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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기빈티지(Vintage)각주1) 의 정확한 의미는 포도의 ‘수확연도’지만, 와인은 그 해 재배한 포도를 수확해 바로각주2) 양조하기 때문에 결국 포도를 수확한 연도와 와인을 양조한 연도가 같아지는 것이죠.
즉, 레이블에 ‘2013’이라고 적혀 있으면, 2013년 가을인 9~10월에 수확해서 그 해에 양조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남반구라면 2013년 2~4월경에 수확했겠지요.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구세계(Old World)의 전통적인 와인 생산국들은 대체로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주, 뉴질랜드, 칠레, 아르헨티나 등 신세계(New World) 신흥 생산국들은 대부분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남반구의 신흥 생산국들은 기본적으로 일조량이 많고, 기후나 기온이 매년 고르고 일정한 편이라 빈티지의 영향을 잘 받지 않지만 북반구에 위치한 나라들은 매년 일정치 않은 기후 때문에 포도의 작황과 와인의 품질에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품질 좋은 포도가 수확되려면 우선 봄 서리로 인한 냉해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일교차가 커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서늘한 것이 좋으며, 비는 적당량만 내려주고 수확기에 특히 일조량이 많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조량이 풍부했던 해에는 포도가 잘 영글어 알코올 도수가 높고 묵직한 와인이 생산되고, 그렇지 못했던 해에는 포도의 당도는 낮아지고 산도(신맛)가 높아져 상대적으로 신선하지만 가벼운 맛의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또 아무리 일조량이 풍부했다 하더라도 포도 싹이 날 무렵 서리가 내린다든지, 수확기에 비가 많이 내려 포도알이 빗물을 머금으면 좋은 와인이 생산되기 어렵습니다. 양조 전문가들도 훌륭한 와인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와인메이킹(양조기법)이 15%, 포도가 85%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빈티지 챠트(Vintage Chart)’라는 것을 만들어 연도별로 와인의 품질을 예상하고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INAO(프랑스국립원산지명칭 및 품질위원회), SOPEXA(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 와인스펙테이터지, 와인전문가인 휴 존슨(Hugh Johnson)과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Jr) 등 각국의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이 빈티지 챠트를 만들고 있습니다.(로버트 파커 빈티지 차트 참조)
미국의 와인스펙테이터지는 빈티지 챠트 어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 등 스마트 기기에서 다운(apps.winespectator.com)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특별히 좋았던 빈티지는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이 중에서 2000년, 2003, 2005년은 프랑스 전 지방의 빈티지가 모두 좋았던 해였고, 특히 보르도 지방은 1989년, 1990년, 2000년, 2005년, 2009년이 유래 없던 최고의 빈티지(Exceptional Vintage)였습니다. 보르도의 2000년 빈티지는 정말 훌륭해서 ‘Vintage of Century(한 세기 최고의 빈티지)’라 불렸는데, 2년 뒤인 2003년 빈티지 또한 이에 버금가자 그 역시 ‘Vintage of Century’라고 칭했습니다.
와인산지 | 뛰어난 빈티지 | |
---|---|---|
Bordeaux (보르도) | 좌안 | 〈1982〉, 1985, 1986, 〈1989〉, 〈1990〉,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
우안 | 1982, 1989, 〈1990〉,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8〉, 〈2009〉, 2010 | |
Bourgogne (부르고뉴) | 꼬뜨 도르 | 1996, 1997, 〈1999〉, 2000, 〈2002〉, 2003, 〈2005〉, 〈2009〉 |
Rhône (론) | 북부 | 1990, 1991, 1995, 1997, 1998, 〈1999〉, 2001, 〈2003〉, 2005, 2006, 2009 |
남부 | 1995, 〈1998〉, 1999, 〈2000〉, 〈2001〉, 〈2003〉, 2004, 2005, 2006, 〈2007〉, 2009 |
• 〈 〉로 표시된 연도는 특히 더 뛰어난 유명 빈티지임
• 보르도 좌안(Left Bank) : 메독, 그라브 지역 / 우안(Right Bank) : 쌩 떼밀리옹, 뽀므롤 지역
• 90년대에는 프랑스 전체적으로 1990년, 1995년이 고르게 뛰어난 빈티지였음
• 보르도는 전 세계 다른 어떤 와인산지보다도 빈티지 격차가 심한 편인데, 특히 비(강우량)의 영향이 큼
그 후 불과 2년 뒤인 2005년 빈티지가 이를 또 능가하자 세 번이나 ‘Vintage of Century’라는 호칭을 줄 수가 없어, 그보다 더 뛰어나다는 의미로 ‘Vintage of Life time’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2008년도 탁월한 빈티지였고, 2009년은 1949년 빈티지 이후 60년 만의 최고의 빈티지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보르도의 2000년대 빈티지의 순위를 굳이 매기면 1위 2009년, 2위 2005년, 3위 2000년 순입니다. 2000년대 들어 10년 사이에 이렇게 최고의 빈티지들이 연달아 나오며 계속 기록을 경신한다는 건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르도처럼 빈티지에 차이가 꽤 나기도 하는 지역의 명품 와인들은 빈티지가 와인의 가치를 매기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즉 같은 와인일 경우 오래된 빈티지일수록 무조건 더 좋고 비싼 게 아니고, 포도의 작황에 따라 중간 중간 특별히 더 좋은 빈티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빈티지가 좋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좀 더 장기보관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빈티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보르도의 그랑 크뤼 1등급 와인인 〈Château Mouton-Rothschild(샤또 무똥 로췰드)〉의 빈티지별 가격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명품 와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오래된 빈티지일수록 비싸긴 하지만 가격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해당 빈티지가 얼마나 뛰어나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로버트 파커(RP)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았던 1982년 빈티지가 1975년보다 훨씬 더 비싸고, 근래 빈티지 중에서도 2002년이나 2004년에 비해 2005년 빈티지가 꽤 많이 비쌉니다.
빈티지 | RP | 와인샵 가격 |
---|---|---|
1998년 | 96점 | 140만 원선 |
1999년 | 93점 | 100만 원선 |
2000년 | 96점 | 270만 원선 |
2001년 | 89점 | 75만 원선 |
2002년 | 93점 | 95만 원선 |
2003년 | 95점 | 130만 원선 |
2004년 | 92점 | 95만 원선 |
2005년 | 96점 | 150만 원선 |
2006년 | 98점 | 130만 원선 |
2007년 | 92점 | 95만 원선 |
2008년 | 94점 | 100만 원선 |
2009년 | 99점 | - |
• 위 가격은 2013년 상반기 백화점 와인샵 평균 가격임. 그랑 크뤼 와인의 경우, 다수 업체가 수입하므로 판매처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한다. 따라서 위 표는 빈티지별 가격 차이를 확인하는 용도로만 사용하시기 바란다.
하지만 명품 와인들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고,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모든 보르도, 부르고뉴, 론 지방 와인들이 빈티지별로 가격이 따로 책정되지는 않기 때문에 일반 애호가들이 와인을 구입할 때 빈티지에 너무 민감해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더구나 보르도의 중저가 와인이라면, 빈티지를 지나치게 따지고 맹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고 빈티지라고 불리는 해의 포도로도 그저 그런 와인을 만드는 회사(샤또, 네고시앙)가 있을 수 있고, 반면 아주 실망스런 빈티지의 포도로도 제법 맛있고 품질 좋은 와인을 만들어내는 회사도 있기 때문이죠.
사실 전문가들조차도 같은 와인의 최근 10년간 빈티지를 모두 모아 놓고 테이스팅 해보면(Vertical Tasting), 빈티지 챠트의 내용처럼 잘 맞추지 못합니다. 심지어 안 좋은 빈티지에 더 좋은 점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영하냐 올드하냐 외에 빈티지별로 맛의 차이를 구분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뛰어난 빈티지의 고급 와인의 가격이 실제 가치보다는 마케팅 측면에서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되는 등 지나치게 빈티지를 따지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와인을 살 때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고급 와인이 아니면 굳이 ‘좋은 빈티지’ 여부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해당 와인의 품질 수준에 따라 마시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를 잘 판단해서 고르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특히 신세계의 중저가 와인을 구입할 때는 몇 년도 빈티지가 더 좋냐 나쁘냐를 따지는 것보다 너무 오래된 빈티지를 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5만 원대 미만 와인의 경우, 레드 와인은 현재로부터 3~5년 이내, 화이트 와인은 1~3년 이내의 빈티지를 고르는 게 좋습니다. 그 정도 가격대의 중저가 와인들의 경우 그때가 마시기에 딱 알맞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13년에 와인샵 가격으로 1~2만 원대 화이트 와인을 살 때는 2012년이나 2011년 빈티지가 가장 좋은 선택이고, 품질이 더 좋은 3~5만 원대 화이트 와인이라면 2010년 빈티지면 적당하다는 것입니다. 2003년, 2005년이 아무리 보르도의 좋은 빈티지였다 하더라도 그 빈티지의 1~2만 원대 화이트 와인을 2013년에 사서 마신다면 절대로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일반급 저가 와인으로는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레드 와인은 그보다 좀 더 기간을 오래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중저가 와인이라면 3~5년을 기준으로 안쪽 빈티지를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또 일반급 로제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은 화이트 와인처럼 1~3년 정도를 기준으로 가급적 최근 빈티지를 선택하십시오.
즉, 고급 와인일수록 빈티지와 숙성기간을 고려하는 것이 좋겠지만, 중저가 와인은 차라리 마시기 가장 좋은 시기에 빨리 마시는 게 낫다는 뜻입니다. 평범한 와인을 오래 보관한다고 해서 더 뛰어난 와인으로 변신하진 않기 때문이죠. 5만 원대 이상의 괜찮은 와인이더라도 화이트는 병입 후 3~5년, 레드는 병입 후 5~7년 정도가 대부분 마시기 딱 좋은 상태입니다.
구분 | 보관기간 | ||
---|---|---|---|
레드 | 햇와인(보졸레누보 등) | 6개월~1년 | |
Light-bodied 와인 | 3~5년 | ||
Full-bodied 와인(일반급) | 5~7년 | ||
Full-bodied 와인(고급) | 10~50년 이상 | ||
알코올 강화 와인 (포트, 쉐리 등) | 화이트 | 10~20년 | |
레드 | 10~50년 | ||
화이트 | Dry | Fresh 와인 | 2~3년 |
Light-bodied 와인 | 3~5년 | ||
Full-bodied 와인 | 5~15년 | ||
Sweet | 일반급 | 5~10년 | |
고급(TBA, 쏘떼른 등) | 10~15년 (최고급: 50년) | ||
로제 와인 / 스파클링 와인 | 1~3년 (고급: 5~20년) |
하지만 아주 고급 와인이라면 오히려 너무 빨리 오픈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2~3년 전 빈티지의 보르도(메독) 그랑 크뤼 와인을 선물 받았다면, 10년 가까이 잘 보관했다가 마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 고급 와인을 너무 일찍 오픈하면 병입 숙성이 덜 되어 타닌도 거칠고 아직 채 정제되지 않은 향 때문에 그랑 크뤼 와인 본연의 풍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경우 ‘유아살인’이라는 섬뜩한 표현을 쓴다고도 하네요. 미처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거죠.
빈티지와 관련한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와인을 즐기는 서구에서는 자녀의 출생 기념으로 그해에 생산된 와인을 사놓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자라서 성년이 되는 해나 결혼할 때 선물로 주거나 가족 파티 때 함께 마시곤 합니다. 이것을 ‘Birth Year Wine’이라고 합니다. 괜찮은 아이디어지요?
그런데 문제는 와인을 20년 혹은 그 이상 보관해야 하므로 장기숙성이 가능한 고급 와인을 사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일반급 와인을 사놓았다가 나중에 가족들이 함께 감동적인 개봉을 했는데 그 와인이 상해 있다면 정말 속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중산층이 ‘Birth Year Wine’으로 많이 애용하는 것이 포트(Port) 와인입니다. 포르투갈이 원조인포트 와인은 와인에 브랜디를 가미해서 알코올 도수를 20도 전후로 높인 알코올 강화 와인(fortified wine)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아 장기보관에 적합한 데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무난하기 때문입니다.
‘Birth Year Wine’ 외에도 부부가 결혼한 해의 와인을 사두었다가 결혼 10주년, 15주년 때 개봉해서 마시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와인이 가지는 또 하나의 멋이자 풍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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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서울 출생. 경복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다. 보험사 및 재무컨설팅회사에서 20여년간 근무했다.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와인 관련 외부활동도 왕성하게 하..펼쳐보기
1965년 서울 출생. 경복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다. 보험사 및 재무컨설팅회사에서 20여년간 근무했다.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와인 관련 외부활동도 왕성하게 하면서 한국와인협회 교육연구 분과위원으로도 활동했다.1965년 서울 출생. 경복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다. 보험사 및 재무컨설팅회사에서 20여년간 근무했다.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와인 관련 외부활동도 왕성하게 하..출처
와인, 알고 마시면 더욱 즐겁고 맛있다! 쉽고 재미있는 와인특강으로 와인의 맛과 풍미를 제대로 즐겨보자. 포도와 와인에 관한 전반적인 상식을 소개한다.