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다니는 파리의 위치를 숫자로 표시하다

30년 전쟁이 막 시작된 1619년, 바바리아 대공의 군대는 다뉴브 강의 제방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편안한 생활을 즐기면서 세계의 본성, 삶의 의미 등에 대해 공상을 하고 있었다. 방 천장에서 윙윙거리는 파리를 한가롭게 바라보던 데카르트는 갑자기 파리의 위치를 한 쌍의 숫자로 표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이런 개념을 만들게 된 계기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데카르트의 발상은 한 쌍의 수가 평면 위에 있는 점의 위치를 정확히 결정할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활용해 해석기하학이라는 강력한 곡선 이론을 개발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개념은 수학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수평선과 수직선이 교차하는 좌표계를 '데카르트 좌표계'라고 한다. 좌표계의 가로선은 x축, 세로선은 y축이라고 하며 두 개의 축이 만나는 지점을 원점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그림에서 A라고 표시된 점은 x좌표가 3, y좌표가 4이므로 간단히 (3, 4)라는 순서쌍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제 원점을 기준으로 반지름이 5인 원을 그린 다음, 원 위에 있는 (3, 4)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이 점은 피타고라스 정리에 의해 3²+4²=5²을 만족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원 위에 있는 점들을 (x, y)라는 순서쌍으로 나타내면 모든 점들이 x²+y²=5²을 만족한다. 여기서 우리는 x²+y²=5²이라는 대수방정식이 반지름이 5인 원으로 표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데카르트는 기하학을 대수방정식으로 또는 대수방정식을 기하학으로 나타내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데카르트 좌표계는 대수학과 기하학을 통합해 해석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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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좌표계는 수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후대의 수학자들은 크든 적든 그에게 빚을 졌다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좌표 개념은 거의 모든 것을 수학으로 체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순수하게 수학적인 면으로 볼 때, 그동안 완전히 별개라고 여겼던 대수학과 기하학을 통합해 수학의 지평을 넓히고 해석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켰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그래프, 이를테면 주가의 등락이나 연령별 인구분포, 기후 변화 등 각종 통계 지표들은 데카르트의 천재적인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업적은 수학보다는 철학적 방법론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철학은 주로 신과 자연과 인간의 상호 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그리스 철학이 신과 자연의 관계를 다루었다면 기독교 철학은 신과 인간의 관계에 몰두한 나머지 자연을 소홀히 다뤘다. 그러다 데카르트에 의해 비로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다.

데카르트의 과학에 대한 끝없는 관심도 수학에서 거둔 성공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는 과학을 나무에 비유했다. 형이상학을 뿌리, 물리학을 큰 줄기라고 하면 여기서 역학, 의학, 윤리학이라는 세 개의 가지가 갈라져 나왔다고 여겼다. 세 가지 학문이 의외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데카르트는 자신의 관심 분야였던 우주와 인체, 삶의 방식을 세 개의 가지에 비유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어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들이 라틴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이런 책들은 한편으로는 지식의 풍요를 가져왔지만 지적인 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리스 시대의 엠페도클레스는 세상이 물, 불, 흙, 공기의 4원소로 되어 있다고 했는데, 데모크리토스는 아주 작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피타고라스는 세계의 근원을 수라고 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했는데, 아리스타르코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대체 지구가 도는 것일까 아니면 태양이 도는 것일까?

유럽의 사회적 혼란은 이러한 지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1517년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는 반박문을 교회 앞에 내걸었다. 그 후 정치적, 종교적 분쟁이 심화되면서 1618년 시작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30년 전쟁은 사람들의 이성을 황폐화시켰다.

이런 혼란과 갈등 속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이 배운 모든 지식과 감각에서 나온 경험들을 의심하고 확실한 지식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지금까지 받아들여졌던 모든 학문들과 상식들, 그리고 외부 세계에 관한 모든 지식들을 불확실한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육체적 감각들을 통해 알고 있었던 지식들마저 거부했다.

그는 깨어 있는 상태와 잠들어 있는 상태를 구별할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의심하면 할수록 확실해지는 것이 하나 남았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점마저 의심해 보았지만, 그 생각을 의심하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모든 것을 의심했지만 끝내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명백한 사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와 같은 불변의 진리를 주춧돌 삼아 그 위에 자신이 부정했던 세계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수학적 추론 과정과 방법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도구보다 강력한 지적 도구라고 생각한 데카르트는 감각을 통한 인식에 의존하지 않고 수학이라는 언어로 물리적 세계를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다.

먼저 기하학의 공리에서 출발해 정리를 이끌어 낸 추론과 연역적 방법에 따라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규칙들을 네 가지로 공식화했다. 첫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에서 출발한다. 둘째, 까다로운 문제들을 좀더 다루기 쉬운 작은 문제들로 나눈다. 셋째, 단순한 문제에서 복잡한 문제로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연역적 추론 단계들을 다시 점검하면서 다른 해결책은 없는지 살핀다.

데카르트는 철학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데카르트의 철학적 사고에서 수학은 하나의 영감이었으며, 어두운 바다에서 길을 안내하는 등대의 불빛이었다. 그는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수학적 방법의 본질과 가치를 세상에 알려 준 최초의 위대한 사상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