가 통치했을 때에는 로마에 동조하지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신약 시대에 바리사이들은 비록 수는 적었지만 유다인들의 최고 법정이며 의회였던 최고의회(산헤드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에도 그들이 갖고 있던 종교적인 이상은 얌니아 지방에서 새롭게 시작된 랍비 유다이즘에 의해 계승되었다.
신약 시대에는 사실상 사두가이 중심의 귀족들이 지배하고 있던 성전이 유다인들의 종교생활의 중심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바리사이들은 회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 결과 일반 대중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바리사이들은 기원 후 70년 이후 유다교를 새롭게 발전시키고 조직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고, 그래서 바리사이즘은 유다이즘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바리사이들이 가르친 주요한 내용의 핵심은 성문화된 율법과 구전 율법을 똑같은 가치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율법(성문화된 율법)을 절대적인 규범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 율법을 해석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친 율법 학자들의 가르침(구전 율법)도 절대적인 규범으로서의 율법과 같은 무게와 의미로 받아들여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그들은 모세가 전해 준 율법뿐만 아니라 랍비들이 해석한 구전 율법도 절대적인 규범으로 받아들였다. 구전 율법 안에는 예전부터 율법 학자들이 모세 율법을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내용들과 율법을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 적용시킨 내용들 그리고 예전부터 율법 학자들이 인정해 온 관습들이 담겨 있는데, 이것들이 바로 조상들의 전통각주3) 의 일부가 된 것들이었다.
이 구전 전승은 성문화된 율법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때로는 오히려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바리사이들은 성경을 바탕으로 한 율법이 아니라 율법 학자들의 율법주의적인 전승을 더 중히 여기고 따르기 시작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학자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각주4) 율법 학자들은 성문화된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을 하는 학자들이었고, 바리사이들은 율법 학자들이 해석한 율법을 충실하게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었다.
바리사이들 가운데에는 율법 학자들이 많이 있었다.각주5) 구약 시대에는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책임을 사제들이 맡았지만각주6) 신약시대에는 율법 학자들이 그 일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율법 학자들 중에는 사제들도 있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율법 학자들은 율법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상당 기간 집중적인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고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닮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천사와 사탄의 존재를 믿고 있었으며 영의 존재와 의로운 이가 받을 보상과 죄인들이 당할 징벌, 죽음 이후의 삶과 육신의 부활도 믿고 있었다.각주7) 반면 사두가이들은 바리사이들이 믿던 그 모든 것들을 부정했으며 오로지 성문화된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께서 언젠가는 이스라엘의 자유를 회복시켜 줄 메시아를 보내실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을 믿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의 중요성도 인정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정치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믿음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데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편 바리사이들은 율법 신앙 안에서 형제애나 동료애를 바탕으로 서로 결속되어 있었다. 사두가이들 대부분이 부유한 지주들이나 세력 있는 사제들이었던 반면 바리사이들은 각 계층에서 모인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신약 성경에 따르면 바리사이들은 단식이나 이혼, 또는 맹세하는 일이나 성구갑과 옷자락 술을 착용하는 일 등 매사에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자 했다.각주8) 그중에서도 특히 안식일과 정결 예식 그리고 십일조에 관한 규정은 철저하게 지켰고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다.각주9) 그들은 스스로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아왔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킬 것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율법에서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는 이방인들은 물론이고, 율법을 알지 못하거나 안식일과 정결례의 규정 등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다른 유다인들과도 접촉하기를 꺼렸다.각주10) 그들은 세리나 매춘부 또는 병자나 죄인들을 부정하다 하여 무시하고 멸시했다. 바리사이들은 비록 그 수도 적고 율법 때문에 극히 편협한 사고에 매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로부터는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그래서 지도자적인 위치를 확고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유다교와 율법에 대한 열성과 충실함, 율법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이 군중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기 때문 아니었을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회당에서 명예를 상징하는 돌로 된 의자인 모세의 자리에 앉아 성경을 해설하였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그들이 말한 것을 따르고 행해야만 했다.각주11) 유다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셉은 유다교의 기도나 예배 의식이 바리사이들의 설명과 지시에 따라 거행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리사이들 가운데 참으로 경건한 자들도 있었지만 복음서에서는 바리사이에 관해 대부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겉치레를 중시하며 위선적으로 믿음을 살았던 대표적인 집단으로 묘사되고 있다.각주12) 또한 그들은 예수님께 적대적이고 그분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로 소개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모른 체하는 눈먼 인도자들이다.각주13)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지위를 위협하고 영향력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분께 적의를 품었던 것 같다. 바리사이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그들이 권위를 갖고 가르친 전통들을 무시하거나 깨트리신 분이셨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적으로 예수님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고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리나 죄인들과 어울리시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지 않으시고 정결례를 소홀히 하시는 것을 강력하게 비난하였다.각주14)
그들은 율법 해석각주15) 이나 그들이 믿고 있던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메시아각주16) 에 관한 난해한 질문을 던져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했다.각주17) 또한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권한에 문제를 제기했고각주18) 마귀를 쫓아내시는 그분의 권능에 의문을 제기했다.각주19) 급기야 그들은 예수님을 죽음에로 내몰기위한 음모를 꾸몄고각주20) 끝내는 그분을 체포하는 데 가담했다.각주21)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을 무조건 멀리하거나 경계하지는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하느님께 대한 참된 믿음과 하느님께 순종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간파하셨다.각주2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형식주의에 빠져 한 치 앞도 올바로 보지 못하게 된 그들의 어리석음과 폐쇄성을 강력하게 질책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배타성과 교만과 아집을 비판하셨으며, 편협하고 경직된 자세로 율법을 지킬 것을 강요하는 가운데 자신들은 정작 위선적으로 믿음을 살아가면서 계시된 하느님의 뜻보다는 자기들의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그들의 잘못된 자세를 질책하셨다.각주23)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자비심이 결여되어 있음을 간파하셨다. 자기들처럼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지 않는 일반 백성들을 경멸하고 자기들이 설교한 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무시하고 멸시한 바리사이들의 행동은 자기들 스스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각주24) 또한 구전 율법은 율법의 실천적인 면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용인되는 행동과 금지되는 행동들을 세세하게 나열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바리사이들의 관심은 모세의 율법이 지니고 있던 근본적인 사상으로부터 많이 벗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의 본래 뜻을 무가치하게 또는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바리사이들은 외적이며 사소하고 세부적인 것에 집착함으로써 더 중요하고 참되며 본질적인 것을 놓쳐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각주25)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선하심과 사랑이 율법이라는 선물과 율법의 요구를 실행하는 것에서 표현된다고 생각해 왔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사랑의 계명에 기초를 둘 때만이 온전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다.각주26)
그러나 예수님께서 비판하고 질책하신 것은 모든 바리사이들이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그들의 편협한 율법주의를 경고하시기 위해서였다. 사도 바오로도 갈라티아서를 통해 바리사이적인 율법주의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참된 영적 생활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과 참다운 영적 생활은 율법의 행업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에 달려 있음을 밝혔다.각주27)
한편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하거나, 니코데모와 가말리엘처럼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이었던 바리사이들도 거명하고 있다.각주28) 물론 초대 교회 안에는 바리사이파에 속했던 이들도 있었다.각주29) 사도 바오로도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기 전에는 바리사이였지 않은가!각주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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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이 책에 인용되는 성경 구절은 새 번역 《성경》(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5)을 따랐다.
- ・ 외국어로 된 고유 명사(인명, 지명) 표기는 새 번역 《성경》(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5)에 실려 있는 표기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